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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 없어 ㅣ 꿈꾸는돌 45
김지현 지음 / 돌베개 / 2026년 1월
평점 :
📒 《유자는 없어》 | 김지현
김지현 작가의 《유자는 없어》는 여행자들이 스쳐 가는 거제라는 공간을 지안을 통해 ‘살아야 하는 곳’으로 다시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적인 섬이지만, 그 안에서 자라는 청소년에게 거제는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쉽게 떠날 수 없는 장소다. 이 소설은 그 모순된 감정을 조용한 목소리로 따라간다.
주인공 유지안, 별명 ‘유자’는 섬을 떠나 살아본 적 없는 아이이다. 넓은 도시를 자유롭게 누비는 삶을 동경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자신에게는 영영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한다.
중학교 시절 전교 1등이라는 성적은 지안을 설명하는 가장 쉬운 말이었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오며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학생이 되자 그 기준은 무너진다. 경쟁의 밀도가 달라진 공간에서 지안은 숨이 막히고, 공황 증상을 겪는다. 이는 입시의 압박이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의 다른 이름이다.
지안 곁에는 예고 입시에 실패한 뒤 방 안에 머무는 친구 수영이 있다. 멈춰 선 듯 보이는 수영은 사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지키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다. 지안은 수영을 다그치지 않고, 둘은 함께 영화를 보고 같은 장면에서 웃으며 조용한 동행을 이어간다. 말해지지 않은 감정 속에서도 관계는 그렇게 유지된다.
떠났다가 돌아온 혜현 언니의 존재는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해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남긴다. 타인이 붙인 이름이나 이력보다, 오랜 시간 애정을 쏟아온 것들이 한 사람의 본질이 된다는 문장은 지안과 수영에게 조용한 위로가 된다.
“그렇게 이름이 바뀌어도 그 사람의 가장 진실 한 부분은 어딘가에 각인처럼 남는다. 남들이 하는 말이 아닌, 오랜 시간 꾸준한 애정을 쏟으며 지켜 온 것들에 담겨 그 사람 을 설명해 주는 진짜 ‘본질‘이 된다.”
《유자는 없어》는 극적인 변화 대신 작은 회복을 그린다. 공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지안은 ‘유자’나 ‘전교 1등’이라는 수식어를 내려놓아도 여전히 ‘유지안’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조금은 알아간다. 지금 이 자리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오늘 또한 충분히 의미 있음을 말하는 소설이다.
《유자는 없어》는 극적인 도약 대신 작은 변화를 따라간다. 지안의 공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미래가 선명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안은 이제 안다. ‘유자’, ‘전교 1등’이라는 수식어를 내려놓아도 여전히 ‘유지안’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추천사에 적힌 말처럼, 이 소설 속 인물들이 흔들리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나’가 되고 싶은 마음. 머리를 자르고, 이름을 바꾸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 거라 믿는 그 열망. 《유자는 없어》는 그 마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오늘 또한 충분히 의미 있다고.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조금 자라 있다고.
*위 도서는 출판사 돌베개로부터 제공받아 탐독 후 작성된 서평입니다.
#돌베개 #유자는없어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