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독립과 여성 교육을 이끈 차미리사 지식 잇는 아이 22
이여니 지음, 이주미 그림, 한상권 감수 / 마음이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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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해방을 위해 교육 운동을 이끌었던 차미리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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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적인 삶을 강조한 차미리사의 가르침










차례

다시 태어난 섭섭이

꺾이지 않는 열정

전굴을 누비는 만 리 대장정

근화여학교에 피어난 무궁화

들꽃처럼 강인한 이름











차미리사는 1879년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대를 이을 아들을 원했지만 딸이 태어나 섭섭하다는

뜻으로 이름을 섭섭이라고 했어요. 이 당시에는 아들과 딸의 차이가 컸어요. 아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귀하게 여겼고, 딸은 쓸모없는 존재로 여겼어요. 당연히 딸은 교육도 못 받고 집안의

대소사에 참여할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미리사의 부모님은 외동인 섭섭이를 애지중지 키웠어요.

열일곱이 되던 해에 섭섭이는 결혼을 했고 예쁜 딸을 낳고 평범한 삶을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섭섭이가 열아홉 되던 해에 남편이 갑자 큰 병을 얻어 눈을 감고 말았어요.

섭섭이는 남편 없이 살아갈 일이 막막했어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러했어요.

섭섭이가 살던 1800년대 말에는 신분제가 존재해서 여자는 멸시와 홀대를 받던 시대였어요.

고모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게 되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어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여자도

귀하다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섭섭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섭섭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미리사로 새로 태어났어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교육 활동도 하며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었어요.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4년간 영어, 중국어, 신학을 공부했어요. 하지만 힘든 유학 생활이었어요.

열병을 앓아서 청각 장애를 얻었지만 이겨내고 중국 유학을 마쳤어요.

그리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8년간 사회봉사 활동을 하며 한인 노동자들의 구직을 돕고

교육하는 일을 했어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사회 운동가가 되었어요.

외국에 있는 것보다 고국에 돌아가서 여러 동지들과 손을 잡고 사회 일도 하며 여성을 교육해

우리의 실력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했어요.

미리사는 조국의 품으로 돌아와 배화학당에서 사감과 교사로 일하며 학생들에게 영어와 성경을

가르쳤어요. 그 외에도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 정신을 끊임없이 일깨워 줬어요. 또 낡은

관습과 생각을 깨뜨리고 남녀평등, 여성교육, 여성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것에서 벗어나자는

강연을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성들에게 깨닫게 해 주었어요.


차미리사는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사회 운동가로 교육자로 독립운동가로 진취적인 삶을 산

진정한 여성이었어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읽고 후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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