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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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본인은 소설은 잘 읽지 않으며, 소설을 굳이 읽을 때는 출간된 지 20년 이상 지난 것만 읽는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살짝 기겁했다. 이야기인즉 소설은 오직 고전만, 혹은 여러 사람에 의해 검증된 작품만 읽는다는 뜻일 테다. 물론 소설을 읽는 것만큼 읽지 않는 것 또한 자유이고 고전을 소중히 대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큰 이점 중 하나를 놓치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좋은 소설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어떤 보편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소설과 시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동시대에 쓰인 소설들, 특히 젊은 작가들이 쓰는 최신간의 소설들은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인물들이 과거와 비교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더 중요해진 것은 무엇이고 더 하찮아진 것은 무엇인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는 무엇인지 등등. 물론 시대의 흐름을 알아서 어디다 쓸 것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딱히 할 말은 없지만.

한국소설을 좋아하고 즐겨 읽지만, 그러면서 좋아하는 작가들 역시 많지만, 박상영 작가는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당연히 좋아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가장 특별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젊은 작가의 거의 선두주자라고 할 만큼 그의 소설에는 색깔이 뚜렷하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특별한 이유는 그의 작품이 누구보다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말 그대로 요즘 사람들, 신인류이다. ‘쿨’한 (듯 보이는) 것이 세상 제일의 가치인 동시에, 섹스는 매우 중요한 삶의 요소이지만 어떤 중대한 의미부여도 해서는 안되고, 구질구질한 것을 질색하며 자기 연민을 할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젊은 청년들. 그의 이야기들이 그토록 빛나는 이유는 세간의 말처럼 그가 퀴어 서사를 풍부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이 과거의 어떤 전형적인 인물들과는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 본인은 그러한 자신의 인물들을 연민도, 동정도, 옹호도 아닌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의 이야기들에는 항상 ‘쿨’ 해 보이려고 아득바득 애를 쓰다가 결국은 구질구질해지고 마는 좌절의 서사가 등장한다.

박상영 작가의 두 번째 책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으며 정말로 놀랐다. 데뷔작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읽었을 때도 이렇게 재기 발랄하고 신선한 젊은 작가가 탄생했다니 하고 기뻐했는데, 두 번째 소설을 읽으면서는 이 사람이 장차 현재의 매우 잘 쓰는 고만고만한 작가들을 뛰어넘게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지금 쓰는 연애소설 말고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전제의 이야기이지만.)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은 직업이 작가이며 외모는 본인을 그대로 묘사했다고 할 만큼 비슷하다. 하는 일, 취향, 성격, 특징 무엇이든 자기 자신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해 거의 자기 자신을 캐릭터화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얼핏 자서전 혹은 사소설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모든 소설은 작가의 일부분을 담고 있지만, 주인공이 작가 자신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박상영이 쓴 소설을 읽다 보면 어디부터가 허구고 어디부터가 현실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러나 많은 소설가들이 자신을 투영한 인물을 그릴 때 어쩔 수 없이 약간의 나르시시즘 혹은 자신도 모르게 변호하는 입장으로 방어적인 그림을 그리는데 반하여, 박상영은 소설 속 ‘영’을 가차 없이 다룬다. 조금의 동정심도 없이 비웃고, 조소하며, 계속 나락에 빠뜨린다. 정말 여러모로 놀라운 지점이었다. 대담한 문체, 신랄한 유머, 능수능란한 플롯, 거기에다가 임팩트 있는 마지막 마무리들. 훌륭한 데뷔작만큼 그 이상으로 훌륭했던 두 번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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