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이었나, 올 초였나, 인터넷에서 매우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더랬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여성이 11개월 간 이태원에 있는 한 식당에서 30차례 넘게 난동을 부리고, 결국 참다못한 식당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경찰서에서도 계속 난리를 피우다가 차고 있던 생리대를 벗어서 경찰의 책상 위에 던졌다는 내용이었다. 대단히 엽기적이거나, 충격적인 그런 범죄까지는 아닌데, 뭐랄까 좀 이해가 안 가는 특이한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치지 않고서야 특정 식당에 30번이나 찾아가서 난동을 부린 이유는 무엇이며, 하필이면 생리대를 던졌던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식당 주인은 왜 그전까지는 가만히 있다가, 그러니까 30번이나 될 때까지 꾹 참고 있다가 그제야 신고를 했단 말인가. 이 사건이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궁금한데, 아마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대부분의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건 반드시 스스로가 납득 가능한 이유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헤어지자는 연인의 통보 앞에서 쿨하게 알았다고 돌아서는 대신, ‘왜 그런지 이유만이라도 알자’며 매달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들은 언제부터 그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인지, 그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전까지 이별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인생에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자신이 왜 그런 상황에 처했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한다. 하다못해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자연재해를 당하거나 하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원인이 명확하지 않을수록 오래도록 상황을 곱씹으며 이유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은 ‘밝혀지지 않은 이유’에 관한 책이다. 워낙 유명해서 장편인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4편의 짤막한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이었다. 4편의 이야기 모두 떠난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을 다룬다. 각각의 이야기에서는 누군가 자살, 병, 사고 등으로 인해 죽고, 남은 사람들은 그들이 ‘왜’ 떠났는지, 그때 그들이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한다. 왜 죽을 이유가 없는 남편이 자살했는지, 여자아이를 꼬시러 갔던 학창 시절 친구는 왜 그다음 날부터 학교에 돌아오지 않았는지, 왜 남편은 바람을 피웠고 자신은 그런 남편을 잊지 못했는지, 어린 시절 자기 때문에 죽을 뻔했던 친구가 살아난 이후에도 왜 결국 죽고 말았는지.

표제작인 <환상의 빛>의 주인공 유미코는 끊임없이 죽은 전남편을 떠올린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남편과 결혼해 행복한 신혼을 보내던 유미코의 삶은 어느 날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진다.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와 100일짜리 아기를 남겨두고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주변의 모든 이가 의아해하는 죽음이었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 딱히 우울해할 만한 문제도 없었고. 빚도 없었고, 더구나 그날 아침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던 남편이 왜 갑자기 기차에 뛰어들고 싶어 졌을까. 재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에 적응하여 살아가면서도 유미코는 이러한 의문 때문에 남편에 대한 생각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책이 끝날 때까지 이유는 밝혀지지 않는다. 유미코는 계속해서 생각하지만, 그런 유미코에게는 놀라운 깨달음이나 통찰 대신, 현 남편의 “사람은 혼이 빠져나가는 병에 걸리면 죽고 싶어 지기도 하는 거야”라는 무심한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4편의 이야기 모두 마찬가지인데, 명확한 답이 없다. 이 소설에 대한 평이 사람마다 굉장히 갈린다고들 하던데, 아무래도 책이 끝날 때까지 무엇하나 뾰족하게 밝혀지는 게 없기 때문인 듯하다. 무언가 해답을 알고 싶어서 읽었는데 뭐야 이게? 싶을 수도 있었을 것.

참고로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굉장히 잘 읽었다. 어린 시절 나는 뭐든지 애매한 것을 참지 못했다. 좋은 것, 나쁜 것, 옳은 것, 그른 것, 재미있는 것, 재미없는 것. 그러나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세상에는 명확한 것보다 불명확한 것이 더 많다고 느낀다. 어렸을 때는 스스로가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파악하는데 능한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살면 살수록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실은 그 편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까. 돌이켜보면 나 자신이 했던 행동 중,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훗날 어떤 식으로든 이유를 갖다 붙이고 결론을 내어보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것은 먼 훗날의 생각일 뿐인 것이다. 그때 그 당시가 아니라.

소설은 매우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에 있어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 한 켠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딱히 이 소설 때문만은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생각해보면 인류의 삶도 지역별로 편차가 심하고, 한국의 상황이 이렇게 안정된 것 또한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어려서와 성인이 된 지금이 이렇게나 다른데, 노인이 된 세상은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고, 내 아이들이나,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지금의 세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그런 생각들이 이어지다 보면 조금 무서워진다.

책을 읽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도 보았는데, 영화 역시 책만큼 좋았다. 불안하고, 아련한 느낌이 책 보다 더 강조되어 있었다. 고레에다 감독의 최근 작품들과는 인물이며 화면을 다루는 방식이 많이 달랐지만, 다른 의미에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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