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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 길 위의 사진가 김진석의 걷는 여행
김진석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4년 7월
평점 :

삶을 돌아보고 싶을때 찾아가는 길 - 산티아고 순례길
연금술사의 저자 파울로 코넬로가 걸어 더욱 유명해진 길.
예수의 제자인 성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며,
프랑스 남부에서 시작해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까지 800km에 이르는 대단한 여정.
보통 하루에 20Km씩 40여일을 걷고 또 걷게 됩니다. 그것도 하루 20~30유로의 경비를 써가며..
이곳에서 그들은 무엇을 얻을지.. 또, 어떤 가르침을 얻게 될지..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이 고행길에 저자가 도전하게 됩니다.
무척이나 걷기 싫어했던 사진가였던 그가 말이죠.
신기한것은, 이 곳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만나는 이들마다 미소를 전하며,
서로를 응원해주고, 아플 때 약을 나눠주고, 목마를 때 물을 건넨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친절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나누는 기쁨, 베푸는 행복을 체험하게 되는 곳입니다.
누군가는 이야기합니다. 인생 최고의 추억을 이 길에서 경험했노라고..

길위의 사진가 김진석..
우연찮게 제주 올레길에 오르게 된 그는, 그곳에서 걸으면서 사람들을 찍게 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왜 자기 주머니를 털어가면서까지 걷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걸으면 뭐가 좋아질까? 걸으면 삶에 무엇이 더해질까? 걷고 돌아가면 일상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저또한 이러한 의문을 품은채로, 저자의 길로 향하는 여정을 함께 바라보게 됩니다. 그의 사진과
그의 글을 보고있노라면, 마치 함께 여정을 떠나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제주 올레길에서 시작된 걷기와의 인연은 비로소 산타아고 순례길로 이어지게 되며,
그곳에서 그가 찍고 싶어했던 사진이 무엇인지 비로소 발견하게 되지요.
" 나는 사람을 찍고 싶고, 그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찍고 싶다. "
걷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던 그가 "길 과의 인연"을 계기로 길 위에서 본인이 찍고 싶어하던 사진,
이전에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며, 길위의 사진가로 거듭나게 됩니다.
길위의 사진가..
진정으로 길을 거닐게 난후, 비로소 그는 길을 걷고, 글을 쓰고, 사진으로 이를 담아내는 3박자를 갖추게 됩니다. 좋은 사진과 좋은 글을 함께 담아내게 되는.. 글도 쓰는 사진가가 되는 축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책에서는 사진과 글이 어우러져, 마치 이들이 제짝을 찾은 양 서로의 의미를 배가시켜 주고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인 조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순례길 여행자들.. 모두 제각의 모습이지만 공통적으로 하는 것이 있지요.
바로 배낭 한켠에 조개를 매달고 여행하는 것입니다.
" 열흘에서 보름정도 걸으니 감각이 사라졌다. 다리에 감각이 없어졌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다리가
움직이고 몸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두 다리에 '걷고있다'는 감각이 사라질 무렵부터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나는 왜 걷는 것일까? "
한가지 분명한 것은 길을 걸으면 복잡한 생각들이 저절로 정리된다는 것이다. 내가 찍는 사진, 살아갈
방향, 살아갈 인생을 찾게 해준다. 끊임없이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묻고 답한다. 길 위를 걸으며...
P. 22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가장 힘든 코스인 피레네 산고개길. 오르다보니 배낭과 카메라 가방 무게에 견딜수가 없었다.
결국 열 검음 걷고 1분 쉬고.. 스무 걸음 걷고 1분 쉬고를 반복하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왜 이걸 견뎌야 하나, 그냥 택시를 부를까.."
그순간, 언덕 밑에서 작은 체구의 할아버지가 올라오고 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아주 천천히..
나보다 훨씬 힘들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내 앞에 멈춰서더니, 씨익 웃으며 말을 건넨다.
"Slow, slow, slow " p.40
책을 보다보면, 단순히 그의 글과 사진이 좋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신기한 점은,
사진과 함께 그의 글을 보고 있자면, 어느새 사진 속의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말을 거는 것만 같습니다.
마치 이들과 함께 길을 걷는 것 처럼.. 함께 여정을 하고 있는 것 만같은 느낌을 전해 받게 되네요.

위 장면에서 갑자기 맘이 울컥합니다. 알 수 없는 감동이 자꾸만 밀려와서..
카미노에 왜 왔냐는 그녀의 질문으로 저들의 대화는 시작되지요. 돌아가신 아버지를 애도하고, 상처
받는 자신을 위해 걷고자 왔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그녀가 말을 하자, 또 다른 사람이 영어로
통역을 하고, 영어를 잘 하는 한국인 친구가 그 말을 작가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저들은 대화를 하게
됩니다. 저들은 그렇게 계속해서 대화를 하게 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게
되는 감동적인 장면.
작가는 책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간접경험의 의미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그 고행길을 거닐고 있는 듯한 느낌을 계속해서 갖도록 만들어 줍니다.
때로는 지쳐 힘들어 하는 모습과 그들의 물집 가득한 맨발사진을 바라보며,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느껴졌으며, 앞으로 그 물집 가득한 발로 거닐어야 할 머나먼 길이, 두려움(?)이 아닌 기대로 가득
차 있는것 또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속에서 전해받는 순수한 미소들과 인사들이 모여
이들이 거닐고 있는 길 위의 아름다운 사람들 모습이 전해지고 있지요.

철 십자가 앞에서
비슷한 속도로 걸어온 이탈리아 부부가 있다. 백발에 흰수염까지 무성한 그 아저씨는 항상 장난기가
넘쳤다. 게다가 말이 너무 빨라, 우리는 그에게 "1초에 세마디"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무척이나
유쾌한 그는,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빠르게 말하곤 했다.
그런 아저씨가 웃음기 없이 경건하게, 침묵과 슬픔에 잠긴 모습으로 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기도를 하고 있는 듯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는 저세상으로 먼저 간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십자가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서던 아저씨의 뒷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P. 134
아저씨에게서 알 수 없는 아픔이 전해져 가슴이 아렸다는 작가의 말에 또 뭉클합니다.
그들의 고뇌, 삶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기에...

그 사람들과 어떠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지 주저리 주저리 적혀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느껴집니다. 그들의 미소속에 담긴 따뜻함이, 그리고 기도하던 모습을 통해
전해졌던 그 아픔들이..
처음에는 성지순례길을 떠나는 작가를 보며 이런 생각들을 하였죠.
성지 순례길을 걸을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 고행길을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또 그리 고생하게 되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하지만, 길 위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걷고 싶어집니다. 그 길을 따라서..
저는 걷는 것보다 드라이브를 더 좋아하지요. 여행 역시 조용하고 정적인 곳보다, 화려하고 즐길만한
곳을 훨씬 더 선호합니다. 그리고 아직 여행 해보고 싶은 지역이 수도 없이 많지요.
하지만, "시간이 허락하면 어디로 떠날래?" 하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 카미노 산티아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