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삽니다
안드레스 솔라노 지음, 이수정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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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본 친구가 놀러왔을 때의 일이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왜 한국 남자들은 다 똑같은 옷을 입고다녀?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왜 죄다 체크무늬 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백팩을 메고 있느냐는 것이다. 에이, 아니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진짜로 죄다 체크무늬 셔츠에 면바지, 그리고 어김없이 백팩을 메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참고로 대학가를 주로 도는 750번 버스였다.) 같은 동아시아 국가 출신에 비슷한 문화를 공유한다는 일본인 역시 결국은 외국인인 것이고, 외국인의 눈에는 해당 문화의 특성이나 자국과 다르게 튀는 지점이 바로 보이는구나 싶은 생각을 했었다.

콜럼비아 작가인 안드레스 솔라노는 10여년 전 번역원의 초빙으로 한국에 방문했다가 한국어 강사였던 이수정씨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콜럼비아에 건너갔다가 다시 한국에 들어와 생활한다. 아내는 한국어 강사로, 그는 (프리랜서 작가라고는 하지만) 반 백수 상태로. <한국에 삽니다>는 그가 한국에 두번째로 들어온 뒤, 이태원에 집을 얻고, 거기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한 책이다. 초기에는 일거리가 없어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하고, KBS에서 라디오 스페인어 디제이의 대타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틈틈이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콜럼비아에서는 이 책으로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애초에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한국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한국인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아니 의식조차 못하는 어떤 부분이 그들에게는 당연하지 않고, 그 간극은 우리에게 재미를 준다. <미녀들의 수다>나 <비정상 회담>같은 프로그램이 꾸준히 인기를 얻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다만 <한국에 삽니다>는 기존의 외국인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나 기행문(?)등과 다르게 “내가 본 한국”에서 끝나지 않고 “한국에 살고 있는 나 자신”으로까지 이어진다. 콜럼비아의 반대쪽에 있는 낯선 곳. 그곳에서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자신.

워낙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주제인데다가, 작가가 매우 유머러스하고 시니컬한 덕분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그가 살았던, 여전히 살고 있는, 이태원은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공간으로, 나에게는 더 특별하게 와닿았던 부분이기도 하고, 한국의 성매매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에로 비디오 등의 ‘특징’을 파악하는 부분에서는 작가 특유의 예리함이 느껴져서 매우 감탄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중간중간 깜짝 놀랄만한 대목들이 있다. 길에서 마주친 낯선 여성을 보고 낭만적인 상상을 하는 부분이라든지, 과거에 어떤 여성과 모텔에 갔던 경험을 말한다든지, 아내와 혹시라도 바람을 피게 될 가능성을 두고 나눈 대화라든지 등등. 그도 그럴 것이 번역을 아내인 이수정씨가 직접 했기 때문이다. 물론 부부사이는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기에 독자인 나로서는 뭐 할 말이 없지만서도, 이런 부분까지 이렇게 솔직하다니 하면서 헉 하고 놀라는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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