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방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3
다니자키 준이치로 외 지음, 김효순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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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거의 따라잡았(다고 믿고 있)지만, 그럼에도 일본과의 문화적 격차를 새삼 실감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바로 일본의 근대문학을 접할 때이다.

1900-1950년 사이에 쓰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부터 미시마 유키오에 이르기까지, 일본 소설들을 읽을 때면, 그 뛰어난 문학성과 오늘날 읽어도 전혀 고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세련됨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동시대에 쓰인 한국 소설들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물론 한국소설 중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수준 차이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살인의 방>은 이상미디어에서 나온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으로 제목과 같이 약간 으스스한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의 느낌이 나는 작품만을 엄선하여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당대 유명했던 4인, 다니자키 준이치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기쿠치 간, 히라바야시 하쓰노스케의 작품이 각각 2~3편씩 실려 있다.

오늘날에야 장르소설, 대중소설, 순문학 소설 등이 뚜렷하게는 아니더라도 대략적으로 구분 지어진다면, 저 1900-1950년대 사이에는 소설가들이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소재를 다양하게 다루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이 쓰인 시대였던 것 같다. 그냥 장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인지 호러나 미스터리 장르의 결을 따라가면서도 장르문학 특유의 가벼움(?) 없이 마치 순문학과 같은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살인의 방>의 경우, 공포소설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에 한해서이긴 하지만(미리 말해두지만 귀신은 안 나옴) 장르소설 외에는 읽지 않는 사람, 순문학 외에는 보지 않는 사람 양쪽을 모두 커버할 수 있을만한 책이다. 실려있는 작품들이 모두 간결하면서도 아주 재미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기쿠치 간의 <어떤 항의서>라는 작품인데, 자신의 누나를 살해해놓고 감옥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뒤 멋대로 마음의 평안을 찾은 범인에 대한 원망을 외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게 아무리 봐도, 영화 <밀양>의 원작이라고 하는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미세한 설정이 다르므로 표절이라고까지 말하긴 어렵겠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어떤 발상(?)이 너무나 흡사해서 여러모로 의구심이 들었던 작품이다. 시기적으로 따지면 당연히 <어떤 항의서>가 먼저 쓰였고, 아마 어떤 식으로든 이청준 작가가 영향을 받을만한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또한 히라바야시 하쓰노스케가 쓴 <예심 조서>의 경우 매우 짧은 분량임에도 플롯이 정교하고 설정이 매우 기발하여,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나리오 공부하는 사람들이 보면 아주 좋은 참고가 될 만한 작품이었다. 핵심 구조는 그대로 가져오되 디테일만 바꿔서 장편화 시켜도 좋을 것이고.

그 외에 다니자키 준이치로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들이야 당연히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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