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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춘당 ㅣ 사탕의 맛
고정순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1월
평점 :

옥춘당.
제사상에 올려져 있었지만, 한 번도 맛보지 않았던 사탕.
그 사탕을 김순임여사를 통해 맛보았다.
달콤했고, 따뜻했으며, 뭉클했다.

삶은 순환한다는 걸 느끼는 지금, 우리는 부모로부터 혹은 조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담고 담으며 자라난다.
그리고 이제 넘치고 넘쳐 그 사랑이 흘러내릴때쯤 우리는 다시 그 사랑을 나에게 준 그들에게 고스란히 아니, 더 덤을 얹어 되갚는다.
한 줌 흙으로 빚고 생기를 불어 넣어 태어난 아기가 아이가 되고,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며 다시 아이가 되어 한 줌 흙으로 되돌아간다.
삶의 순리를 우리는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보이는 그대로, 다가오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여름방학마다 조부모님 댁에서 지내며 고여 있는 여름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쑥쑥 자라난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할아버지의 마음과 할머니의 웃음을 배웠다.
장난기 많고, 다정다감했던 할아버지가 할머니 김순임씨에게 온마음을 다하는 모습은 작가의 그림속에 그대로 피어올랐고,
입안 가득 퍼지는 옥춘당의 향기처럼 독자의 마음 곳곳에 스며들었다.
할머니는 조용했고, 말수가 없었다.
늘 할아버지에게 의지했고, 그런 할아버지는 있는 그대로의 할머니를 보듬으며 함께 했다.
그랬기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함.께.하지 않으면 온전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 다가올 그 날이 할아버지에게 먼저 찾아왔다.
자식들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아니 구지 알리지 않았던 할아버지의 그 마음때문에, 할아버지의 병을 늦게 알았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염려하는 마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할머니는 전혀 다른사람이 되어갔고, 말을 잃었다.
할머니 자신의 온 마음을 채워주었던 할아버지의 죽음은 할머니에게 점점 세상의 소망이 줄어드는 듯한 느낌이었을 것 같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에게 옥춘당의 맛을 잃지 않도록 해준 할아버지의 그 마음과 손길을 이제 더 이상 느낄 수 없을테니까. ㅠㅠ
하지만, 그런 할머니 곁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에서 그 여름을 흡수하며 자란 '내'가 있었다.
' 내'안엔 뜨거운 기억과 추억들이 가득했고, 그랬기에 할머니를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다독일 수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자르며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오늘을 생각하면
잘려 나간 머리카락 수만큼 후회하게 될까?
p93
결국 요양원에 모시게 된 가족들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나'또한 바쁘다는 핑계로 할머니를 찾는 횟수도 줄었다. 요양원에서 할머니는 늘 그렇듯 말이 없는 채로 자신의 세상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 했다.
할머니가 기다리는 단 한사람.
옥춘당의 달콤함을 늘 느끼게 해 준 단 한사람.

"한 사람의 몸에서
시간이 빠져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걸 알았다."
p111
기나긴 시간을 홀로 지내며 가슴에 담아온 옥춘당의 달콤함을 한겹 한겹 벗기며 그시간을 보냈을 할머니.
그렇게 쓸쓸함도 인정하고 묵묵히 기다리고 기다리며 만난 할아버지에게
다시 달콤한 옥춘당을 받고 활짝 웃는 할머니의 모습은 결국 내 시야에서 뿌옇게 흐려졌다.
나이가 점점 들어감에 따라 체감하게 되고 염려하게 되는 부모님의 연로하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무거운 마음이지 않을까.
하지만, 작가는 『옥춘당』으로 그 무거움을 덜어내주었고, 순리라는 단어 앞에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해주었다.
할 수 있을때, 함께 하며 그 시간을 쌓아가는 것.
함께 웃고, 함께 먹고, 함께 즐거워하며, 나의 시간을 내어드리며 함께 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옥춘당』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여준 그윽한 사랑, 서로가 서로를 향한 그리움,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가족들의 마음까지 담아내며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가운데 있는 감정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져주었다.
작가의 그림체와 많지 않은 글밥은 옥춘당이 나타내는 사랑, 이별, 그리움등의 감정선을 그대로 살려냈고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의 색의 등장은 우리에게 찬란했던 기억속의 추억들을 떠올리게도 했다.
단순한 그림인듯 하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섬세한 얼굴 표정은 더욱 몰입하며 책을 감상하게 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더욱 와 닿아 마음을 떨리게 하고 눈시울을 붉게 만들수도 있을 것 같다.
그 가운데 진한 그리움은 또 다른 위로의 온기가 되어 옆에 있는 소중한 이들과 손을 꼭 잡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옥춘당. 그 사탕의 이름처럼 옛스러움이 묻어나지만 현실을 반영하며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진한 그리움과 감동이 남겨지는 이야기다.
◀ 해당 글은 길벗어린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고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