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아주 오래전에 신점이라는 걸 한 번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졸업하고 취직 전 잠깐 다른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였으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생각해보니 아아아주 오래전까지는 아니네. 물론 처음부터 가려고 해서 갔던 것은 아니었고.

인턴은 나를 포함해서 총 3명이 채용되었는데, 인턴보다는 거의 비서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각자 임원 한 명씩 배당받아서 옆에서 딱 붙어서 시중을 들었다. 그렇게 임원실이 있는 곳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애초에 평직원들은 거의 만날 일이 없었고, 그러면서 같은 층에서 근무하던 행정 업무를 담당하던 몇 살 연상의 계약직 직원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되었다. 점심도 같이 먹고 가끔 퇴근 후 디저트 같은 걸 먹으러 가기도 하고.

꽤나 오래전, 아주 잠깐 같이 했던 사이라 사실 지금에 와서 정확한 디테일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어떻게 생겼었고,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하는 것 등등. 오직 남아있는 것은 같이 신점을 보러 갔던 기억뿐.

그녀는 늘 친절하지만 미묘하게 악의가 섞여있는 타입으로(누구나 한 명쯤 이런 사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웃으면서 은근 미운 말을 한다든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묘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예를 들어 당시 만나던 애인이 취직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근데 남자친구가 첫 월급 받아서 뭐 사주진 않았나 보네? 하긴, 남자들은 마음 없으면 돈 안 써. 걔랑 결혼까진 힘들겠다.”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든지.

아니 애초에 결혼 자체를 할지 안 할지 하고 싶은지 아닌지 모르는데 대체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고. 명확한 적개심이 아니라 더 기분이 나쁜 그런 종류의 미묘한 악의.

그때는 지금보다도 더 어려서 뭘 잘 모르고, 어차피 잠깐 만날 사이이기도 하고 해서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도대체 왜 저럴까 싶은 생각은 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지만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은 사람 특유의 어떤 마음이 그런 식으로 표출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 마음은 주로 결혼에 대한 집착과 엮이곤 했다.

그녀는 타인의 애정사나 연애 문제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나를 포함해서 다른 인턴들의 연애 문제에 굉장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거기에 일일이 코멘트를 했는데, 그런 코멘트의 끝은 대부분 비슷하게 끝났다. “어휴, 나도 결혼을 하려고만 했으면 벌써 몇 번은 했을 거야.” 그러면서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헤어졌던 옛 애인들의 단점을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녀가 고작 30살에 불과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무슨 일이든 결혼으로 귀결시키는 그녀의 집착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역시나 인생의 어떤 전환점으로서 결혼을 바라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마치 결혼을 하면 인생이 뭔가 풀려나가고, 결혼을 하지 못하면 지금 이대로 계속 꼬여있고 하는 식으로. 요즘에 와선 상상도 못 할 이야기들이지만, 아무튼.

하여간 분명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지만 또 이상하게 친밀하게 굴어서 밀어내기는 어려웠던 그녀가, 어느 날 퇴근 전에 다가와서는 같이 신점을 보러 가자는 것이다. 압구정에 아무나 만나기 힘든 유명한 도사님이 있는데 자기가 무려 6개월 전에 간신히 예약을 잡았다나. 그런데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가 못 가게 됐다면서 너무 좋은 기회라 아까워서 그러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겠다고 했다. 달리 할 일이 없었던 것도 있고 궁금한 마음도 컸다.

퇴근 후에 같이 지하철을 타고 압구정에 가서 로데오 거리를 지나 주택가 골목 안 쪽으로 굽이 굽이 들어갔다. 그러고서 그 ‘도사님’을 만났다. 이 도사님을 만난 부분도 지금은 흐릿해져서 거의 가물가물한데, 그녀의 “저는 결혼을 언제쯤 할까요?”라는 질문에 그 도사님이 “음... 못할 수도 있겠는데?”라고 답했던 것만은 기억난다. 옆에 앉아있던, 결혼 얘기는 묻지도 않았던 나에게는 의외로 빨리 할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유명한 도사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의 어처구니없는 대답이다. 애초에 “할 수도 있다” 혹은 “할 것 같다”는 건 엄청나게 애매모호한 여지를 남긴 것 아닌가.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신점을 보고 나오는 길에 그녀가 했던 이야기였다. “용하다고 하더니 다 헛소리 같아. 다른 사람한테 가서 다시 한번 봐야겠어.”

오래된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 이유는 이언 매큐언의 신간 <검은 개>를 읽은 뒤 ‘믿음’과 ‘영적인 존재’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언 매큐언은 본래 서사의 제왕이라 불릴 만큼 서사를 구축하고 그걸 밀어나가는 힘이 대단한 작가인데, 이 <검은 개>는 굉장히 예외적이게도 서사, 즉 스토리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사위가 장인과 장모에 대한 회고록을 쓰면서 그들 두 사람이 서로 얼마나 다른가를 깨닫는 것이 전부다. 읽는 사람에 따라 엄청나게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같은 사안을 놓고 캐릭터들이 계속 토론과 논쟁을 하는 터라 거의 철학 서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논쟁은 대부분 믿음과 이성의 대립에 관한 것이다. 장인 버나드의 경우 이성의 힘을 믿고 과학과 사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반면 장모 준은 영적인 관념을 중요시 여긴다. 당연히 많은 면에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처음에 열렬한 사랑에 빠졌던 두 사람은 계속 지지부진한 갈등과 싸움을 거듭하고, 결국 떨어져서 살게 되는데, 그런 와중에도 서로에 대한 집착이나 애정을 끝끝내 포기하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세상에는 사랑하는 감정과는 별개로 정말 서로 너무나 안 맞는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들 사이에 어떤 식으로 갈등이 발생하는지를 굉장히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그들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즉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이 ‘믿는 인간’, 그리고 ‘믿지 않는 인간’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 버나드 쪽에 훨씬 더 가까웠던 사위 제레미가 버나드는 몰랐던 준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조금씩 생각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그렇다고 믿지 않는 인간이 믿는 인간이 되는 것까지는 아니고. 믿지 않는 인간이 믿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한다고 해야 할까.

이것은 아마도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와도 일치할 터인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처럼 느껴지는 이언 매큐언이, 어떤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 이들의 생각에 뭔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제레미는 준이 영적인 것, 믿음, 등등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진저리를 치고 짜증을 내지만, 후에 준의 그러한 믿음의 배경에 간단한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무엇이 있었음을 깨닫고 묘한 상념에 빠진다.

극 중에서 버나드는 사위에게 준의 영적인 신념을 두고 “나는 곤충 한 마리를 죽였다고 자연이 뱃속의 아기에게 복수할 거라고 믿는 기분은, 진심으로 믿는 기분은 어떤 걸까 상상해보려고 노력했어. 준은 너무 진지했어.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그런데 나는 솔직히 상상이 안 됐어. 마법을 믿는 그런 생각이 내겐 너무나 생경해서...”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비록 버나드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소설에서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준이 그런 믿음, 어떤 영적인 성향을 지니게 될 수 없었던 배경이 제시된다. 그걸 보고선 나 역시 어느 정도 준을 이해하게 되는 측면이 있었다.

나는 오래전 신점을 보러 갔다가 나오는 길에 그녀가 했던 말을 듣고서도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점을, 사주를, 타로를, 아무튼 일반적으로 ‘미신적’이라고 불리는 어떤 행위들의 근간에는, 사실 ‘믿음’보다는 ‘희망’ 쪽이 더 섞여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흔히 사람들은 미신이나 사주팔자 혹은 각종 종교를 가진 사람을 ‘믿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진짜 ‘믿음’이라면 그 믿음에 근거하여 도출된 결과, 즉 전달자의 말을 백 퍼센트 수긍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는 그렇지 않고,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이 나올 때까지 찾아다니는 것을 보면 결국은 믿음보다는 희망의 문제에 가깝다고 봤던 것이다.

<검은 개>를 읽고 오래전의 그 일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문득 기존에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어떤 ‘믿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물론 그때의 그녀와는 별관계 없는 일이지만, 변화를 직접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 일지 몰라도, 그 씨앗을 잉태시키는 것은 결국 ‘믿는 사람들’ 인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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