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생 때 뭣도 모르는 상태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었으나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덕분에 하루키는 뭔가 팬시하지만 지나치게 멋을 부리고 가볍다는 편견과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20년 넘게 생전 들여다보지도 않다가 페친님의 추천으로 2년 전쯤 처음(인 줄 알았는데 알라딘 기록을 뒤지다 보니 사실은 그보다 10년도 더 전에 <빵가게 재습격>이란 에세이를 읽은 것을 알게 되었다)으로 그의 에세이를 읽게 되었는데, 진짜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그걸 계기로 완전히 좋아하게 되어 그 직후 20여 권 정도를 연달아 읽었던 것 같다.

이후로도 중고서점에 갔을 때 안 읽은 하루키의 책이 눈에 띄면 보이는 족족 사들여서, 현재 우리 집에는 하루키의 책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그렇게 책장에 꼽아놓고 난 뒤에는 이상하게도 왠지 손이 가질 않았다. 에세이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사두고 안 읽은 하루키의 책만 한 20권 될 듯.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은 있는데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서가에 가서 뭘 새로 읽어볼까 고민할 때도 한 번도 눈길을 끈 적이 없다. 따로 의식해본 적은 없었지만, 읽으면 좋으나 안 읽어도 무방한 그런 책들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는지도.

오랜만에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다. 여전히 읽으면 좋고 안 읽어도 무방한 그런 이야기들이다. 나이가 들어 죽기 직전에 병상에 누워 아아.... 내가 그 책을 읽었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할만한 책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읽고 있으면 여전히 좋다.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안정감을 느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들이 중요한 것처럼, 독서를 할 때도 치명적인 걸작, 영혼을 뒤흔드는 수작들 말고도 이런 소소한 기쁨과 안정감을 주는 글들이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보기엔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들 일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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