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알고 있다 - 물속에 사는 우리 사촌들의 사생활
조너선 밸컴 지음, 양병찬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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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담 1) 노골적인 관음증



  우린 신혼여행 중에 자메이카 해변에 갔어요. 산호 군락을 따라서 스노클링 하려구요. 전 잠수 못해요. 신랑이 가르쳐주려고 애써도 안 되더군요. 우리 말고도 여러 팀이 산호 주위를 탐색하고 있는데, 오직 저만 수면에 떡 걸쳐 있는 거예요. 신랑이 답답해서 제 수영복 반쪽을 벗겨다가(아래....거?) 4m 50cm 아래 산호가지에 걸더니, 저더러 직접 가져오래요. 완전 당황해 뒤뚱거리고 있는데 구경꾼이 모여들대요. 다들 눈을 똥그랗게 뜨구 달랑 두 뼘만 가리고 발광하는 제 몸을 촘촘하게 감상하는 거에요, 세상에! 그 와중에!!!!! 신랑이 달려들어요. 혼자 흥분해서요! 구경꾼들도 덩달아 신나서 눈알을 어찌나 굴리던지! 하지만 죄송하게도~ 부력 때문에 섹시한 장면은커녕 둘이 엉켜서 파닥파닥 하다가 그냥 씨들해졌어요. 생 뽀르노를 고대했던 수많은 관객들은 김이 빠졌는지 흩어져 버리더군요.

 

  잡담 2) 손님 간보는 장사꾼
 

  낮에 머리 피러 동네 미용실에 갔는데, 역시나 바글바글한 거야. 이 언니 머리 만지는 솜씨는 좀 빠져두, 동네 돌아가는 소문도 잘 알지, 빈말이라도 귀에 설탕을 착착 발라주는데다 싸게 해줘서 좋아. ‘어머, 언니 왜 일케 오랜만이야 어쩌구’ 하더니, 스트레이트는 손이 많이 가니까 커트 손님 몇 명만 먼저 해주겠대. 단골이니까 사정 봐달라니 어쩌니, 늦게 온 사람까지 해줘서 두 시간을 기다렸어, 아 써글! 귓속말로 “언니 미안, 절반만 받을게.” 하니 참았지. 약 바르고 잡지 보고 있으니까 첨본 손님이 왔어. 근데 뜨내기라고 비싸게 부르대. 또 바가지 씌우네 했지. 그러거나 말거나 그 여자보다 훨씬 싸게 머리한 게 기분은 좋더라, 히히.

 

  1)의 호기심 가득한 관음증 환자들(?)은 산호아파트 주민 물고기다. 두 사람이 잠수연습을 할 땐 무심하다, 뭔가 요란한 '사건'이 벌어지자 심상찮은 낌새를 알아채고 바싹 다가와 들여다본다. 2)의 손님 간 보고 밀당하고, 만만하면 바가지 씌우는 '우리 동네 미용사 언냐'는 청소놀래기 이야기를 보자 떠올랐다. 그들은 노련한 사업가다.

 

 

  잘 빠진 파랑 물고기가 첫눈에 들어왔다. 이쁘다!

  책소개를 읽으며 내가 원하던 책이란 느낌이 왔고, 친구에게서 갈취했다.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Byond beef)]을 읽으려다 거의 책 두께 1/3을 차지하는 미주에 기가 질린 적 있다. 그 책을 쓰기 위해 만난 수많은 사람과 읽은 수많은 연구물과 책, 보고 듣고 뒤진 뉴스의 나열. 꼭 그 책을 써야만 한다는 강한 의지와 오랜 노력을 증명하는 목록이 너무도 풍성했다. 

  리프킨은 오늘날 우리가 공장식 축산업 시스템에서 어떻게 동물을 생산해 죽이는지 알라고 증거자료를 들이민다.

 

  "네 식탁에 노릇노릇 구워 올려진 그 소 말야. 네 입에서 살살 녹자고 좁다란 틀에 갇혀 꼼짝 못한 채 물, 사료, 성장촉진제를 억지로 퍼먹었지. 겁나 우울하고 여기저기 아프겠지? 안 돼, 죽지마! 항생제도 때려넣을 거니까, 먹어. 널 죽일 적당한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라고! 널 갈갈이 찌져서 돈을 갖겠어허 ㅡ 이런 거지, 뭐. 

 

  응? 어때, 그 고기 맛 있어?"

 

  [물고기는 알고 있다]에서도 비슷한 삘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몇 년 전, TV에서 뉴스를 듣고 그야말로 기함을 했다.

  '물고기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모 대단한 선진국 연구진이 발표했습니다.'

  설마? 진짠가? 그럼 물고기를 먹으면서 가책을 느끼지 말라는 건가. 오호!?

 

  이 책을 보니, 그 빌어먹을 뉴스가 떠들어댄 연구를 언급한 것 같다. 물론 개소리 소소리 닭소리란다. '뇌에 신피질(neocortex)이 있어야만 고통을 느낀다'는 그릇된 전제로 '고로 물고기는 아플 수 없다'는 결론을 낸 거라나.

 

  여튼 그 뉴스를 보았고 이런 정보를 접하지는 못하는 누군가에게, 물고기는 그저 몸속 프로그램대로 파닥이는 '자동기계'로 남을 터이지만.

 

 

 

  내 부모님은 축산업에 종사했다. 아버지는 개, 돼지, 닭오리 따위를 직접 도살했다. 어릴적부터 꿈에 개, 돼지, 닭오리가 꾸엑꾸엑 소리쳐대는 걸 보며 울었다. "죽이지 마요! 죽이지 마요!" 그러다 내가 도살되는 꿈도 꿨다. "싫어! 싫어! 안 죽을래!" 언제부턴가 삶은 개다리짝을 품에 끼고 북북 뜯어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남의 살이 맛나서 도통 끊을 수 없는 거다. 개, 소, 돼지까지 끊고도 '치느님! 치느님!'을 부여잡고 양심과 싸우고, 먹고, 싸우고, 다시 먹고, 싸우다 또 뜯어먹고... 그, 랬, 다.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안다. 개, 소, 돼지, 닭오리도 고통을 느끼는 걸. 똥 무더기 위에 구르고 좁은 우리 안에 갇혀 미치다가 절단된다는 걸. 가축을 먹이기 위해 쏟아붓는 곡식과 물을 인간들이 나눠쓴다면, 누군가 굶거나 목 말라 죽는 일조차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심지어 난 지금 밖에 나가 똥구덩이나 녹슬고 작은 철창에 구겨져 처박힌 개, 소, 돼지, 닭오리를 사진 찍어올릴 수 있다. 돈사 옆에 구덩이를 파고 폐사한 돼지를 던져넣고 방치한다는 업자도 안다. 하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살을 안 먹기는 정말로 힘들다.

 

  하물며 표정 없고 피도 묽고 소리치지도 않는 물고기를???? 어림 없다.

 

 

 

  저자 조너선 밸컴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물고기 종은 척추동물 종 중 60퍼센트나 돼요. 데본기 화석 중에 '엄마물고기'란 녀석은 뱃속 아기가 탯줄로 엄마와 연결돼 있어요. 걔네도 섹스를 했단 거죠! 우리가 공기에 적응했듯, 물고기는 물에 잘 적응해서 계속 진화 중이죠. 우린 도무지 상상하기 힘들지만 물속에서 듣고 냄새 맡고 맛도 느껴요. 소통도 하고 학습도 하고, 오직 즐겁기 위해 놀이도 해요. 어쩌구저쩌구, 주저리주저리.

 

  텍스트만으론 못 믿겠어서, 솟구치는 의심을 풀기 위해 '위대한 구글신에' 독수리타법으로 기도문을 올렸다.

 

      fish.... use tools....

 

 

  헉, 조개를 바위에 패대기쳐서 깨먹는다.

 

      fish loves..... touch....

 

  헉?! 쓰다듬어 달라고 사람 손에 달라드는 녀석들이 보인다.

 

  초딩 수준으로 단어만 쳐넣어도 이미지와 동영상들을 찰떡같이 찾아주신다.

     

    fish playing, fish drawing circles.... 마구 두들여 본다.

 

 

 

 

   

  바다 안에 이글대는 저 태양을 보라!!!!

 

 

  자애로운 구글신께서 은혜를 베푸사 깨달음으로 충만해진다.

  ( "아버지 구글님 당신의 광신도가 되리니!" )

 

 

 

  헌데 벨컴이 원하는 건 '그저 아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물고기를 존중해달라 한다. 고통을 주지 말라 한다. 잔인무도한 대량학살을 멈추어달라 한다. 인간이 흘려보낸 화학물질과 쓰레기와 어업도구 때문에 바다가 오염되고 그들이 영영 멸종하고 말겠다고 안타까워 한다.   

 

  "제대로만 알면, 인간은 세상에서 훌륭한 공동선을 얼마든지 행할 수 있다."

 

  이 책 마지막 문장이다.

 

 

  밸컴의 책을 덮고 나서, 고등어 대가리를 쳐내 두툼한 몸통을 딸래미에게 튀겨주었다. 그러면서도 노르웨이 고등어의 치밀하고 단단한 근육이 바다환경에 탁월하게 적응한 증거임을 알아보며 찜찜했다. 찬통 안에서 반짝이는 달짝지근한 멸치의 눈을 보며 차마 젓가락을 대지 못했다. 감옥을 탈출하려다 낚시바늘같은 갈코리가 내 몸을 관통해 아악 소리를 지르는 꿈을 꾸며 새벽에 깼다. 

 

  불행하게도 저자의 치밀한 계락에 한 년은 제대로 걸려든 거다.

  (이 게 출판사의 목적은 아니었을 것 같지만. ㅎㅎㅎ )

 

 

  다만, 누구라도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그저 물고기에 대해 알기만이라도 해주었으면 한다. 물고기를 존중하라고까진 않으니,

 

  길 가다 횟집 수조 안을 단 1분이라도 봐주시라. 유리 건너서 생기 잃은 눈으로 이쪽을 분.명.히.보.고.있.는. 물고기 하나와 마주해 주시라.

  그가 누구인지 잠시만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가 느끼는 공포와 서글픔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다면,

 

  벨컴이 원한 '공동선'은 아주 더디게라도 한 독자 안에서 시작되고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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