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결별하기
도종환 지음 / 한길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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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결별하기》 | 도종환

"초록은 회복력이 뛰어납니다. 연두를 만날 때와 다르게 초록을 만나면 이제 완연하게 제 모습으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의 첫 장에서 이 문장을 읽고 한동안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초록을 회복의 색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참 도종환 시인답다고 느껴졌다. '우리 마음도 초록으로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 바람은 책을 덮을 때까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동안은 시를 통해서만 도종환 시인을 만났다. 에세이로 읽으니 시에서는 여백으로 남겨 두었던 생각들이 조금 더 다정한 목소리로 이어졌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 상처를 견디는 태도, 나이 들어가는 마음까지. 문장 곳곳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의 연륜이 느껴졌고, 시인과 한층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와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작품 자체보다 1954년생인 시인이 지금의 대중문화를 기꺼이 만나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읽어내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 대목을 읽으며 오래전 독서모임에서 만난 한 분이 떠올랐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야기하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눈빛이 반짝이던 중년의 남성이었다. 책 속 "아름다움을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늙지 않는 법입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람을 젊게 만드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상처는 상처대로 안고 다시 푸른 잎을 키우는 것."

도종환 시인은 상처를 지우기보다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한다. 이 문장은 책의 제목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문학이 상처를 없애 주지는 못해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바꿔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정하게 전해 주었다.

*위 도서는 한길사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된 서평입니다.

#한길사 #도종환 #상처와결별하기 #에세이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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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역사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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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역사》 | 마야 리 랑그바드

주인공은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에서 자란 입양인이다. 친가족과 마주 앉아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지만, 그 말들은 번역되지 않은 채 공백으로 남겨진다.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대화는 이어지지 않고, 인물들은 이해에 닿지 못한 거리 위에 놓인다.

이 장면은 헬렌 켈러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시각장애는 사람을 사물과 단절시키지만, 청각장애는 사람을 사람과 단절시킨다.” 이 작품에서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관계를 가로지르는 경계로 작동한다. 물리적으로 함께 있음에도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단절에 가깝다.

언어의 문제는 곧 관계의 문제로 확장된다. 한국 사회의 고맥락적인 대화 방식은 말의 표면뿐 아니라 그 이면의 전제를 함께 요구한다. 통역이 개입하더라도 의미는 완전히 옮겨지지 못하며, 원가족과 주인공 사이의 대화에는 항상 소실되는 층위가 남는다.

올해 푸른숲에서 출간된 《너의 한국 엄마에게》를 읽은 경험은 이 작품을 더 밀도 있게 읽게 했다. 입양을 둘러싼 단절과 언어의 균열이 이미 구체적으로 체화된 상태였기에, 이 소설의 공백과 침묵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주인공은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관 속에서 성장한 가족과 재회하지만 이해는 반복해서 어긋난다. 더 나아가 자신의 퀴어 정체성과 통역사와의 관계를 끝내 가족에게 말하지 못한다.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존재함에도 전달되지 못하는 문장들이 이 작품의 또 다른 공백으로 남는다.

작품은 “나는 생각한다”와 “나는 말한다”를 구분한다. 생각은 존재하지만 말로 옮겨지지 못한 감정들은 끝내 잔여로 남는다. 통역사는 언어를 옮길 수 있으나, 삶의 차이와 감정의 결, 말하지 못한 진실까지 번역하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이 끝내 가족의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존재로 남는다는 점이다. 친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조차 상주에 그녀의 이름은 남지 않는다.

《나의 통역사》는 누군가의 기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기록하는 이야기다. 원가족을 향한 귀환 서사가 아니라, 번역되지 않는 세계 속에서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가족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처럼 시작되지만, 끝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만이 오래 남는다.

*위 도서는 푸른숲으로부터 제공받아 탐독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푸른숲 #나의통역사 #마야리랑그바드 #tolk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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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물건의 역사 - 돌칼에서 AI까지, 물건들이 만들어온 330만 년 인류의 대장정
칩 콜웰 지음, 김병화 옮김 / 부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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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물건의 역사》 | 칩 콜웰 지음

우리는 역사를 인간이 만들어 온 이야기라고 배운다. 불을 발견하고, 농사를 시작하고, 도시를 세우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고 말이다. 저자는 다르게 말한다. 인간이 물건을 만든 것이 아니라, 물건 또한 인간을 만들었다는 저자의 시선은 낯설고 신선했다. 처음에는 그저 흥미로운 관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 말은 점점 하나의 근거 있는 주장으로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이런 관점으로 인류의 역사를 풀어낸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칩 콜웰은 전 덴버자연과학박물관 인류학 수석 큐레이터이자 고고학자다. 그래서인지 역사의 중심에는 사람보다 물건이 놓여 있다. 339만 년 전 등장한 최초의 석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몸과 뇌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더 큰 뇌와 더 뛰어난 도구를 낳는 진화의 피드백을 만들었다. 이후 예술과 종교는 물건에 의미를 부여했고, 산업혁명은 대량생산과 소비사회를 열었다. 저자는 이 긴 여정을 도구 만들기, 의미 만들기, 더 많이 만들기라는 세 번의 도약으로 설명한다. 물건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인류의 역사를 읽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개념이 '물질문화'였다. 물질문화는 물건 자체를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물건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려는 관점이다. 고고학자인 저자가 사람보다 물건을 먼저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물질문화는 돌도끼와 화폐, 스마트폰 같은 물건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과 관계, 문화가 담긴 흔적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물건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물건도 우리의 삶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던 셈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가 오늘날의 인간을 '호모 스투펜시스(Homo stuffensis)'라고부르는 대목이었다. '생각하는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물건에 의해 규정되고 형성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를 보내기 어렵고, 물건으로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니 처음에는 낯설었던 '호모 스투펜시스'라는 표현이 책을 덮을 즈음에는 지금의 인류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이름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단순히 발명품의 역사를 들려주는 교양서가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이토록 많은 물건을 만들고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제는 왜 물건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지를 묻는 인류학 책이다. 우리는 물건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물건들 역시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을 덮고 나니 주변의 평범한 물건들까지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위 도서는 부키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부키 #거의모든물건의역사 #고고학 #사피엔스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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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만큼 성실하게 - 교유서가 소설
이소호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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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만큼 성실하게》 | 이소호 지음

"기꺼이 성실한 채무자가 된 한 예술가의 지옥 같은 농담."

책 소개에 있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웃음이 먼저 났다. 빚을 이렇게 소개할 수도 있다니. 그런데 책을 덮고 나면 그 웃음은 오래 남는 질문으로 바뀐다. 정말 이 소설이 말하는 것은 빚일까.

등단 12년 차 시인 수진은 매달 돌아오는 결제일을 향해 달린다. 카드값을 막기 위해 소설을 쓰고, 앱테크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간다. 얼핏 보면 빚에 허덕이는 사람의 이야기지만, 읽을수록 내게 더 선명하게 다가온 것은 현실을 견디는 한 시인의 언어와 시선이었다.

이소호는 사건보다 문장으로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다. "명예는 선불제처럼 날아오는데, 현금은 지독하게 후불제다." 같은 문장은 현실을 설명하는 대신 한순간에 뒤집어 버린다. "버뮤다 삼각지대는 내 통장에도 있다."는 문장을 읽으며 피식 웃다가도,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돈과 시간을 떠올리게 됐다. 현실은 하나도 가볍지 않은데, 언어는 끝까지 가벼움을 잃지 않는다. 나 역시 궁색한 지갑 사정을 종종 농담처럼 풀어내는 편이라, 이 소설은 허구라기보다 누군가의 에세이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카드 명세서와 할부 이자를 '내면의 혼돈'에 빗대며 니체의 말을 끌어오는 대목이었다. 캐시워크로 모은 100원을 "밤하늘에 반짝이는 가장 찬란한 별"이라고 말하는 화자의 궤변은 황당해서 웃음이 났지만, 그 웃음 끝에는 현실을 버텨내려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수진은 사기를 당한 일도, 명품을 산 일도, 빚을 진 일도 철학과 역사, 예술을 동원해 끝없이 합리화한다. 분명 억지인데도 이상하게 끝까지 듣게 된다. 어쩌면 그 말들은 변명이 아니라, 무너지고 싶은 현실 앞에서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생존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유머는 이 소설에서 웃음을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삶을 버티게 하는 기술이었다.

시인인 이소호가 첫 장편에서 선택한 소재가 미래도, 환상도 아닌 '빚'이라는 점도 인상 깊었다. SF보다 현실이 더 기괴하고, 디스토피아보다 지금의 삶이 더 비현실적이라는 선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자본주의를 향한 풍자이면서도, 동시에 창작자가 오늘을 살아내는 기록처럼 읽혔다.

문학이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끝내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가장 궁색한 순간마저 언어로 바꾸어 웃음을 만들어내는 사람. 《이자만큼 성실하게》는 그런 한 시인의 성실함을 담은 소설이었다. 그리고 그 성실함은 카드값을 갚는 데서가 아니라, 끝까지 문장을 쓰는 데서 가장 선명하게 빛난다. 웃음으로 현실을 견디는 일 역시 하나의 재능이자 용기라는 사실을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교유서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교유서가 #이소호 #이자만큼성실하게 #소설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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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예술, 가짜 예술 - 우리를 조종하는 것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들
장 프랑수아 마르텔 지음, 김기상 옮김 / 서스테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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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예술, 가짜 예술》 | 장 프랑수아 마르텔 지음

"예술은 결국 삶의 경험에서 태어난다. 살아 있는 육체와 영혼이 세상과 부딪치며 피워내는 꽃,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

우리는 흔히 예술을 뛰어난 재능이나 기술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예술은 삶을 살아낸 인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쁨과 슬픔, 상처와 사랑, 수많은 경험이 쌓여 비로소 하나의 예술이 탄생한다는 내용들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책은 제목처럼 '진짜 예술'과 '가짜 예술'을 구분하며 예술의 본질을 탐구한다. 특히 지금 읽어서 더 와닿았던 것은 AI와 미디어를 다루는 장이었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과 콘텐츠를 소비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자극적인 뉴스, 과장된 광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편리한 기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저자는 그것들이 우리의 시선과 감정, 나아가 사고방식까지 설계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스타그램에서 릴스를 보다가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 있는 경험을 떠올리면, 적어도 나는 저자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기술을 무조건 경계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예술의 역할을 강조한다. 진짜 예술은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의도를 주입하지 않는다. 작품 앞에서 저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고, 다른 해석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긴다. 나는 평소 작품을 보면 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 거지 궁금해서 인터뷰를 찾아보거나 정답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저자는 예술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고 말한다. 그 문장을 읽고 나니 작품에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예술은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에 가깝다”는 문장도 마음에 남는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갈망. 예술은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서 시작된다는 저자의 믿음을 따라 영화와 문학,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사례를 확인한다. AI의 발전으로 ’그럼 대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건 뭔데?’라는 생각을 자주하는데, 오히려 인간의 삶과 경험에서 비롯되는 예술의 가치가 더 선명해질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 나니 마케팅과 알고리즘이 이끄는 흐름을 무심코 따라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알고리즘이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정확히 추천해 준다는 사실을 역으로 생각해 보니, 내가 어떤 것에 감동하고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돌아보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철학과 미학을 다루지만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닿아 있다. AI가 작품을 만들어 내는 시대일수록 '예술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위 도서는 서스테인으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서스테인 #진짜예술가짜예술 #장프랑수아마르텔 #미학 #예술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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