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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에이번리의 앤 (티파니 민트 에디션) - 190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시 모드 몽고메리 저자, 박혜원 역자 / 더스토리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초록색 지붕의 긍정 아이콘 앤.
앤이 현재의 모두의 앤이 될 수 있었던 건,
삶의 희노애락을 앤만이 가진 초록빛 풍성함으로 독자의 마음을 가득채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며
책장을 덮고 『에이번리의 앤』을 그려본다.
긍정의 아이콘인 빨간머리 앤으로 멈춰있었던 나의 기억속 앤이
이렇게 건강한 에너지를 가진 사려깊고 따뜻한 여인으로 자랐구나~ 하며
왜인지 모르게 두근두근하며 책을 읽었다.
자신의 꿈을 접고 마릴라 아주머니와 지내려 초록지붕으로 돌아와 선생님으로 일하는 앤.
선생님으로 일하며 자신의 부족함에 좌절도 하며 고민도 하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변화를 몸소 이끌고 행동하는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예전처럼 상상속에서 자신의 꿈만 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로 끌어와 변화를 모색하는 앤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마릴라 아주머니의 먼 친척 데이비와 도라를 돌보는 앤의 모습에선,
자신이 매슈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에게 받았던 사랑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초록의 농도가 짙어졌구나~하며 웃음지었다.
"나는 생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 난 이 세상에 지식을 더 많이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
물론 그게 더없이 고귀한 꿈이란 건 알아.... 하지만 난 사람들이 나로 인해 더 즐겁게 지낼 수 있다면 좋겠어.....
내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작은 기쁨을 누리고 행복한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어."
소소한 행복의 가치를 알고 그 행복을 주변사람들과 나누며 누리려 한 앤.
체벌을 하곤 죄책감에 괴로워도 하지만, 자신의 원칙을 지키려 애쓰고 다시 일어서는 앤에게서 예전의 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상상력이 보여주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고 있는 두 사람. 앤과 폴 어빙.
앤의 어릴적 모습과 비슷해보이는 폴과의 관계에서는 속 깊은 앤의 모습을 볼 수있어서 또 한번의 감동을 준다.
"결국엔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날들이란 아주 눈부시고 경이롭고 신나는 일들이 이어지는 그런 날 같아요.
진주목걸이에서 진주알들이 알알이 흘러내리는 것처럼요."
...
일과 꿈, 웃음과 배움이 앤의 시간들을 채웠다.
p261
앤의 시간들이 채워질때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점점 영글어지는 앤을 만나는 기쁨이 참 컸다.
어쩌면 내가 빨간머리앤의 모습에서 나의 시간을 채워 에이번리의 앤을 지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 지나온 시간을 앤으로 투영하여 뒤돌아본걸 수도 있겠다.
그리웠던 나의 그 때 그 시간.
앤과 똑같지 않지만, 앤이 고민했고 앤이 상상하며 앤이 꿈꿔왔던 것을
나도 비슷하게 거쳐왔기에 더 마음에 와닿는 에이번리의 앤.
"정말 멋진 생각이야, 다이애나.
자기 이름을 아름답게 남길 수 있는 삶을 살라는 거구나.
비록 처음부터 예쁜 이름은 아닐지라도....
사람들 마음에 이름 자체가 아니라 아름답고 기분 좋은 것들이 떠오르도록 말이야.
고마워, 다이애나."
p312
앤이 나누는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는 진주알처럼 꿰어진다.
앤. 나는 네게 고마워.
청춘의 황금기.
그때의 에이번리에서의 앤에게 길버트를 빼놓을 순 없겠지.
마지막장 길버트의 현명함과 우직함에 나도모르게 콩콩콩댔던 가슴은 숨기지 않겠다.
'......
결국 로맨스란 말을 달리는 멋진 기사처럼 거창하고 요란하게 삶 속에 들어오는게 아니라,
오랜 친구처럼 조용히 다가와 옆에 서는 것인지도 몰랐다.
로맨스란 산문처럼 나타났다가,
갑작스레 쏟아져내린 빛 한줄기에 숨어 있던 리듬과 선율을 드러내버리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어쩌면......
사랑은 초록빛 꽃망울 속에서 황금의 심장을 지닌 장미가 피어나듯이 아름다운 우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p444
돌아올 여름을 기다리고 그 시 간을 기다리면 된다는 말이 지금 내게도 위로가 된다. 힘이 된다.
마음에 스며들어 기다렸다는 듯 제 자리를 찾아들어가 자리잡은 문장들이 나를 기분좋게 만드는 책.
에이번리의 앤.
지나온 시간도 다가올 시간도 앤이 보여준 발자취로 인해 다시금 한없이 소중해 보이며
현재의 웃음과 삶의 기쁨을 온전히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가 필요하고, 쉼이 필요하며, 잠시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면 에이번리의 앤을 추천한다.
모퉁이 길을 돌아 시원한 에이번리의 바람이 불어올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