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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교 시절 할리퀸 로맨스에 빠져 책대여점을 문닳듯 드나든 적이 있었다. 용돈 대부분을 한때 쏟아부었던 로맨스 소설.
한참 좋은 책을 많이 읽을 시기이기도 했건만 그 나이 때 난 쿨한 여주인공과 육체적 매력을 뿜어대는 멋진 남자의 사랑이 마치 나의 일인것마냥 설레어하고 책목록줄거리를 읽으며 다음에 읽어야할 책에 체크해가는 열성팬이었다. 너무 빠져있어서였는지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도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어린 소녀의 눈에도 뻔한 줄거리, 몇장에 걸쳐 나오는, 그 당시 정서로서는 상당히 민망한 사랑행각들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지 않았나 싶다. 한국드라마의 법칙이 있듯이 할리퀸 로맨스에도 뻔한 법칙이 있어서 나중에는 거기에 벗어나면 이상스레 여겨지기도 했었으니까.
그렇게 한동안을 잊고 지냈던 로맨스 소설,, 몇년전 한국 작가들의 로맨스 소설들이 무더기로 나오고 있는 것을 책 대여점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당시 공허한 맘을 판타지 소설로 달래고있던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지 남의 사랑에 설레이거나 가슴죄는 사랑의 과정을 확인할 여력이 없었다.
다시 여유를 찾고 보니 고전이나 교양, 현대소설쪽으로 집중이 가게 되었고, 로맨스는 왠지 이 나이에 봐서는 안 될 장르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참으로 오랫만에 다시 사랑이라는 순수함으로 다가온 이 소설. 멋진 표지에 끌리기도 했고 괜찮은 책이라는 평에 한번 읽어봐도 될 것같았다.
라디오 구성작가를 경험한 작가의 이력답게 라디오 작가와 피디를 주축으로 책은 전개되어 간다.
작가 9년차답게 자신의 일은 조용히 잘 처리해나가면서 특별히 튀지 않는 31살의 공진솔 작가.
개편에서 새롭게 들어온 입사 5년차 33살 이건 피디.
내성적인 그녀가 편해서였을까, 건피디는 그녀를 불러내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스무디의 달콤함을 그녀에게 전한다. 그녀에게서 편안함을 느끼는 그를 보며 그녀는 편안함과는 다른 감정들이 솟아오름에 당황해하지만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맘을 전한다. 두번의 어설픈 사랑 이후 서른이 넘어 찾아온 이 남자.
여느 사랑을 전하는 소설처럼 이들도 갈등이 있고 오해가 있고 애증이 있으며 화해가 있고 해피엔딩이 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줄거리이지만 백설공주나 인어공주를 바란건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그들보다 더 독한 사랑은 어느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고 드라마에서는 식상한 소재가 되어버렸는데.
그저 흘러가는 주인공들의 시선 속에서, 대화속에서 사랑은 이렇게도 진행되어가는구나.
한 문장으로도 사람은 설렐수 밖에 없는, 사랑에 약한 감성적 존재이구나라는 걸 느끼며 걸어간 시간이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마음이 무뎌져서일까. 30살 넘어간 이들의 저벅저벅한 사랑이 내 맘을 파고들어오진 못했지만,,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듯이,, 40이 되고,, 60이 되어서도 가슴 한부분은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사랑에 대한 공감으로 설렐 수 있는 공간으로 남겨져 있었음 하고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