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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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너는 곧 죽을 것이므로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선고를 받는다면. 그게 용하다는 점쟁이의 말이든 자신의 건강을 잘 아는 의사의 말이든, 심지어 길을 가다가 만난 낯선 사람이 한 말이든, 그 말의 무게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제목을 먼저 듣고, 표지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 한없이 약해 보이기도 하지만 또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은, 옛 설화의 바리공주를 떠올리게 하는 이 얼굴이 '단명소녀'의 얼굴이라면 쉽게 자신의 운명에 지지 않고 어떤 긴 여행이든 떠나지 않을까. 그 싸움이 홀로 외로운 것이라도 아주 승산이 없는 싸움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책에서는 단명소녀 수정이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길에 한 명의 동행이 있다. 살고자 하는 수정에게 동행하는 이는 죽으려고 하는 이안이다. 살고자 하는 이와 죽고자 하는 이의 동행이라니 아이러니한데, 그들이 해치워야 하는 상대가 같다는 것이 또 아이러니다. 


그들의 길은 일순간 기묘한 세계속으로 빠져든다.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쉼없이 일어나는 환상공간인데도 그 세계에 빠지는 순간의 경계가 너무 자연스러워 그들이 헤쳐가는 길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읽는 내내 그 세계 속에 휩싸여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몽환적인 분위기이기도 하고 섬뜩하게 소름끼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작품은 우리가 학창 시절에 접했던 수많은 설화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를 놓치 않는다. 설화 속 주인공보다 당차고 바로 내 옆에 있을 것만 같은 열아홉 소녀 구수정과 내일과 이안의 모험을 응원하다보면 어느새 글은 마지막으로 향한다. 


이들의 여행의 결말은, 책을 읽는 분들의 보람으로 남겨 두어야 할테니 말할 수 없지만 책을 처음 손에 받았을 떄 생각보다 짧은 글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을 똑같이 받으시는 독자가 있다면, 걱정하지 마시라. 그리 길지 않은 이 글을 읽으며 독자는 떄로 급한 마음에 페이지를 빨리 넘길 것이고 때로는 북받치는 감정에 한참 같은 페이지에 멈출 것이고, 책을 덮고 나면 긴 여운에 한참을 책을 손에서 놓치지 못할 것이니. 


박지리 작가의 팬으로 더이상 작가의 글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 이름을 잇는 문학상의 첫 작품이 이 작품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현호정 작가의 다른 작품을 벌써 기다리게 된다. 


# 서평단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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