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절망이 희망보다 가깝다 느낄 때, 이 가족을 보라'
천명관(45)은 ‘동시대에 빚진 것이 없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고, ‘괴물’같은 작품 ‘고래’를 내놓더니 이번에는 ‘가족’을 토해냈다. 읽다보면 작가의 관점과 개입이 작품 안에서 깊게 관여한다고 느끼는데 이는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작가의 이력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흡입력이 대단하여 읽고 나면 철자 하나하나를 먹어치울 기세다.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고령화가족>(문학동네.2010)에는 가족이라 하기에는 얼토당토않은 ‘괴짜’ 구성원들이 등장한다.
“..저것들은 낫살이나 처먹고 무슨 웬수가져서 아직까지 늙은 지 에미 등골을 뽑아먹고 있댜?p49" 라고 말 끝나기 채 무섭게 하나 둘 씩 늙은 어머니의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웬수와의 동침은 그렇게 시작되고.
폭력과 사기전과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형 오한모(52)는 소싯적 공사판 연장 ‘오함마’를 연상시키는 행동으로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무기력한 생활과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는 한심한 ‘새끼 밴 도야지’ 취급을 받고, 로리콘 성향을 보이면서 조카 장민경의 분홍 팬티 도난(?)사건은 ‘인간망종’에까지 이르는 치졸함을 그에게 안겨준다.
형 오한모와는 이복형제이며, 여동생 오미연과는 이부남매인 ‘나’ 오인모(48)는 한때는 영화감독이었으나 흥행 참패이후 충무로의 박제 취급을 받는다. 기력을 잃고 무능력감과 알콜에 의지해 나락으로 무섭게 떨어지기 시작하는 오인모를 어머니는 한끼를 제공하며 집으로 호출한다.
“..내가 처한 현실은 무엇 하나 분명한 게 없었다. 플롯은 갈 길을 잃은 채 방황하고 지리멸렬한 일상이 반복되었다.p239"
인생에 대한 두려움과 패배감에 몸부림도 쳐보지만 에로물만큼은 찍을 수 없다는 쫀쫀한 자존심에 슬럼프까지 빠지게 된다. 어느날 그에게 조카 장민경의 ‘담배사건’은 좋은(?) 희생양이 되고, ‘삥’을 뜯으면서도 조카와의 사이에 ‘의리’가 있다 생각한다.
버려진 헤밍웨이의 전집을 구해와 그의 작품들의 주인공과 끊임없이 대입도 해본다. 헤밍웨이는 스스로를 개척하고 자살로 자신을 밀어 넣는 점에서 자신이 닮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오직 운동(運動)함으로써 살아있음을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마지막으로 합세한 여동생 오미연은 어머니의 불륜상대였던 전파사 ‘구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바람잘날 없는 복잡한 남자와의 관계로 동네 어른들에게 눈총을 받지만, 그나마 살림에 보탬이 되는 생산을 담당하는 축이다. 그녀에게는 ‘죄송하지만 저 성질 좀 있’는 중학생 딸 장민경이 있지만 방황과 가출로 온 집안을 ‘왈칵’ 뒤집어 버린다.
어머니는 알고 계신데. 인생을 살아가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여기서 평지풍파(平地風派)의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결코’ 자식들을 몰아세우지 않는다. 그저 “일찍이 꿈을 안고 떠났지만 그 꿈은 혹독한 세상살이에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을p59” 뿐이고, “..세상에 나가 패배하고 돌아온 것이 모두 어릴 때 잘 거둬 먹이지 못한 자신의 탓p61"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 어머니가 다 장성한 자식들에게 하염없이 끼니를 챙겨주는 일에 연연하는 것은 “..무참히 패배시킨 바로 그 세상과 맞서 싸우려는 것에 다름 아니며, 몸을 추스려 다시 세상에 나가 싸우라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가족낚시? 입질이 온다면, 어서 물어야지
조카의 가출 사건을 계기로 보다 싫었던 에로물을 승낙하고, 뒤가 구린 일을 처리하는 대신 조카를 찾아온 오함마를 보면서 ‘나’는 “..원수처럼 미워하다가도 막상 그리운 게 식구인 모양p243"이라고 느낀다. 결국 오함마가 큰 일(?)을치고 외국으로 도피했을 때 기꺼이 몸을 내버릴 수 있었던 것도 나에 대한 기대가 산산조각 나도 그들이 나를 버리지 않은 것처럼 나 또한 그들을 포기 하지 않은 까닭이다.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고령화 가족’이 단지 막장으로 치닫는 오합지졸 인물들의 군상들 집합소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 안에는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인생은 단지 구십 분의 플롯을 멋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곳곳에 있는 함정을 평생 도망 다녀야 하는 일 p45"이라고 처음부터 괄시(恝視)하며 우리에게 가르치면서도 작품의 인물들은 아이러니하게 부딪혀 보고 본다는 점이다.
문학의 힘이 기존의 언어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일이라면 ,한 울타리 안에 모여 있던 개인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성격과 환경이 다른 개개인이 부모로의 회귀로 모여든다는 점에서 현대의 가족의미도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현대인은 원더풀하고 뷰티풀한 인생을 운운하지만, 막장 같은 캐릭터들의 좌충우돌 자리싸움을 보면서 무질서 속에서도 질서를 찾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게 인생은 내버려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