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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만큼 성실하게 - 교유서가 소설
이소호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6월
평점 :
《이자만큼 성실하게》 | 이소호 지음
"기꺼이 성실한 채무자가 된 한 예술가의 지옥 같은 농담."
책 소개에 있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웃음이 먼저 났다. 빚을 이렇게 소개할 수도 있다니. 그런데 책을 덮고 나면 그 웃음은 오래 남는 질문으로 바뀐다. 정말 이 소설이 말하는 것은 빚일까.
등단 12년 차 시인 수진은 매달 돌아오는 결제일을 향해 달린다. 카드값을 막기 위해 소설을 쓰고, 앱테크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간다. 얼핏 보면 빚에 허덕이는 사람의 이야기지만, 읽을수록 내게 더 선명하게 다가온 것은 현실을 견디는 한 시인의 언어와 시선이었다.
이소호는 사건보다 문장으로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다. "명예는 선불제처럼 날아오는데, 현금은 지독하게 후불제다." 같은 문장은 현실을 설명하는 대신 한순간에 뒤집어 버린다. "버뮤다 삼각지대는 내 통장에도 있다."는 문장을 읽으며 피식 웃다가도,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돈과 시간을 떠올리게 됐다. 현실은 하나도 가볍지 않은데, 언어는 끝까지 가벼움을 잃지 않는다. 나 역시 궁색한 지갑 사정을 종종 농담처럼 풀어내는 편이라, 이 소설은 허구라기보다 누군가의 에세이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카드 명세서와 할부 이자를 '내면의 혼돈'에 빗대며 니체의 말을 끌어오는 대목이었다. 캐시워크로 모은 100원을 "밤하늘에 반짝이는 가장 찬란한 별"이라고 말하는 화자의 궤변은 황당해서 웃음이 났지만, 그 웃음 끝에는 현실을 버텨내려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수진은 사기를 당한 일도, 명품을 산 일도, 빚을 진 일도 철학과 역사, 예술을 동원해 끝없이 합리화한다. 분명 억지인데도 이상하게 끝까지 듣게 된다. 어쩌면 그 말들은 변명이 아니라, 무너지고 싶은 현실 앞에서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생존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유머는 이 소설에서 웃음을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삶을 버티게 하는 기술이었다.
시인인 이소호가 첫 장편에서 선택한 소재가 미래도, 환상도 아닌 '빚'이라는 점도 인상 깊었다. SF보다 현실이 더 기괴하고, 디스토피아보다 지금의 삶이 더 비현실적이라는 선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자본주의를 향한 풍자이면서도, 동시에 창작자가 오늘을 살아내는 기록처럼 읽혔다.
문학이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끝내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가장 궁색한 순간마저 언어로 바꾸어 웃음을 만들어내는 사람. 《이자만큼 성실하게》는 그런 한 시인의 성실함을 담은 소설이었다. 그리고 그 성실함은 카드값을 갚는 데서가 아니라, 끝까지 문장을 쓰는 데서 가장 선명하게 빛난다. 웃음으로 현실을 견디는 일 역시 하나의 재능이자 용기라는 사실을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교유서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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