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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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공포영화를 좋아했었다. 여름이 되면 꼭 극장가를 찾아 무서운 영화를 보곤 했다. 에어컨이 빵빵한 극장 안에서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서운 영화 한편을 보고 나오면 그 해 더위는 다 물러갈 듯이 . 무려 15년전까지만 해도.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고부터는 무서운 게 싫어졌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어서인지 혹자는 나 말고도 지켜야 하는 것이 많이 생겨서라고도 했다. 전자의 이유도 있지만 후자의 이유가 더 크게 다가왔다.

책으로 공포물을 접한 건 이번이 두번째 정도 되는 것 같다. 첫번째 역시 일본 소설가 책인데 친구 사이인 두 명의 여자가 결혼한 친구의 남편을 꼭 죽여야만 하는 내용의 소설이다. 마지막까지 긴장하며 읽은 기억이 나서 이번에도 일본 작가의 공포소설에 서평단으로 신청해서 읽게 되었다. 마리 유키코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미 공포 소설로 유명한 작가다.

'이사'에 관한 여섯편의 단편으로 묶인 공포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소설에 녹아내고 있어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문득문득 생각날 것 같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문>, <수납장>, <책상>, <상자>, <벽>, <끈> 차례에 적힌 제목만 봐도 우리가 거주하는 공간과 그를 둘러싼 흔한 물건들. 그것을 볼 때마다 공포적인 스토리가 떠오를 것만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벽>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에게도 있었던 <이웃 사람>에 관한 조금은 무서웠던 일이 있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는 5년 전에 이사를 왔다. 원해서 온 건 아니고 남편의 발령으로 인해 원치 않게 오게된 곳이라 처음에는 너무 싫었다. 신도시라 아파트만 즐비하고 주변에 편의시설은 부족하고 그 때의 나는 운전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다시 전에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마음가짐 때문이었는지 옆집에 사는 부부가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사오고 단지 내 세탁소에서 세탁물을 찾다가 우연히 옆집에 사는 여자분을 알게 되었다. 몇동 몇호요~라고 말하며 세탁물을 찾을 때 그 옆에 서 계시던 여자분이 어머, 우리 옆집이네~라고 했던 말이 또렷이 기억에 남았다. 그 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서 가끔 마주쳤고 그 때마다 인사를 했지만 왠지 분위기가 차갑게 느껴졌었다.(부부만 살고 아이는 없는 눈치였다. 여자분이 나보다 한살 많다는 걸 알았고, 사업체를 운영하는 분이라는 것. 그래서 커리어우먼 같은 차림새로 매번 마주쳤었다.)

그러고 얼마 후 밤 11시가 다 된 시간에 현관 밖 공용공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남자 목소리였는데 누구를 자꾸 부르고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우리집 현관문도 발로 차는지 소음이 전해졌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나가 보라고 했고 그 소란스러움의 장본인은 옆집에 사는 남자분이었다. 술을 조금 마신 듯 했고, 자기 아내가 자살을 시도하고 있으니 119에 신고를 좀 해 달라는거였다. 자신의 핸드폰은 집에 두고 나왔는데 집 비밀번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내가 바꿔놓아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순간 너무 무섭고 당황스러워 남편은 얼른 119에 신고를 했고 10여분 후쯤 119대원들이 도착했다. 119대원이 여자분 전화번호를 남자분에게 물어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남자분의 동의를 얻고 그 집 현관문을 강제로 따기를 몇 차례 시도했지만 현관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러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갑자기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울리고 문이 열렸다. 옆집 여자분이었다.

그때 상황이란. 이건 뭐지?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자살 시도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공포심에서 한 발 물러서게 해 주었다고 할까?

알고 보니 두 분은 부부싸움을 크게 하고 여자분은 지하주차장에 계속 있었던 것. 부부싸움 해프닝(?) 정도로 끝났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그 때 살던 집에서 계약 기간 5~6개월을 남겨두고 짐을 싸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 일은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고 일이 있고 몇 개월 후 옆집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무슨 이유로 이사를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분들이 이사를 가고 한 동안 그 집은 빈 집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전세가 만기 되고 다른 곳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재로 접근하는 방식은 소설을 읽는 이에게 더 무서움을 준다. 실제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일본은 이미 20년전부터 고령화 사회가 시작되었고 인구 감소로 인해 없어지는 지방 소도시도 많다고 한다. 그런 일이 우리나라도 멀지 않았다고 하니 걱정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행정수도 이전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고 있고 가장 젊은 도시로 통계되고 있지만 아는 공무원말로는 생활권마다 신규 학교들을 많이 짓지만 몇 십년 후에는 그 학교들을 어떻게 재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인구감소가 빠른다는 의미다.

작품해설 부분을 먼저 읽고 소설을 읽었더라면 더 이해가 되었겠다 싶었다. 일본 뉴스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소설에 나오는 인물로 활용을 한 듯한데, 그런 걸 보면 세상엔 참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걸 새삼 느낀다.

작품 해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읽으면 안 되는' 유의 책이다. 독자 중에는 '해설'부터 먼저 읽는 사람도 많은 걸로 안다. 원래 권하지 않는 독서법이지만, 이 책에 한해서는 그게 옳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경고한다. 이 책은 '읽으면 안 된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 '해설'부터 읽은 독자는 자신의 행운에 감사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지금 당장 책을 덮고 이 책에서 멀리 떨어지기를 권한다.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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