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W (グロウ) 2017年 10月號 (雜誌, 月刊) GLOW (グロウ) (雜誌) 22
寶島社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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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활용예대로 바닥에 세워 장난감 넣으려 샀는데, 폭 좁고 높고 접힌 상태라 좀 난감ㅋ 빳빳하고 튼튼해요. 바느질 상태도 굿. 내부 코팅과 천이 분리 잘 안될 듯. 에코백 매니아에겐 활용도 좋겠음다. 사은품과 판매품 통 틀어 이렇게 짱짱한 거 전 첨 봄. 이음새 한 부분이 약간 어긋난 게 유일한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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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인천 상륙 작전 1~6 - 전6권 - 완결
윤태호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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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런 작품이 있는 줄도 모르다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해 보았습니다. 강점기부터 6.25 전쟁 1년차까지 어수선하고 잔인한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고뇌와 아픔과 죽음을 그렸습니다. 숨 막히고 답답하고 눈물이 납니다. 꼭 알아야할 우리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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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물리학], [그릿], [에로티카]를 통해 익숙한 출판사. 괜찮은 책이다 들여다 보면 의외로 자주 띄는 이름이라 반갑더군요. 여기 이벤트엔 끌리는 품목이 없어서 아쉽습니다만, 계속 좋은 컨텐츠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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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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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처제와 형부의 금지된 일탈로 읽었던 <몽고반점>

 

  대학 다닐 때 <몽고반점>이란 단편소설이 꽤 여기저기 언급됐다. 언제부턴가는 '읽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듯 했고, 그래서 읽었다. 당시만 해도 고매한 낭만주의자 흉내를 냈던지라, 겁나 당황했다. 알몸에 꽃을 흐드러지게 그리고 처제와 형부가 섹스를 하다니! 당황하면서 나도 모르게 성행위 장면만 몇 번 반복해서 읽었다. 하하!

 

 

  2) 작가 한강과 [채식주의자]의 유명세

 

  <몽고반점>이 앞뒤 이야기와 연작이라는 건 최근에야 알았다. 맨부커상인지 뭔지를 받았다고 온 언론에서 떠들어댔지만, 여러 번의 뽑기 실패로 '소설은 돈 주고 안 사겠다'는 각오에 '소설은 안 읽겠다'는 다짐까지 이미 굳어진 뒤였다. 너도나도 읽어대니 오히려 안 끌리기도 했고.

 

  몇 년이 지나도록 인터넷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불쑥불쑥 눈에 띄기에 '읽어야겠다'고 또 스스로 강요하기 시작했다. 작품의 유명세도 유명세지만, 내가 바로 그 이질적인 부류 ㅡ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3)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인간들

 

  읽고나니 좀 난감하다. 과연 사람들이 이 책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유명하니까 위대하다'라는 공식으로 "난 이런 거 맘에 안 드는데?"라고 악 쓰기 힘들어하진 않을까? 하하하

 

  인혜의 남편, 비디오작업을 한다는 예술가 나부랭이. 아내에 빌붙어 사는 주제에 아이 양육에 기여도 않고, 알 수 없는 '작품'을 찍는답시고 밖으로만 나돈다. 아들 지우의 입에서 '우리집에 아빠 있어?'라는 소리나 나오게 하는 놈. 처제에 대한 욕정을 '몽고반점' 핑계 대고 예술로 포장하는 비겁쟁이. 그러나 꿈꾸던 상상을 실현함으로써, 인혜가 쌓아온 인고의 삶을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모든 가족을 산산히 흩어놓는 '나쁜 새끼' 

 

  영혜의 남편. 너무도 평범하여 자신의 열등감을 자극하지도 않으며, 살면서 어떠한 위험부담도 주지 않을 여자라며 영혜를 택해 결혼한. 그러나 영혜가 '이상해'지자, '저 미친 여자 때문에 내가 제일 손해본다'고 억울해하며 이혼해 버리는 남자.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인혜. 동생 영혜의 근원적 고통에는 눈 감고 살았으면서, 동생이 무얼 잘 먹었는지는 잘도 기억한다. 볼품 없고 말 없고 충실하지도 않은 예술가 놈에게 '돈까지 벌어다주는 리얼돌' 이상의 가치나 있었을까. 인혜는 분노와 수치심으로 제 눈을 찌르고 싶은 충동을 안으로 억누르며 산다.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살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조차 구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영혜. 생명을 더이상 괴롭히거나 죽이지 않기 위해 고기 먹기를 멈춘다. 그냥 그렇게 두었다면 그저 '채식주의자'로 불리며 나름 살았을 테지만, 가족들에게 극적으로 부정 당하고, 그 반동으로 아예 어느 무엇도 죽일 수 없는 '나무'가 되기로 한다.(식물학자들은 '나무가 정적이고 무엇을 괴롭힐 수 없다'는 데 별로 동의하지 않겄지만.)  

 

  영혜라는 인물이 유별나긴 하지만, 다른 인물들도 불편하다. 실상 어디에나 있고, 너무 익숙하지만, 저 이가 실은 나라고 내 옆 누구라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4) 영혜는 왜?

  

  보통 사람은 영혜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기껏 어릴적 개의 죽음을 본 기억 때문에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된단 말인가? 우선 '채식주의자'라는 말부터 폭력적이다. 영혜는 '채식을 하기로' 한 게 아니다. 도저히 핏내나는 고기를 먹을 수 없었을 따름이다. 그녀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당했던 '개같은 취급'의 경험이 실제 개의 죽음에 민감하게 동감하게 된 동기일 수 있다. 영혜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살려달라'는 눈빛을 보내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족은 그런 신호를 몰랐거나 무시했거나 외면했다. 오토바이에 묶여 동네를 뛰다 죽어간 개도 '살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영혜는 나름의 논리로 '넌 죽어도 된다'고 외면했다. 영혜의 고통을 묵인한 이들에게 외쳤던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항의가, '그렇다면 나는 왜 타자의 고통을 방치했던가'라는 죄의식의 울림으로 되돌아온 게 아닐까.

 

  사실 영혜의 개인적 경험에서 연관성을 굳이 찾을 필요도 없다. 치명적인 고통에 대한 치명적인 동감만으로도 동기는 충분하다. 하지만, 생명이 아파한다는 걸 알지만 그 고기를 안 먹을 이유는 못 느끼는 보통의 사람들이 납득할 수는 없을 거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반육식주의'가 아닌 '채식주의'라는 에둘러가는 호칭이 붙여진다. 그리고 그들이 이름붙인 '채식주의자'를 손쉽게 억압하고 배척한다. 경험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정신병자'라고 진단내리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영혜는 더 치열하게 자기 안으로 도망가고 있는 게 아닐까. (괴롭힘 당하는 약자는 상대를 공격하거나 자해하거나 둘 중 한 쪽을 택한다.)

    

  성공적 실천을 하진 못했지만, 나는 '반육식주의자'다. '전 안 먹어요'라는 한 마디로는 도저히 멈춰주지 않는 사람들의 오지랖 때문에 투쟁할 수 밖에 없었다. ㅎㅎㅎ 기어이 인상 구기고 꽥 소리를 질러줘야 내 입에 쑤셔넣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하물며 인혜같이 극단적으로 반항한다면, 그걸 보는 사람들은 기함하는 게 당연하다. 당연하다는 게 서글프지만.

 

 

    

    5)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여년 전 <몽고반점>을 읽은 데서 그치지 않고 연작 전체를 읽게 되어 다행이다. 10년 전이었다면 이 작품의 주요인물 면면에 반감을 느끼고 기괴함에 몸을 떨었을지 모른다. 그 땐 선악이 분명해보였고, 내 안에 웅크린 욕망이나 극단의 양가감정을 볼 줄 몰랐으니까. 그러나 이제 인혜, 인혜의 남편, 영혜, 영혜의 남편 그 모두에게 단호히 선을 그을 수가 없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고, 그들의 지리멸렬함조차 싫다기 보단 처연하다.

 

  책을 덮고 나니 한강의 책을 더 찾아봐야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시집을 꼭 봐야겠다. 사물과 사람의 속내를 훑어내는 차분하고 빈틈 없는 눈이 궁금해진다. 이 짧은 작품들 속에 여러 군상의 면면을 자연스레 엵어내는 재주 또한 훌륭하다.

 

  추천하기는... 솔직히 어렵다. '나는 좋았다' 정도는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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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기호의 역사 - 상징의 기원을 탐구하는 매혹적인 여정
조지프 마주르 지음, 권혜승 옮김 / 반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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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전공이지만, 수학 좋아한다. 어릴적 선생들은 수학이 ‘수를 다루는 행위에서 공유하기로 한 특정한 약속과 수학언어(기호)의 모음‘임을 알려주지 않은 채 ‘머리에 때려넣기‘로 일관했다. ‘왜‘를 알려주지 않고! 수학기호가 나고 자라고 죽기도 하는 생물임을 알면 수학이 더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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