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시작됐던 소설 수업이 여름이 시작할 무렵 끝이 났다. 한 달가량 쉬었다가 지금은 또 다른 수업을 듣고 있다. 봄의 수업은 아주 짧은 초단편소설 쓰기반, 새로 시작한 것은 일반적인 분량의 단편소설 쓰기반.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듣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이야기의 구조를 파악하고 행간을 읽는 것까지 배우면서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마침 지난주에는 정이현 작가의 단편소설을 읽고 비평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정이현 작가는 중산층의 위선을 고발하는 작품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업시간에 듣자 하니 데뷔했을 당시 문단이며 평론계에서 아주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모름지기 문학이라면 가난하고, 비참하고, 없이 사는 사람들만 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소설을 쓰다니!! 문학은 마음이 비참하고 결핍된 자들만 다룰 수 있는 것으로 알았건만 강남에서 출생하고, 내내 강남에서 성장하고, 여전히 강남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그런 사람들의 가슴속에도 결핍이 있었다니!!!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그녀의 작품을 ‘강남 문학’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그런데 읽어본 사람들은 아마도 알겠지만, 정이현의 이야기 속 인물들, 남들이 보기에는 부족한 것 하나 없이 보이는 그들의 삶도 사실 여타의 문학작품 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네처럼 어딘가 결핍되어있고 불안하다. 현재의 행복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과, 그것이 깨지려 할 때의 번민, 그러면서 마음속의 윤리적 잣대를 아무렇지 않게 져버리고 스스로를 기만할 수 있는 위선, 그 이후에 찾아오는 고통,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안으로 파고들면 속에서부터 썩어가고 있는 그런 삶이 너무나 잘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이야기했다. 사실 인간은 다 비슷한 것 같다고.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면서 고민 따위는 하지 않고 살 법한 사람의 이면에도 불안과 결핍은 있다고.

사실 이 불안과 결핍,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은 내 마음속에도 늘 있는 것이기에 그 말이야 새삼스럽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이어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반면에 남들 눈에는 아주 비참하고 불행해 보이는 삶이라도, 그 안으로 들어가면 아주 아주 실낱같은 기쁨과 즐거움이 있을 수 있다고. 그 말이 왠지 오래도록 가슴에 머물렀다. 사실 대부분의 위대한 문학작품은 결국 두 가지로 나뉘는지도 모르겠다.
기쁨 속의 슬픔, 혹은 슬픔 속의 기쁨.

애니 프루의 <시핑 뉴스>는 아마도 두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일 것이다. 애니 프루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이 <시핑 뉴스>가 대표작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1994년 처음 소개되었던 이 작품은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14년 만인 2008년에 개정판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올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서도 새롭게 출간되었고. 특이한 점은 그렇게 총 3차례나 출간되는 과정에서의 번역자가 모두 동일인이라는 것. 역자인 민승남 번역가는 초판의 번역이 엉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심혈을 기울여 처음부터 다시 번역을 했다고 한다.

하여간 이 <시핑 뉴스>의 초반부를 읽다 보면, 주인공 쿼일만큼 세상에 불쌍한 사람도 없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못생긴 외모와 우둔한 머리로 가정에서는 부모에게 외면받고, 학창 시절에는 친구 한 명 없이 따돌림을 당한 데다가, 어렵사리 구한 직장에서는 개무시를 당하고, 먼 훗날 인생의 사랑인 줄 알고 만났던 아내는 허구한 날 바람을 피운다. 그렇게 가뜩이나 되는 일 하나 없는 처지에, 바람피우러 나간 아내가 한술 더 떠 차 사고를 당해 죽어버리기까지 했으니 이 이상 불행할 수가 없다. 바람피운 아내가 죽은 게 뭐가 불행하냐고 의문이 들 수 있겠으나, 이 쿼일이란 작자는 매일 대놓고 다른 남자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눈앞에서 섹스를 하는 아내에 대해서, 결코 사랑하는 마음을 단념하지 못하는 바보이자, 그만큼 달리 마음 둘 곳 없이 외로운 인물이었던 것이다.

아내가 죽은 이후 슬픔과 상실감으로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쿼일은 고모의 권유로 두 딸을 데리고 아버지의 고향땅으로 이주한다. 메마르고 척박하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아 나가는 사람은 많아도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는 그런 곳. 농사도 짓기 어렵고 배가 없으면 생활조차 힘든 고난의 땅. 그런 곳에서 쿼일은 고모와 두 딸과 함께 무너져가는 집을 애써 고치고, 코딱지만한 지역 신문사에 취직을 하고, 배 타는 법을 배우고, 사람들과 친해지며 조금씩 적응해 나간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점차 글쓰기 능력을 인정받고, 다운 증후군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살아가는 마음씨 착한 여인을 만나기도 하고, 아주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찾아나간다.

그와 같이 소소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실은 엄청 스펙터클하다거나 뭔가 장엄한 서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중간에 뭔가 긴장이 고조될 법한 순간이 있긴 했지만, 그 역시 조금 지나고 나면 그냥 사소한 떡밥일 뿐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하고. 아마 영화로 만들게 되면 말 그대로 ‘드라마’ 장르가 될 것이다. 그렇게 큰 굴곡 없는 플롯이었다. 그럼에도 나락에 떨어졌던 한 명의 인간이 어떻게든 묵묵하게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점이 참으로 좋았다. 근래에는 드물게 읽은 해피엔딩이었기도 하고.

사실 해피엔딩이라고 해도, 여전히 이 책을 읽게 될 대다수의 사람들보다는 훨씬 힘겹고 버거운 삶일 것이다. 가족의 비밀, 그것도 아주 환멸나는 비밀을 알아버렸고, 두 딸은 여전히 말을 더럽게 듣지 않고, 새롭게 가족이 된 다운 증후군 아들을 키우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쉽지 않은 일일 것이며, 지역은 쇠락하고 있고, 간신히 가까워졌다 생각한 친구들은 하나둘씩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나가고 있고, 신문사 역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는 까닭은 이후로도 쿼일이 그렇게 계속 성실하게 매일을 버텨낼 것이고, 그런 가운데 소소한 기쁨을 찾는 날들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행복은 결국 견디어내는 힘에 달려있는 것 같다. 굳이 이겨내거나 극복하려고 애쓰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만히, 묵묵히 견디는 힘.

직접 읽어보니 번역이 아주 까다로웠다는 역자의 후기가 이해가 됐다. 문체가 마치 노랫말이나 시처럼 리듬감이 풍부해서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추천받아 알게 된 책이었는데 아주 재미있고 흥미롭게 잘 읽었다. 나이가 들수록 용기와 희망에 대해 말하는 책들이 점점 더 좋아진다. 인생이 짧고 허무하다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하고 있는 것과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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