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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박규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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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ksh387/20115119513

국화와 칼은 루스 베네딕트라는 걸출한 문화 인류학자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대해서 기술한 책이다. 이 책은 일본 연구에 대해 고전으로 불리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이는 국화와 칼 이후 나온 모든 일본 연구서는 국화와 칼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은 일본 문화의 중요한 체계를 이루는 기리(의리), 기무(의무), 닌죠(인정), 하지(수치)를 최초로 개념화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일본 연구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이 평가는 결코 과장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일본 연구의 고전, 텍스트북이라고 불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자신과 전력은 거의 비슷하면서 임전태세는 기존에 맞섰던 상대가 확연히 달랐던 일본의 행동을 예측하고자 베네딕트를 차출해서 보고서를 작성을 지시했다. 당시 베네딕트는 문화인류학의 가장 중요한 연구 기법인 현지 조사를 하지 않고 각종 문헌과 미국에 있는 일본인 및 일본인 포로와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완성시켰는데, 간접 체험만으로 이 정도의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베네딕트의 놀라운 통찰력을 볼 수 있다. 이때 완성한 보고서가 '일본인의 행동패턴'이며 '국화와 칼'은 전후 이를 더욱 보완하여 나온 책이다.

미국은 일본과의 전투 승리 이후 전후 처리 문제에서 베네딕트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일본을 관리했다. 일본인들의 기무(의무) 관점에서 충을 정확히 이해하고 일본인의 심리에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계층적 위계질서의 최상층인 천황제를 폐지하지 않고, 이를 전범으로 몰아세우지 않은 것, 미군정이 전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일본 행정조직을 그대로 살린 것이 그 결과이다. 이는 천황의 항복 선언이 있자 죽창으로라도 돌격하여 황은에 보답하고자 하는 군인이었던 일본인이 바로 순종적인 민간인으로 돌아갔던 양상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며 이를 기반으로 협조적인 일본 행정조직을 통해 미국은 최소의 비용으로 패전 후 일본을 관리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문화인류학은 순수하게 한 민족 혹은 혈족의 문화를 상세히 기술하여 상대론적 관점과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히는 학문일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심리학 등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정책과 전쟁에 놀라울 만큼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학문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또한, 심리학에서도 그랬지만 자신이 가진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가공할 물적, 인적 파괴력으로 효율적으로 변환하는 시스템을 가진, 인류 역사상 진정한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본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 하다못해 일본으로 여행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일단 이 책을 한번 일독한 다음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여러 번역서가 나왔지만 그 중에 한국에서 최고 일본전문가인 박규태 씨의 번역으로 나온 문예출판사 본을 추천한다. (별외로 국화와 칼의 번역본이 많은 이유는 베네딕트 사후 50년이 지나 국화와 칼의 저작권이 소멸되고 자유 이용이 가능한 텍스트기 때문에 판권료 지급 없이 출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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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http://blog.naver.com/ksh387/20105076364

기아는 인류 역사 상 항상 있어 왔다. 구석기 시절부터 못 먹는 이들은 항상 있어왔고, 농경을 위해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경작지의 유무와 인프라의 확충 정도에 의해 항상 굶주림은 병마처럼 인류를 따라왔다. 이러한 경작지를 기반으로 여기저기 세력들이 결집하여 모자이크처럼 나뉜 것이 지금의 세계지도이고 역사이다. 이 여러가지 색깔로 구분되어진 세계지도를 통해 땅은 정치 권력에 좌우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요즘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또 하나의 권력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다국적 자본들이다. 지금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만 따져본다면 전 세계적으로 식량이 남아도는 이때, 기아문제는 정치 권력과 그에 따른 자본 권력이 좌우하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나 아시아, 남아메리카의 기아 문제는 자연재해들로 인한 불연속적인 기아 문제가 아닌 인프라와 정치 구조 등으로 빚어진 상시적인 구조적 기아의 문제이다. 이들 경작지에는 농업 용 인프라와 시설이 희박하며 정치는 현 상태를 바꿀 의지 없이 이들을 착취하여 자신의 배를 살찌우는데 급급할 뿐이다. 아마도 인간은 배가 채워지면 생각하고, 사고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릴 것임을 염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국제적인 권력도 구조적 기아를 타파하기 위한 일련의 시도에 공격을 가한다. 아직도 자신들의 식민지국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 등 강대국 들은 자국의 이익에 영합하는 식민지국의 부패 정치가들을 선호한다. 아울러 강대국의 정치 권력 배후에 있는 다국적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들 빈국들의 권리를 자유롭게 매입하길 원한다. 빈국의 정부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무언가 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에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면 이들은 정치 권력을 이용하여 각종 폭력적인 수단으로 이를 좌절시킨다. 남미의 수많은 민주, 민중 운동이 CIA의 사주에 의해 무너진 것으로 이는 증명된다. 하지만 우리는 촘스키가 지적한 것처럼 정치, 자본, 여론 권력의 영합에 따른 기만과 선전 전술로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세계는 여전히 식민지 시절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의 기반은 고전적 자유주의와 그에 따른 신자유주의에 있다.

애덤스미스의 고전적 자본주의에서 자유주의는 출발 했다. 자유는 인류 역사 상 진보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가치이긴 하지만 애덤 스미스의 자유는 자본가들의 자유를 말할 뿐 민중의 자유를 말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귀족, 왕들의 특권 층의 간섭을 벗어난 자본가들이 자신의 자본을 마음대로 굴릴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 주는 것이며, 이는 곧 대항해시대와 결합하여 폭발적인 식민지 확대와 파괴적인 식민지 정책을 낳았다. 이들 식민지는 지금도 과거 이들 자본가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선정된 농산물과 공산품을 집중적으로 생산한다. 식량이며 경제며 자급이 안되는 것이다. 그 결과 이들은 아직도 기아와 가난한 상태에 놓여 있다. 결국 고전 자본주의가 잉태한 세상에 우리는 아직 살고 있고, 잠시 케인즈의 수정 자본주의를 거쳐 다시 한번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냉전의 종전 이후 세상은 모든 것의 구속을 벗어난 자유로운 자본 이동에 방점을 둔 신자유주의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가장 큰 수혜자는 금융자본이다. 현재의 최신 기술 발달로 실시간으로 수십억 달러의 자본이 움직이며 실물경제보다 이렇게 움직이는 금융자본이 창출하는 허수의 부가 더 많다. 투기 자본의 거대화와 세계화로 인해 전세계의 금융불안은 이제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금 세상의 모든 이들이 고통 받고 있으며 과두적인 금융자본가들만 자신의 배를 살찌우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삶은 힘들며 더 이상 나아지지 않고 있다. 사회 구조는 역동성을 잃고 고착화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도 그럴진대 가난한 나라의 상황은 어떻겠는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곡물 사정 또한 국제적인 자본의 결정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국제 곡물 시장은 자본에 의해 가격구조가 결정되며, 자본이 없는 빈국은 이 가격결정구조에 아무런 개입권이 없다. 수요보다는 투기적 자본의 움직임에 곡물 가격은 움직인다. 이들은 이 가격을 그냥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를 타파하기 위해 국유화 등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개혁적인 정책들은 자본을 좌지우지하는 다국적기업들의 직접적인 공세나 다국적 자본가들과 유착하고 있는 강대국들의 개입에 의해 무너진다. 기아는 시장에 의해 해결하게 할 수 없다. 장 자크 루소는 약자와 강자 사이에는 자유가 억압이고 법이 해방이다 라고 했다. 이윤 극대화를 부르짓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자유는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마음대로 착취할 자유를 말할 뿐이다. 아무 구속 없이 자유롭게 시장에 의해 거래가 된다면 모두가 평등하다는 건 헛소리에 불과하다. 적절한 규범과 법이 오히려 정의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식량 문제 또한 자본의 이익 극대화라는 시장 논리가 아닌 실질적인 후생의 증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멜서스의 자연도태라느니,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느니 하는 괴물 같은 이야기를 하지 말자. 우리는 괴물이 아니다. 게을러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하지 말자. 출발점이 이미 같지가 않다.

먹는 것은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최소한의 조건이다. 신자유주의라는 괴물같은 이데올로기로 행동의 합리화를 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연대와 인류애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최소한 우리는 알아야 한다. 행동하는 지식인이 될 수 없을지언정, 최소한 분별있는 시민은 되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인간은 마음 속에 정의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에 책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꺽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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