-
-
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중국의 1958년과 문화대혁명을 공부하게 한 책.
난 이래서 책이 좋다. 누군가는 소설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냐며 가벼운 책 읽기에 대해 얄궂은 비웃음을 날린다. 한때 나도 소설보다 교양서를 읽어야 좀 있어보이는 줄 알았다.
사회에 대하여, 철학에 대하여, 음악에 대하여, 미술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까지.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귀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부가 넘쳐야 귀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니까, 창조주가 똑같은 생명과 죽음을 주었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귀한 것이다.
어느 사람에게서나 배울점이 있듯이 어느 책에서나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것이든 나쁜것이든 배울 점이 있고 버리는 법 또한 배울 수 있다.
중국 소설은 처음 접해보았다. 그만큼 중국역사에 대해 무지하기도 하다.
논어나 맹자를 읽었지만 서문에 나오는 당시 역사배경은 정리하기 힘들만큼 나에겐 어렵게 느껴졌고, 학생때 수도없이 들었건만,, 끝없는 왕조와 나라, 인물들은 날 질리게 만들었었다.
크고 나니 중국인들에 대한 험담들이 들어온다. 시끄럽고, 잘 씻지 않고, 이기적이고,,,
그러나 난 중국인의 소설에서 사랑을 보았다. 그리고 중국의 역사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제목 그대로 허삼관의 피 파는 이야기이다. 한번에 큰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일.
그는 처음 호기심에 시골 동네사람들과 함께 피를 뽑으러 가고, 받은 판매대금을 어떻게 쓸까 하다가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결혼하면서 그는 일생에 중대한 일이 벌어질때마다 피를 팔아 그 일들을 해결해 나간다.
그것이 문제해결을 위한 때도 있고,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일 때도 있고, 자식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일 때도 있다. 그에게 피는 그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귀한 우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첫아들 일락이가 그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때 그는 그의 부인과 아들에게 모질게 대하기도 한다.
배고픈 시절, 국수대신 고구마를 건네는 허삼관의 모습에 친아버지를 찾아가 국수를 사달라 조르고 그에게마저 쫓겨나자 돌아다니며 국수를 사주면 아버지라 부르겠다며 울며 떠도는 일락이. 결국 허삼관의 등에 업혀 국수를 사 먹으러 가는 일락이.
칼로 얼굴과 팔을 긋고 이제부터 일락이는 내 친아들이라 선포하는 허삼관의 모습.
기른 정이란 낳은 정을 뛰어넘는 위대한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뭉클하게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다.
그의 모습을 통해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대학교에 다닐때,, 늦은밤 학교에서 돌아와 가게에 들릴일이 있어 가면 전면유리인 입구너머로 아버지의 굽은 등이 보였다.
티비를 보며 하릴없이 앉아계시던 아버지.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가게를 보며 내어주신 모습이 허삼관의 피 뽑는 모습과 얽혀 지나간다.
허삼관이 세 아들 다 장가보내고 이제 편하게 살 무렵, 피를 뽑으면 늘 먹던 돼지간볶음 한접시와 따뜻하게 데운 황주 두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생애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피를 뽑기로 한다.
그러나 늙은이의 피는 죽은피가 많아 돼지피나 매한가지라는 혈두에 말에 모욕을 느낀 허삼관.
평생 무슨일이 생길때마다 피를 팔아 해결했는데,, 이제 무슨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좌절감에
자신의 삶과 가족을 지켜주었던 그의 피가 이제는 가치가 없다는 슬픔에
그는 평생 처음으로 서럽게 울며 거리를 다니다 그의 아내가 사주는 가장 맛있는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먹게 된다.
평생을 바쳐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일해온 아버지들.
정리해고 되고 가정에서도 찬밥신세가 되고,, 그들의 헌신이 모욕받았을때 그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돼지간볶음과 황주두냥으로도 위로할 수 없을거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