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좋아하는 책을 꼽으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피천득 님의 "인연"이다. 내가 가진 책 중에 제일 많이 읽은 책이기도 하면서 소중히 다루는 책인데 한 번은 이 책 때문에 친구와 싸울 뻔한 적도 있다. 한날은 술을 진탕 마시고 집에서 해장하기 위해 라면을 끓였다. 마침 냄비 받침이 보이지 않아 친구에게 대신할 것 좀 찾아오라고 했다. 친구는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가지고 왔는데 하필이면 이 책이었던 것이다. 괜한 친구에게 불같이 화를 내면서 두꺼운 전공책을 대신 냄비 받침으로 썼던 추억이 있다. 술 취한 와중에도 알아볼 만큼 좋아하는 책인 "인연"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어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읽혔을 "은전 한 닢"을 비롯하여 내가 좋아하는 "인연", "엄마", "도산" 등 눈을 뗄 수 없는 수필이 빽빽이 실려있다. 특히 좋아하는 몇 가지를 언급했지만, 모든 수필이 마음에 와닿아서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눈과 마음이 즐거워지는 책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몇 작품은 잃어버릴 뻔했다가 겨우 찾아서 이 책에 실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 수필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진솔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경험한 사실만을 모아서 있어 보이게 꾸미는 말을 덜어내고, 불필요한 수식어를 비워내면 만들어지는 글. 잘 쓰지는 않아도 누가 읽든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피천득 님은 수필을 청자의 연적, 난, 학, 청조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 등 다양하게 비유하고 있다.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작가님께서 말하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 바로 우리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나는 어느 정도 자격은 갖춘 셈이다. 안 그래도 요즘 수필을 쓰는 재미가 생겼는데 앞으로 진솔하게 써서 이달의 작가에 꾸준히 올려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