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 최현숙의 사적이고 정치적인 에세이
최현숙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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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추천할만한 책이 없냐고 묻기에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장바구니에 담아둔 채로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던 책을 꼽았다. 최현숙의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진보활동가인 최현숙씨는 24년간 결혼생활을 하다가 어느날 여성이 좋아졌다고 돌연 커밍아웃을 하며 이혼을 했다. 그 뒤부터는 애인과 함께 살다가 헤어지면 또 홀로 지내기도 하며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았다. 2008년에는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는 그녀가 매체에 그간 기고했던 글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평소에도 도전을 좋아하고 용기가 있는 지인에게 어울릴 것 같아 추천을 했었는데, 엊그제 직접 읽어보다가 부리나케 연락해야만 했다. 추천 취소예요. 아마 안 좋아할 것 같아요.

직접 읽어보니 호불호가 상당히 갈릴만한 책이다. 논조는 대단히 강하고, 문장은 다소 거칠게 느껴지며, 글을 쓸 때 대부분의 사람이 하기 마련인 기본적인 필터링 따위가 전혀 없다. 음 그러니까 말하자면, 최근에 몸이 안 좋다는 이야기에 누가 섹스를 너무 많이 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자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섹스를 많이 한 것은 맞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고 갱년기 증상이었다고 언급한다거나, 여성 노인의 성생활에 대해 그려낸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데 ‘꼴렸다거나’, 뭐 이런 내용이 가감없이 나온다. 그나마 나의 머리와 손을 거쳐 한 번 정돈된 것이 이러하고, 실제 표현은 더욱 생생하다.

물론 섹스가 다루지 못할 주제는 절대 아니지만, 예상과 너무 다른 내용들이라 좀 놀랐다고 해야하나. 아마도 이토록이나 생생하고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목소리(선정적이란 표현보다는 적나라하다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를 듣는 것이 오랜만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본인 스스로 ‘좋은 여자’와 ‘미친년’ 사이를 널뛰고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와닿는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주장이 상당히 강한데, 해당 부분이 평소 나의 생각과 좀 달라서 불편함을 느꼈던 것도 같다. 아마도 나의 페친들 중 어떤 이들이라면 읽다가 매우 화를 냈을지도.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된 것은 나의,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구석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느라고 모두 애쓴다.”는 그녀의 어머니의 말처럼 그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의 이야기와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폐경기’라는 용어에 대한 의견이나 고부갈등을 바라보는 시각 등 여성주의 이슈를 대하는 것 또한 기존의 페미니스트들과 사뭇 다른 방향이라 신선하게 느껴졌다.

여러모로 이토록 용감하고 치열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1957년생. 생각해보면 그 연배에 결혼생활을 무려 24년이나 하고서 중간에 커밍아웃을 하고 나올 수 있었다는 자체가 엄청난 기백이다. 우리 엄마와 같은 나이인데. 그만큼 삶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강하고 용기 있는 그녀임에도 아이들과 관련한 대목을 읽을 때는 감춰두었던 여리고 약한 부분이 드러난다. 그러고보면 자녀가 성소수자인 경우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부모가 성소수자인 경우의 이야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아들들의 마음과, 그 아들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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