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엇 - 175년 동안 바다를 품고 살았던 갈라파고스 거북 이야기 보름달문고 45
한윤섭 지음, 서영아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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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 175년 동안 바다를 품고 살았던 갈라파고스 거북이야기>, 한윤섭 글, 서영아 그림, 문학동네, 2011
 

너의 원래 마음을 잊지 마!

2013.6.11. 우경숙 (서울영문초 교사)

 

고전이 될 작품, 해리엇

  어린이문학 동네에도 자고 일어나면 신작이 쏟아진다. 좋은 책을 만나면 곁에 두고 거듭 읽으며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 글에서 더 덜어낼 데가 없이 덜어내려던 상허 이태준을 보아도 말과 글에 있어 절제는 중요하다. 우리의 일상 자체가 소란 가운데 있다. 그래서인지 문장이 간결하고 단아한 한윤섭의 작품이 좋다. 주제를 은근하게 품고 있어 더 좋다.  

 이원수, 현덕, 이태준의 작품처럼 새로운 고전이 될 작품은 무엇일까. 나는 어린이문학의 고전으로 남을 작품으로 <해리엇>(한윤섭, 2011)을 꼽고 싶다. 한윤섭 작가는 <해리엇>에서 작가의 말을 쓰지 않았다. 작품 안에 이미 할 말을 모두 했다는 것인지 궁금하기가 짝이 없다. 작가님을 만나서 묻고 싶어질 만큼. 도대체 이 이야기의 씨앗은 어디에서 왔으며, 낯선 곳에 던져진 찰리같은 우리 어린이에게 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어른이 주는 온기

<해리엇>은 동물사회 이야기를 하는 듯 하면서도 묘하게도 사람들이 공동체성을 잃어버리기 전의 그 마음을 불러낸다. 동물원 안의 서로 다른 생명들이 충돌하는 공간에서 죽음과 공생, 자유와 존엄, 잃어버린 고향 같은 주제들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다 읽고 나면 아름답고 따스함이 전해진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으면 더 깊고 풍부해질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물원의 최고 연장자 해리엇이 보여주는 어른의 미덕 보면 많은 생각이 오간다. 조력자로서 어른은 어린이의 문제를 대신 나서 해결하는 자가 되면 안 된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며 마음의 힘을 불어넣는 것은 어른의 몫이다. 또한 어른이 된다는 건 세상에 대한 책임을 나눠지는 것이다. 나날이 파편화 되고 있는 요즘 울타리가 되어주던 어른의 손길 더욱 그립다.  

 

누군가는 바다를 만날거야

 해리엇은 국제적 멸종 위기종인 갈라파고스 거북이다. 찰스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떠나 갈라파고스 섬(거북섬)에 갔다. 그 섬에서 핀치새와 갈라파고스 거북을 보고 달라진 자연환경에서 사는 생물은 다르게 진화한다는 <종의 기원>을 떠올렸다 한다. 다윈이 영국으로 돌아올 때 '가져온' 거북이 바로 해리엇이다. 후에 '다윈의 거북' 해리엇은 호주 퀸즐랜드 동물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가 2006년 6월, 175살로 숨진다. 175년이라니 정말 까마득한 시간이다. 알고 보면 해리엇은 갈라파고스의 거북이지 '다윈의 거북'도, '동물원의 거북'도 아니다. 

  

 해리엇이 '인간이란 다른 생명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웃을 수 있는 존재'(109쪽)라는 것을 아는 순간! 인간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해리엇은 동물원의 구경거리로서 삶을 받아들여야 했다. 설혹 그들이 자신을 해리리고 부르거나 말거나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거북이든 인간이든 생물에게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 어쨌거나 비글호에 억류(?)되었던 마흔 여섯 마리 거북 중 해리엇만이 살아남았다. 

"너무 절망하지마. 살아남으면 돼. 그게 거북의 일이야."(122쪽)

"모두 갈 수는 없어도 누군가는 바다를 만날 거야."(123쪽)  

 어릴 적 해리엇은 사람의 배에서 제 혼자 힘으로 살아남은 게 아니다. 더 먼저 살아온 어른 거북들의 목숨에 빚지고 있다. 생명은 이렇게 순환하듯 쇠하고 나고 자라고 쇠하고 하는 섭리 안에 있다.

 

 우습게도 동물원에서는 '다윈의 거북'을 수컷으로 알고 오랜동안 해리라고 부르다가, 뒤늦게 유전자 검사 결과 암컷으로 밝혀져 해리엇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Harriet: grand old lady of zoo) 사람들에겐 '다윈의 거북'이라는 관광적 소용이 중요할 뿐이니까. 관계에서 일방성은 마주 설 수 없다. <해리엇>을 들려주다가 아이들에게 "동물원의 아들 테드와 어린 원숭이 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으니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서로 마주하는 관계를 맺어야 우리는 그의 존재를 인식하고 알아볼 수 있게 된다.

 

너의 원래 마음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나무라는 말을 자주 한다. 특히 거칠고 위험한 행동을 할 땐 더 그렇다. 아이를 꾸짖기도 쉽지 않지만, 믿어주고 품어주는 건 더 어렵다. 아이가 자라는 데는 꾸지람도 필요하지만 있는 그대로 포용해주는 너그러움도 필요하다.

어른이나 아이나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잃어가는 것은 왜일까. 개코원숭이 스미스는 완력을 사용하여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려든다. 어린 원숭이 찰리가 우연히 손에 넣은 열쇠를 스미스가 앗으려는 것도 다 지배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스미스는 어린 찰리에게뿐 아니라 해리엇에게도 돌을 던진다. 해리엇에게 허락된 마지막 시간, 인사를 하러온 개코원숭이 스미스가 해리엇에게 미안하다 한다.

해리엇: "스미스, 난 네가 나쁜 원숭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지금의 그 모습이 네 본래의 모습이야. 네가 태어나던 날을 기억한다. 모두들 웃었지. 그건 네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그들에게 행복하다는 의미였다. 스미스, 난 여전히 너와 이곳에 함께 있다는 것이 기쁘다."(102쪽)

스미스: "고마워요, 해리엇."

 

나도 너처럼

 이 책을 우리 반 아이들에게 들려줄 때 "어린 자바원숭이가 5년 몇개월을 살았다는데, 사람 나이로는 몇 살일까요?" 물었다. 고양이 나이가 두 살이면 인간으로 치면 청소년 나이라고 하자, 각기 다른 동물들 나이를 인간 나이와 견주면 몇 살이냐고들 질문이 쏟아진다. 우리는 서로 다르니 함께 살아가려면 먼저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말로 답을 대신 했다.

 갈라파고스 거북은 갈라파고스에서, 자바원숭이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왔다. 이제 그들은 작은 동물원 안 이웃이다. 동물마다 따로 우리가 있어 각자의 영역이 있지만 크게 보면 동물원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한 이웃이다. 나도 너처럼 외로웠다며 곁에서 어린 찰리의 마음을 달래주던 해리엇이 동물원을 보다 따뜻한 곳으로 만들었다. 해리엇을 떠나보냈지만 찰리는 이제 동물원의 흔한 자바원숭이가 아니다.  

 

해리엇: "나도 오래 전, 나도 사람의 세상에 왔을 때 너처럼 외로웠단다."(77쪽)

찰리: "(다시 태어난다면)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요."(83쪽)  

 

찰리는 다시 태어난다면 '다른 생명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공생할 줄 아는 사람'으로 태어날 거 같다. 그리고 해리엇처럼 훈훈한 어른이 될테지. <끝>

 

    

 

    

Harriet, The Giant Galapagos Tortoise, 11 February 2005

호주 퀸즐랜드동물원 홈페이지에 실린 '다윈의 거북' 해리엇 생존 사진: http://www.australiazoo.com.au/our-animals/harri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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