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신의 풍경 - 일본문화의 내면을 읽는 열 가지 키워드 이상의 도서관 28
박규태 지음 / 한길사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일본 정신의 풍경은 아마테라스에서부터 불교,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의 정신 지도에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각 개념들을 설명한 책이다. 저자는 이 개념들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일본의 책과 사상가의 주장을 소개하며 우리의 시선이 아닌 일본인의 생각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일본연구가로 한국에서 손꼽히는 박규태 선생이다. 일본 사상가의 글과 생각에 대한 탁월한 그의 해석과 직관적인 개념 풀이는 책 제목 그대로 일본 정신의 풍경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책에는 가미(지상으로 내려온 신들의 역사), 사랑(그림자가 짙을 수록 아름답다), 악(선과 악은 다르지 않다), 미(인간 본성의 밀착된 미의식), 모순(차분한 격정 혹은 돌연한 체념), 힘(참된 문명의 길은 무엇인가), 덕(윤리의 양면성), 천황(인간의 가면, 신의 가면), 초월(그리스도교는 왜 일본에 뿌리내리지 못했나), 호토케(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의 개념이 나온다. 하지만 이 개념들과 전체 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관점은 일본인들에게는 보편적 윤리나 도덕, 종교 대신 현세 기복적인 종교와 상대주의적 선악관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는 애니미즘에 기반한 일본의 신들이 절대신이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신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신은 팔백만에 달하며 자연, 사물, 죽은 인간, 심지어는 원령에까지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런 종교관이 가져온 일본인의 정신 세계와 아울러 마코토(정성을 다하는 것)과 하지(수치심)을 중시하는 문화로 인해 선악에 있어서도 개개인의 내면적 도덕보다는 외부의 시선이 중요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순수하게 몰입하는 태도가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여기에는 원리적인 도덕관이 들어설 자리는 없으며 그로인해 일본에는 상대적인 도덕관이 발달하였다. 결국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의 선과 악의 기준은 일본인에게는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선과 악의 공존의 모순은 일본인들에게 모순이 아니다.

아울러 일본의 신도(神道) 숭배의 중심에 있고 신들의 시대와 일본 건국 이후로 줄곧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천황의 존재는 현재의 영원을 상징한다.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는 천황은 보편성이 아니라 '일본'과 '지금'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특수성을 상징한다. 기타 문화권을 관통하는 보편성 대신 '지금의 일본'이라는 특수하고 개별적인 사고관은 편협한 국수주의와 민족주의로 빠질 수 있다. 선과 악에 대한 일본인의 상대적인 태도와 일본 사상의 시공간적 개별성은 2차대전 당시 일본의 광기에 대한 적절한 설명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나니 가깝고 먼 나라로만 치부했던 일본에 대해서 정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깨닮았다. 일본은 세계사적 흐름과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로 오늘날 전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다. 서구에서 젠(zen)이라 불리는 동양적 스타일을 지칭하는 말도 실상은 일본의 불교을 뜻하는 일본어가 보통명사화 된 것이며 일본풍을 지칭하기 위해 쓰인 말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점차 일본 문화가 침투해 오고 있으며 젊은 층은 이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일본 문화와 그의 유래, 기원에 대한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며 저자가 그려낸 일본 정신의 풍경은 일본을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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