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 관하여 - 시몬 베유와의 대화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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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에 관하여: 시몬 베유와의 대화》

이 책은 신을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날 우리가 왜 더 이상 신을 경험하지 못하는지, 그 조건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다.

한병철은 시몬 베유라는 고독한 사상가와 나란히 앉아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왜 신은 침묵하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그의 대답은 뜻밖에도 단순하다.

“신은 죽지 않았다. 신의 드러남을 마주할 인간이 죽었다.”

우리가 신을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의 현존을 마주할 수 있는 주의력과 머무름의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진단은 이 책의 출발점이다.

“가장 높은 수준의 주의는 기도와 같다.”

기도는 더 많은 말을 하는 일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일에 가깝다.

시몬 베유의 ‘탈창조’라는 개념도 이 책의 중심에 놓여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를 선택하는 용기. 하지 않을 자유, 성과로 환원되지 않는 삶. 이것이 베유가 말한 탈창조다.

“나의 신이여,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게 하여 주소서.”

이 문장은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말에 떠밀려 사는 우리에게 낯설고도 불편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바꿔놓는다. 우리는 고통을 제거해야 할 오류처럼 여기지만, 베유에게 고통은 인간을 세계와, 타자와, 그리고 신에게 더 가까이 데려가는 통로다.

“시간에서 영원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아픔이 필요하다.”

고통은 신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가까운 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사유가 이 책에 놓여 있다.

《신에 관하여》는 주의, 탈창조, 빈자리, 고요, 아름다움, 아픔, 무위라는 일곱 개의 주제를 따라 전개된다. 이 책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독자에게 빠른 이해보다 느린 머무름을 요구한다. 한 번에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덮고 펼치고를 반복하게 만드는 책이다.

신을 믿는 이에게는 신앙의 언어를, 믿지 않는 이에게는 삶의 태도를 되묻는다. 이 책을 읽는 일은 답을 얻는 경험이라기보다, 질문 앞에 오래 머무르는 연습의 과정에 가깝다.

*위 도서는 김영사로부터 제공받아 탐독 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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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헤엄칠 수 있었다
고야나가 도코 지음, 이다인 옮김 / 허밍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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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헤엄칠 수 있었다》 | 고야나가 도코 지음

주인공 우노하라는 교사다. 그는 Z세대 작가가 쓴 베스트셀러 소설을 접하게 되는데, 소설의 내용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대체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이 이야기를 알게 된 걸까? 동시에 작가 역시 이야기의 주인공인 우노하라를 찾고 있었다. 청소년 작가 쓰마도리는 우노하라가 근무하는 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의 공통된 지인인 히무라의 이야기를 추적하게 된다.

“그런 거짓말뿐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 바람에 나는 지금 내 존엄이 처참하게 짓밟힌 기분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아팠던 쓰마도리와, 고등학생 시절 갑작스러운 시한부 선고를 받은 히무라는 글과 음악이라는 자신들이 사랑하는 예술로 서로 소통했다. 히무라는 우노하라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쓰마도리에게 들려주었고, 쓰마도리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완성했다.

우노하라가 읽은 소설에는 많은 거짓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겪었던 아픔은 너무 예쁘게, 감동적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그는 오래도록 괴로워했다. 자신은 이 사건 때문에 고향에 발길을 끊었는데, 대중들에게는 그의 경험이 낭만적인 이야기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도 그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이랑 히무라 씨는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서만 만나는 심해어 같네요.”

세상은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무지갯빛 물고기를 원한다. 그래서 비극조차 보기 좋은 색으로 덧칠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의 진짜 우노하라와 히무라는 학교에서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감 없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그들의 스토리 역시 소설처럼 눈부시게 아름답지 않았고, 낮의 반짝이는 바다보다는 경계를 알 수 없을 만큼 어두운 바다에 가까웠다.

“이누카이는 소설 속 사쿠와 히다카가 푸른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무지갯빛 물고기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의 나와 히무라는 결코 그런 존재가 될 수 없었다. 우리는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을 헤엄쳤다. 우리는 남들이 우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늘 신경을 썼다. 오직 어둠 속에서만 우리는 자유롭게 꼬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시한부 이야기를 다룬 일본 소설을 떠올리면 흔히 떠오르는 풍경들이 있다. 그러나 《밤에만 헤엄칠 수 있었다》는 그런 흐름을 비켜간다. 비극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는가? 타인의 죽음이 반드시 누군가의 희망이나 감동이어야 하는가? 이 책은 독자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낮의 빛 아래서는 드러나지 않는, 차가운 밤의 바닷속을 헤엄치는 존재들의 이야기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눈부시지 않아도 의미 있는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과, 조용하지만 깊은 용기를 발견하게 된다.

*위 도서는 허밍북스로부터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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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 없어 ㅣ 꿈꾸는돌 45
김지현 지음 / 돌베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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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자는 없어》 | 김지현

김지현 작가의 《유자는 없어》는 여행자들이 스쳐 가는 거제라는 공간을 지안을 통해 ‘살아야 하는 곳’으로 다시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적인 섬이지만, 그 안에서 자라는 청소년에게 거제는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쉽게 떠날 수 없는 장소다. 이 소설은 그 모순된 감정을 조용한 목소리로 따라간다.

주인공 유지안, 별명 ‘유자’는 섬을 떠나 살아본 적 없는 아이이다. 넓은 도시를 자유롭게 누비는 삶을 동경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자신에게는 영영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한다.

중학교 시절 전교 1등이라는 성적은 지안을 설명하는 가장 쉬운 말이었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오며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학생이 되자 그 기준은 무너진다. 경쟁의 밀도가 달라진 공간에서 지안은 숨이 막히고, 공황 증상을 겪는다. 이는 입시의 압박이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의 다른 이름이다.

지안 곁에는 예고 입시에 실패한 뒤 방 안에 머무는 친구 수영이 있다. 멈춰 선 듯 보이는 수영은 사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지키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다. 지안은 수영을 다그치지 않고, 둘은 함께 영화를 보고 같은 장면에서 웃으며 조용한 동행을 이어간다. 말해지지 않은 감정 속에서도 관계는 그렇게 유지된다.

떠났다가 돌아온 혜현 언니의 존재는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해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남긴다. 타인이 붙인 이름이나 이력보다, 오랜 시간 애정을 쏟아온 것들이 한 사람의 본질이 된다는 문장은 지안과 수영에게 조용한 위로가 된다.

“그렇게 이름이 바뀌어도 그 사람의 가장 진실 한 부분은 어딘가에 각인처럼 남는다. 남들이 하는 말이 아닌, 오랜 시간 꾸준한 애정을 쏟으며 지켜 온 것들에 담겨 그 사람 을 설명해 주는 진짜 ‘본질‘이 된다.”

《유자는 없어》는 극적인 변화 대신 작은 회복을 그린다. 공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지안은 ‘유자’나 ‘전교 1등’이라는 수식어를 내려놓아도 여전히 ‘유지안’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조금은 알아간다. 지금 이 자리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오늘 또한 충분히 의미 있음을 말하는 소설이다.

《유자는 없어》는 극적인 도약 대신 작은 변화를 따라간다. 지안의 공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미래가 선명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안은 이제 안다. ‘유자’, ‘전교 1등’이라는 수식어를 내려놓아도 여전히 ‘유지안’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추천사에 적힌 말처럼, 이 소설 속 인물들이 흔들리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나’가 되고 싶은 마음. 머리를 자르고, 이름을 바꾸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 거라 믿는 그 열망. 《유자는 없어》는 그 마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오늘 또한 충분히 의미 있다고.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조금 자라 있다고.

*위 도서는 출판사 돌베개로부터 제공받아 탐독 후 작성된 서평입니다.

#돌베개 #유자는없어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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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서울 - 공간·사람·정치로 빚어낸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김진애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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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록 서울》 | 김진애

🔖
시간을 품은 공간에는 이야기가 많다. 이야기를 많이 품은 공간일수록 매력적이다.

안산에 살던 시절, 서울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솔직히 내가 살던 동네는 뚜벅이에게 꽤 잔인한 곳이었기에—역과는 멀고, 버스 배차 간격은 길고—‘서울에 살면 이런 것도 즐길 수 있구나’ 하는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통근이 힘들어 서울에 살기 시작했고, 이제 서울은 특별한 날에만 찾는 곳이 아니라 내가 매일 걷고, 타고, 머무는 일상의 공간이 되었다.

『이토록 서울』은 그런 나의 서울살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 책이다. 이 책은 서울을 하나의 이미지로 소비하기보다, 공간과 사람, 그리고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결을 따라 천천히 이야기한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골목과 광장, 익숙한 동네들이 사실은 수많은 선택과 삶의 흔적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뚜벅이라서 그런 걸까. 나는 아직도 서울이 좋다. 대중교통만으로도 도시 대부분이 연결되고(기후동행카드 최고 👍🏻), 조금만 걸으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동네가 펼쳐진다. 책 속에서 “광장은 무대이고 사람이 주인공이다”라는 문장을 만났을 때, 내가 좋아하는 서울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비워진 공간 위를 사람들이 채워가며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모습들.

🔖
무질서와 혼돈이라고 여겼던 것, 허름하고 촌스럽다고 여겼던 것, 경박하고 천박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보게 되는 이 경험은 아주 신선하다.

저자가 말하는 서울다움—“잡종성, 혼종성, 변종성”—역시 내가 체감해온 서울과 닮아 있다. 정신없고 복잡하지만, 그 안에 화려함과 일상, 세련됨과 옛스러움이 함께 섞여 있는 도시. 그래서 잠시만 머물러도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고, 오래 살수록 더 많은 얼굴을 보여준다.

『이토록 서울』은 서울을 정의하려 하기보다,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 걸음 넓혀주는 책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익숙한 풍경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여전히 나는 이 도시가 좋고, 계속 서울에 살고 싶다.

이 책은 서울이 가진 매력을 알려주기 위해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우리는 그저, 귀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위 도서는 창비로부터 제공받아 탐독 후 작성된 서평입니다.

#이토록서울 #김진애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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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나
정은우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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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나》 | 정은우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배우며 친구가 되었던 정서, 현정, 연우가 어른이 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연작소설이다. 제목이기도 한 ‘포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공지능 중 하나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사용자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지를 건네는 존재다.

🔖
소원은 짧고 명료했다. 평화는 아이들이 행복해지길 바랐다.

할머니 평화는 현정의 할머니다. 인공지능 관련 학자였던 평화는 딸을 낳았을 때 직접 돌보기보다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쪽을 선택했다.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은 몸이 불편한 현미에게만 마음을 쏟았고, 그 과정에서 현정은 자연스레 밀려난다. ‘나는 엄마 같은 부모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평화는 현정을 직접 키운다.

“할머니는 내 편이지?”
항상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혼자 남게 될 현정이 발레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며 평화는 자신이 사용하는 인공지능 시라스에 발레 강사와 입시에 관한 데이터를 남겨 둔 채 떠난다.

같이 발레를 배웠던 정서와 연우 역시 평화의 사랑을 함께 나누었기에, 세 사람 모두에게 평화는 각별한 존재로 남는다. 세 인물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평화의 모습들을 따라가다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온기가 오래 남는다.

AI와 발레라는 조합이 낯설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발레를 단순히 꿈의 상징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좋아했던 공연과 그 서사가 어떻게 각자의 삶으로 이어지는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발레에 익숙하지 않아도, 친절한 설명 덕분에 인물들의 감정선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다.

🔖
그래도 인간은 선택했다. 인공지능의 선택은 연구자들의 설계에 따라 이루어졌지만,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을 졌다. 누리는 선택이야말로 인간만이 지닌 능력이자 힘이라고 믿었다. 인공지능은 보조자였다.

많은 것을 인공지능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시대다. 평화가 아이들에게 남긴 시라스를 통해 정서, 현정, 연우는 각자의 삶을 고민하고 선택해 나간다. 한때 같은 꿈을 꾸었던 사람들, 그리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AI 기술과 인간의 선택은 어디까지 닮아 있고, 어디서부터 달라지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꿈을 품었던 시간과 그 이후의 삶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위 도서는 자이언트북스로부터 제공받아 탐독 후 작성된 서평입니다.

#자이언트북스 #포나 #정은우 #연작소설 #AI #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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