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 ‘외곽주의자’ 검사가 바라본 진실 너머의 풍경들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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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홉스의 만만투(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를 이 책의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싶지 않아졌다. 지극히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에는,

어쩌면 이곳은 대한민국 중심부에 있는 철옹성, 그 성 앞에서 서성이지도 못할 것만 같은 압도감과 두려움이 가득한 그들만이 사는 세계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지극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 나의 친애하는 민원인들이여!.

검사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주한, 수많은 민원인들,

40여 년 전 유부남과 살림을 차렸지만 사빠죄아’(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를 외치며 중혼을 인정해달라는 고 여사, 매번 새로운 사회 분야 면접 문제를 들이대며 너의 생각은 무엇이냐며 시대를 개탄하는 정 영감, 법전 안에서 찾아낼 수 없는 수많은 속 사정들을 겪으며 친애하는 검사 작가는 결국, 깨닫는다. ‘세상의 모든 요구에 답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답이 아니라 다만 관계로서만 존재하는 요구도 어딘가에는 있다는 사실.’.

 

뒤돌아 생각하면.

범법자의 얼굴은 너무 평범했다. 평범한 얼굴로, 평범하게 다가오는 지하철 안의 검은 손길.

타자의 존재를 침범하지 않는 것이 이 세계의 법칙임을 알면서도 유독,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타자의 공간에 침입하고 타자의 인격에 함부로 손을 대는 이들. 뉴스에서 보고 주위의 경험담들을 들으면서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막막함이 앞선다. 이런 범법자의 얼굴을 계속 마주해야 하는 검사는 무슨 생각을 할까.

 

어쩌면 다행.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늘 밥값은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의혹을 받으면서도, ‘절망에 발을 담근 사람들의 요구에 우리는 대부분 흡족한 대답을 내어놓지 못하고, 그래서 무언가를 영원히 촉구 당하는 자리에 서 있음을 아는 검사가 대한민국 사법부에도 한 명쯤 있다는 사실이. 하물며 낯선 임무를 마치고 새롭게 법정 문을 밀고 나간 그들의 상기된 뺨 위로 훅 끼칠 바람의 온도까지 상상하는 낭만적인 검사라면?

 

살다보면.

익숙하지 않은 존재에게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피 한 방울조차 차가울 것만 검사의 이미지를 조금은 벗어나게 해준 이유가, 독일 뮈렌의 어느 눈 쌓인 산골짜기에서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아 헤매는 어는 평범한 검사 가족의 유쾌 발랄 이야기라면 작가는 어느 정도 미필적 고의를 달성한 셈은 아닐까?

 

한겨레문학상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절망에 발은 담근 사람들의 요구에 우리는 대부분 흡족한 대답을 내어놓지 못하고, 그래서 무언가를 영원히 촉구당하는 자리에 서 있다. 그 소리의 반향으로 사람들은 제 절망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절망에게 최선을 다하는 자신을 발견하고자 한다. - P212

그 부정량의 것을 낭만이라고 한다면, 그런 장만이라고 있어야, 한 사람의 생에서 범죄만을 추출하여 계량하는 직업을 가진 자들도 좀 사람처럼 살 수 있지 않겠는가. 낭만이 밥 먹여주지 않지만, 낭만이 숨은 쉬게 해주니까. - P202

세상의 모든 요구에 답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답이 아니라 다만 관계로서만 존재하는 요구도 어딘가에는 있다는 사실, 우리는 서로 답답하고 복장 터지는 관계였지만 어쩌면 그 시절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유일한 벗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15년쯤 지난 어느 날 해보는 것이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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