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로>. 올해 나온 편혜영 작가의 신작 소설집이다. 이로써 편혜영의 작품은 4권 째인데, 아마 별 다른 일이 있지 않는 한 (노벨상을 탄다든가, 엄청나게 혁신적인 작품이 나온다든가 등등) 이 책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은 보게 되지 않을 것 같다. 책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책은 훌륭했다. 작가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다. 이 어둡고 음울하고 황폐한 세계를 견뎌내기에 나의 멘탈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작품을 읽어본 것이 아니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편혜영의 세계는 언제나 황폐하다. 황량하고, 쓸쓸하고, 음습하다. 그 황폐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각종 사건, 사고, 이혼, 사기, 정리해고 등으로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고, 회사에서 잘리고, 불구가 되고, 혼자 남겨지고, 버려지고, 엉망이 된다. 그야말로 ‘생’ 그 자체에 속아 넘어간다. 주인공이나 인물을 그렇게 마구잡이로 다루는 작가들이 종종 있지만, 이 정도는 참 드물다 싶을 정도로 무자비하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이유로 불행의 한 복판에 떨어진 사람들은 생을 원망하고, 저주하고, 타인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조금씩 정신이 부서져간다. 정신이 부서진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다.

사실 평소에 해피엔딩만 고집하는 것도 아니고, 꽤나 우울하고 어두운 이야기도 곧잘 읽는지라 왜 유독 편혜영의 작품들을 읽기가 힘든가 생각해봤는데, 인물들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인물들이 불쌍하고, 안타까운데 한편으로는 너무나 혐오스럽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느끼는 나 자신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든다. 사실은 그게 작가가 의도한 바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인생의 진실인 것 같기도 하다. 동정은 종종 혐오를 불러오기도 한다는 것. 이 정도로 몰아붙일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라면 못할 것이다.

미국에서 상을 받은 <홀>의 원작 단편인 <식물 애호>를 비롯하여 <소년이로>, <우리가 나란히>, <원더박스>, <개의 밤>, <잔디>, <월요일의 한담>, <다음 손님> 총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8개의 작품 모두 훌륭한 소설이었다. 다만 다시 읽지는 못할 것 같다. 마지막에 실린 <다음 손님>이 가장 좋았다. 동시에 가장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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