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과 출산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 보지만, 군대와 (신생아의) 육아가 여러모로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군대를 안 갔다 왔으므로 단언할 수는 없고, 어디까지나 들은 바를 종합해보면 그렇다.

폐쇄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 자유에 극히 제한이 생긴다는 것, 그럼에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기 전까지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것, 어쨌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수월해진다는 것(소위 ‘짬밥’이 있다는 것), 같은 상황을 겪는 내부인끼리의 유대감과 동질감이 생긴다는 것, 등등. 그리고 당사자들에게는 엄청나게 대단한 문제들이 밖에서 보기에는 전혀 흥미도 관심도 유발하지 않는다는 것까지도.

내가 말이야, 초소에서 근무했을 때, 밤에 보초를 서고 있는데 말이야, 양말에 구멍이 나서 말이야, 그 밤에 무진장 추웠거든, 그래서 그때 내가 어떻게 했냐면... 어쩌고 저쩌고 중얼중얼. 이러면 듣는 사람은 진짜 미친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힘들었다는 것 알고, 고생한 거 당연히 알지만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다. 대놓고 말은 못 해도 제발 그만! 이렇게 되는 것.

그런데 실은 육아 문제 역시 똑같다. 조리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는데요, 밤에 한 숨도 안 자고 내내 울어서요, 계속 안고 달래다가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눕혔는데요, 아 글쎄 이 녀석이 제 얼굴에 오줌을 싼 거 있죠, 아빠 얼굴에요. 제가 그때 입을 다물고 있었기 망정이지 푸하하하하. 이런 경우도 잘 보면 말하는 사람 혼자만 열심히 떠들고 있다.

군대생활을 안 해봐서 그렇다거나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원래 모든 힘든 일이 그렇지만 그 안에 있을 때는 정말 죽을 것 같고 미칠 노릇인데, 일단 그 상태를 벗어나면 그저 남의 일 같기만 하다. 그런 면에서는 다녀온 사람이나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겪지 않았기 때문에 지루하고, 겪은 사람들은 겪어 보았기 때문에 지루하다. 결국 그 안에 있는, 즉 같은 상황을 현재 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사람들만 절박한 동시에 흥미로운 것이 바로 군대나 육아 이야기다.

실은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비슷한 이유로 육아서적이나 다른 사람들의 육아 일기(신생아 한정이지만)를 잘 읽지 않는다. 물론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고, 두렵고, 힘들고, 외로운 그 상황,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일일이 털어놓고 싶은 그 마음 자체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냥 너무 힘들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한편으로는 지루하기도 하고, 그 이상으로 버겁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일단 재미가 없다. 그래서 네이버에 있는 육아 웹툰 등도 사실 잘 보지 않는다. 아기 낳는 만화인가도 안 봤고.

그럼에도 쿠도 칸쿠로의 <나도 애라니까>는 정말 오랜만에 아주 즐겁게, 그리고 흐뭇하게 읽은 육아 에세이였다. 쿠도 칸쿠로는 일전에 적은 바 있지만 일본의 유명한 극작가이다. 드라마나 연극 대본을 쓰는 것이 본업이지만 이외에도 배우, 소설가, 영화감독, 밴드 기타리스트 등으로 엄청나게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인물이다. 특유의 코드가 있어 호불호는 많이 갈리지만 어쨌든 누구나 인정하는 그야말로 천재형. 10여 년도 더 전에 일본 드라마 I.W.G.P를 시작으로 쿠도 칸쿠로에게 빠지게 되었는데, 그 덕에 한창 때는 하루에 10시간도 넘게 일본 드라마를 보곤 했었다. 그게 계기가 되어 나중에 일본에 가서 살아보기도 하고, 일본 문학도 공부하고 했으니 아무튼 나에게 있어서는 인생에 꽤나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 중 한 명인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했지만 어디까지나 작품을 좋아했던 것이라서 인간 쿠도 칸쿠로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었다가, 일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쿠도 칸쿠로의 에세이를 발견하고 읽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1970년생이라는 것, 30살에 I.W.G.P를 썼다는 것, 24살이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는 것, 결혼한 지 10년 만에야 아이를 낳았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고, 국내에 <나도 애라니까>라는 다른 에세이가 이미 나와있다는 것도 알고 읽게 되었다.

<나도 애라니까>는 본래 딩크족이었던 그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을 적은 육아 일기인데, 주 1회씩 만 3년 넘게 연재한 분량을 담았다. 어떻게 신문에 주 1회씩 칼럼을 연재하지.... 아무튼. 그렇게 빈도가 잦은 만큼 임신 단계에서부터 출산, 신생아에서 어엿한 어린이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아주 상세히 적혀 있다. 언제 이유식을 하고 언제 뒤집기를 하고 언제 말을 하기 시작하고 등등. 기존에 육아 일기들과 매우 동일한 형식이지만 마치 강아지나 고양이 기르기, 혹은 식물 재배기처럼 아주 섬세한 관찰을 유머와 섞어 적어 놓았기 때문에 아 맞다, 우리 아이도 이맘때 이랬지, 맞아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 하는 감각을 되살리면서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이가 나지 않은 아기 간식으로 한국에서는 떡뻥(떡국떡을 튀긴 하얗고 부드러운 과자)을 먹일 때 일본에서는 전병을 준다는 소소하고 깨알 같은 정보를 비롯하여 아이들이 어릴 때 가는 곳은 주로 백화점이나 마트라든지, 놀이터에서 모르는 엄마들과 말을 섞게 된다든지, 아이를 데리고 식당에 가는 것이 눈치가 보인다든지 등등 한국이나 일본이나 (아마도 세계 어딜 가나) 아이 기르는 것은 다 똑같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육아 일기이지만 어쨌든 에세이의 한 형태이므로 쿠도 칸쿠로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역시 굉장히 잘 드러나는데, 아이를 거의 신생아 단계에서부터 대등하게 대우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 적이었다. 역시 무슨 일이든 어떤 직종이든, 결국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갖추는 것이 기본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고.

간간이 등장하는 부인과의 에피소드 또한 굉장히 재미있었다. 쿠도 칸쿠로 자체가 엄청 내향적이고 예민한, 한편으로는 유머를 좋아하고 긍정 지향적인 예술가여서 이런 사람의 부인은 어떨까 싶었는데 아내 역시 굉장한 사람인 것 같았다. 20대 초반에 아무것도 이룬 것도 없고 돈도 없고 샤워는 코인 샤워(찜질방처럼 돈 내고 가는 곳)에서 며칠에 한 번씩 겨우 하고 심지어 이가 좋지 않아 앞니가 빠진, 그러나 그것을 해 넣을 돈조차 없을 만큼 가난하고 바빴던 연하의 예술가(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백수 혹은 룸펜)를 거두어 거의 키우다시피 했으니. 물론 쿠도 칸쿠로 자체가 어릴 때부터 재능이 뛰어나고 떡잎이 있었겠지만,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갖추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일전에 읽었던 쿠도 칸쿠로의 다른 에세이 <지금 뭐라고 했지?>는 아무래도 일본의 예능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일본 드라마나 영화배우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전혀 재미를 느끼기 어려울 듯해서 추천을 하지 않았는데, 이 육아 에세이는 쿠도 칸쿠로의 팬은 물론 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물론 아이에게 전혀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여전히 큰 재미를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출산을 준비하는 분들이나 어린 아기를 키우는 분들에게는 웬만한 육아서적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될 듯한 느낌이었다. 재미도 있고, 실제로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 대한 마음의 대비도 되고. 키워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문득 그 맘 때의 아이를 떠올리게 되고 말이다. 나도 우리 아이들의 성장기를 좀 더 성실하고 자세하게 기록해둘 것을 그랬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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