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피천득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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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하는 책을 꼽으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피천득 님의 "인연"이다. 내가 가진 책 중에 제일 많이 읽은 책이기도 하면서 소중히 다루는 책인데 한 번은 이 책 때문에 친구와 싸울 뻔한 적도 있다. 한날은 술을 진탕 마시고 집에서 해장하기 위해 라면을 끓였다. 마침 냄비 받침이 보이지 않아 친구에게 대신할 것 좀 찾아오라고 했다. 친구는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가지고 왔는데 하필이면 이 책이었던 것이다. 괜한 친구에게 불같이 화를 내면서 두꺼운 전공책을 대신 냄비 받침으로 썼던 추억이 있다. 술 취한 와중에도 알아볼 만큼 좋아하는 책인 "인연"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어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읽혔을 "은전 한 닢"을 비롯하여 내가 좋아하는 "인연", "엄마", "도산" 등 눈을 뗄 수 없는 수필이 빽빽이 실려있다. 특히 좋아하는 몇 가지를 언급했지만, 모든 수필이 마음에 와닿아서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눈과 마음이 즐거워지는 책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몇 작품은 잃어버릴 뻔했다가 겨우 찾아서 이 책에 실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 수필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진솔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경험한 사실만을 모아서 있어 보이게 꾸미는 말을 덜어내고, 불필요한 수식어를 비워내면 만들어지는 글. 잘 쓰지는 않아도 누가 읽든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피천득 님은 수필을 청자의 연적, 난, 학, 청조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 등 다양하게 비유하고 있다.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작가님께서 말하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 바로 우리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나는 어느 정도 자격은 갖춘 셈이다. 안 그래도 요즘 수필을 쓰는 재미가 생겼는데 앞으로 진솔하게 써서 이달의 작가에 꾸준히 올려 봐야겠다. ^^;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 인연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을 꼽으라면 이 구절을 꼽겠다. 이 한 줄에 아쉬움과 애절함, 기다림과 후회가 모두 담겨있어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인연이라는 것이 참 얄궂어서 이런 상황을 만드는 걸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인연을 핑계로 안 될 수 밖에 없는 사유를 들먹이고 부족함을 감추며 주저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노력만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인연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슴 아픈 일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지나치는 인연을 통해 성숙해져서 머무를 인연에게 더 잘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인연들에게 감사하며 지금 이순간 내 옆에 머무르는 인연에게 더 잘해야지! ^^;

수필을 좋아하는 분께 "인연"을 강력히 추천 드리면서 마무리한다.

저의 곁에서 좋은 인연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 엄마는 우아하고 청초한 여성이었다. 그는 서화에 능하고 거문고는 도에 가까웠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그는 나에게나 남에게나 거짓말한 일이 없고, 거만하거나 비겁하거나 몰인정한 적이 없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 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그의 사랑 속에서 자라지 못한 때문이다. - 엄마

내가 병이 나서 누웠을 때 선생은 나를 실어다 상해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겨울 아침 일찍이 문병을 오시고는 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 장례에도 참례치 못하였다. 일경의 감시가 무서웠던 것이다.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보다도 부끄러운 일이다. - 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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