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법 사전 - English Grammar Dictionary
김정호 지음 / 바른영어사(주)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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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영문법을 최소한 중1 때부터 고3까지 무려 6년을 배우게 되지만 실상은 거의 아는 게 없다. 나중에 토익이나 토플 등 외국어 시험이 닥쳐야 문법책을 다시 보게 되는 사람이 태반일 듯. 



나도 학창시절에는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곤 했는데 선생님 설명을 알아듣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놓치고 나니 쉽지가 않아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었다. 



결과적으로 시험은 그럭저럭 보았지만 왜 맞고 틀렸는지 정확하게 모른 채 감으로 때려맞히는 기나긴 영어 학습의 곤욕을 견뎌왔달까..



그나마 대학을 졸업하고 토익시험도 더 이상 볼 필요가 없게 되고 나서부터 영문법에 다시 호기심이 생겼고 그 때 만난 책이 grammar in use intermediate였다. 



​외국에서 나온 영문법책은 이렇게 다르구나 처음 느꼈고 문제도 엄청 많고 진도 나가기가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두 번 정독하고 모든 문제를 풀어본 후에는 영어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었다. 



다만 내가 구입한 건 한글이 한 글자도 없었기 때문에 답이 틀려도 왜 틀렸는지 그 이유까지는 다 알 수 없었다. 그저 독서백편의자현의 마음으로 죽어라 팠을 뿐! 



이번 김정호 선생님의 영문법사전은 기존의 한글로 된 영문법서의 단점을 많이 보완했다. 



연습문제(기출문제)도 각 챕터마다 실었고 일단 한글로 된 해석이 다 붙어있기 때문에 내가 그래머 인 유즈 인터미디에이트를 보면서 중간에 느꼈던 고통은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보면 된다. 




"0115. 그녀는 이혼 후에 더욱 강한 상태가 될 것이다.


She will grow stronger after the divorce. 



0116. 산에서는 빨리 어두워질 것이다.


It will soon grow dark in the mountains. 



0119. 당신이 40세가 될 무렵, 당신은 가정을 꾸렸을 것이다. 


By the time, you turn 40, you will have bulit a home." (영문법 사전 예문 중 일부)



나는 정말 그래머인유즈를 다 완독하기 위해 1년간 피나는 노력을 했기에.. 조금 우습지만 영문법이란 예나 지금이나 왠만한 마음가짐으로는 독학으로 책을 두 번 이상 떼기가 쉽지 않다. 



특히나 한국어로 된 영문법책은 영어 예문-한국어 해석 순인데 이게 그다지 합리적인 학습법이 아니라고 한다. 이 영문법사전은 그 반대로 한국어 해석이 먼저 나오고 영어 예문이 그 다음에 나오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별 거 아닌 듯 한데 읽어보면 느낌이 다르다. 영작 연습 위주의 학습 환경을 구성하기 위해 이렇게 했다고 하는데 확실히 여태까지 당연시해왔던 잘못된 관행을 한번 뒤집어버리는 느낌이랄까. 



흔히들 영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다르다고 하지만 바른영어사 김정호 선생님의 영문법 사전을 보면 그 말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한국어는 어순을 바꿔도 그 뜻에 변화가 없이 내용 이해가 가능한 토씨어인 반면에 영어는 어순을 바꾸면 그 의미까지 달라지는 위치어이므로 일괄적으로 영어는 주어-동사-목적어, 한국어는 주어-목적어-동사라고 주어와 술어의 위치 비교로 그 차이점을 말할 수 없다는 거였다. 



"과연!" 이러면서 무릎을 탁 쳤네. 이 책은 무지막지하게 두껍지만 그렇다고 보기 어렵거나 불편한 영어 학습서는 아니다. 



판형이 큰 만큼 폰트도 적당히 크고 학생들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 뒤늦게 영문법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학습자들도 부담없이 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일단 예문이 그렇게 어렵지가 않다. 



중학생 수준의 쉬운 영어와 단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술술 넘어간다. 전체 페이지는 677p로 두께에 놀랄 수도 있지만 특이하게 문법용어와 내용을 인덱스(색인)화했고, 인덱스만도 수십페이지에 이르는 문법서+사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총 7,000개가 넘는 방대한 색인작업으로 학습자가 모르는 문법과 숙어 표현을 알파벳 순서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여태까지 영포자로 살아온 학생들이나 나처럼 성인이 되어 찬찬히 체계적으로 영문법을 다지고 싶은 학습자, 특히 고통 속에서도 그 꽃을 피우고 싶은 독학파에게 권하고 싶은 영문법 사전이다. 



누가 영문법이 필요없다고 했던가? 수준높은 영어를 구사하고 복잡한 영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한국어도 기본적인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조차 틀리면 무식해보이는데 영어라고 다를 게 없다. 어느 수준을 넘기 위해서는 고통을 참는 인내가 필요하다. 



물론 이 책은 유튜브 강의, 예문 mp3, 파닉스 특강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긴 한데 내가 볼 때 기본이 독학서이다. 나처럼 혼자 공부하길 좋아하는 학생들이 접근하기 쉽게 되어 있고 예문이 쉬우면서도 풍부해서 추천한다. 



무엇보다 한글로 된 영문법서로 한국인을 위해 나온 영어학습법이기 때문에 아직 원서로 된 영문법서가 부담스러운 분들이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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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법 사전 - English Grammar Dictionary
김정호 지음 / 바른영어사(주)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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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영어예문도 마음에 들고 한글로 설명되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한국인을 위한 영문법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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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줍줍의 고전문학 플레이리스트 41 - 하루 15분 고전과 친밀해지는 시간
문학줍줍 지음 / 책밥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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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문학 전문 유튜브 채널 <문학줍줍>을 운영하는 저자가 알게 쉽게 유명 고전 작품을 리뷰한 책을 읽어봤다. 



예전에는 문학작품은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일종의 축약본을 보면서 취사선택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전 한 작품을 읽는데는 굉장한 의지와 시간 투자가 필요해진 것도 사실이고 읽어야 할 책이 워낙 많다보니 유명 작품을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채 끝없이 제목만 알고 지나가는 것도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날개에 있는 저자 이력을 보니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독서가라.. 정말 멋지지 않은가? 




수년째 단 한 주도 쉬지 않고 매주 문학 작품 리뷰 영상을 올리고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지은이는 단순히 줄거리만 축약해 놓은 게 아니라 작가가 자란 환경, 작품이 쓰인 시대상, 작품의 의도, 주요 등장인물까지 착실하게 담아놓았다.



특히 작품 이해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은 건 인물관계도이다. 



사실 나도 외국소설을 읽을 때는 초반 100p까지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이 쉽게 외워지지 않아 노트에 그림을 그려서 기억하곤 했는데 문학줍줍도 등장인물과 관계도를 그려놓은 것을 보고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서 반가웠다. 



저자는 다른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린 것이겠지만 고전문학을 읽다보면 그 나라 특유의 익숙치 않은 이름과 아버지와 아들, 손자까지 같은 이름을 쓰는 통에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참 많았다. 



나에게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 그런 점에서 최악이었는데 여기에는 호세만 총 5명이 나오고 아우렐리아노는 총 6명이 나온다.



그 나라 풍습대로 가족끼리 같은 이름을 쓰는데다 등장인물도 너무나 많아서 대학 1학년 때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어보려고 샀다가 결국 초반에서 포기하고 말았던 비운의 작품이다. 이제서야 대략적이나마 어떤 내용인지 알게 되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하루 15분 고전과 친밀해지는 시간'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을 정도로 15분 정도 투자하면 고전문학작품 1가지 정도는 줄거리, 등장인물, 작품 배경까지 섭렵할 수 있어서 '아, 이 책은 이런 내용이구나, 읽어봐야겠다' 혹은 '도저히 흥미가 안 가네, 패스해야겠다'라는 식으로 나중에 내가 읽고 싶은 작품을 정할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았다. 



총 9장으로 이뤄져있고 책 속에서 소개된 고전문학 작품 수는 41개나 된다. 톨스토이, 단테, 빅토르 위고, 밀란 쿤데라 등 왠만한 유명작가는 다 들어가있다. 이제 고전문학은 교양이다. 



제목만 들어보고 정확한 내용도 모른 채로 살아온 지난 날들을 반성한다. 


이 책에 실린 고전문학: 

안나 카레리라, 오만과 편견,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연인, 독일인의 사랑, 대지,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백년 동안의 고독, 다섯째 아이, 정체성, 나를 보내지 마,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오페라의 유령, 변신, 이반 일리치의 죽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신곡, 레 미레라블, 동물농장, 분노의 포도, 멋진 신세계, 그들, 서부전선 이상없다, 무기여 잘 있거라, 전쟁과 평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일리아스, 노인과 바다, 야간 비행, 세일즈맨의 죽음, 스토너, 데미안, 마음, 마담 보바리, 이방인, 죄와 벌, 해저 2만리, 걸리버 여행기, 로빈슨 크루소, 톰 소여의 모험



총 41가지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재밌게 읽었던 건 역시나 고등학생 때 읽었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문학줍줍은 이 작품을 '남에게 내보이지 못하는 정체성'을 담은 작품이라고 해석했는데 어린 시절 읽었던 나는 그렇게까지 심오한 생각은 하지 못했고 멀쩡한 사람이 하루 아침에 엄청난 크기의 벌레가 되어 가족들에게 온갖 구박을 받다가 죽어버리는 내용이라 충격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십수년이 지나고 지금에 와서 다시 기억을 더듬어가며 문학줍줍 님의 해석과 함께 읽어보니 폭소를 하게 되었지 뭔가. 



프란츠 카프카에게 미안할 정도로 나 혼자 방구석에서 웃어버렸는데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까지는 아니지만 벌레가 된 상황이 너무나 진지해서 오히려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똑같은 작품을 읽었는데 세월이 흐르니 이렇게 나의 반응은 엇갈리고야 말았다. 



그레고르의 아버지는 벌레가 된 아들에게 사과를 던져 다치게 하질 않나, 여동생의 바이올린 소리에 이끌려 방밖으로 간만에 나왔는데 하숙생들의 항의만 받고 도로 방안에 갇힌다. 



얼마 안 가 그레고르가 죽자, 가족들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간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모두 소풍을 가는 게 끝인데 황당한 결말인 것 같지만 너무나 사실적이라 씁쓸해진다. 



문학줍줍 님은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남에게 보이기 힘든 정체성이 드러난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야기라고 해석했지만 내 경우에는 좀 다르게 해석했다. 



아무리 가족간이라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해야 할까, 그레고르가 월급을 받아오고 가족을 부양할 때는 모두의 사랑을 받았지만 벌레로 변신한 후에는 버림받고 마는 상황이 혈연이라고 해도 그레고르처럼 짐스러운 존재가 되면 쉽게 상황이 바뀌어 버림받을 수도 있는 인간들 본연의 이기심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느꼈다. 



이렇게 고전이란 같은 작품을 두고서도 읽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심지어 나는 같은 작품을 예전에 읽었는데도 스스로의 반응이 전혀 다르게 나오는 것에 놀라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자세한 내용을 잊었는데도 다시 축약된 줄거리를 읽으니 그 때의 생각이 떠오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나 할까. 



고전문학이라고 하면 학생 때는 열심히 읽다가도 성인이 된 후에는 오히려 어렵게 느낄 수도 있는데 하루 15분 투자로 좀 더 가깝게 여러 작품에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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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줍줍의 고전문학 플레이리스트 41 - 하루 15분 고전과 친밀해지는 시간
문학줍줍 지음 / 책밥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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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만 느껴졌던 고전문학의 내용과 작품배경을 알고 나니 어떤 작품을 읽을지 선별이 더욱 쉬워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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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즈 어웨이 안전가옥 쇼-트 12
배예람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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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좀비가 되면 인간성을 상실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배예람 작가의 좀비는 좀 다르다. <좀비즈 어웨이>는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로 쉽게 말하면 한국소설 단편집이다. 피구왕 재인, 좀비즈 어웨이, 참살이 404 이렇게 세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나는 원래 이 안전가옥이라는 출판사의 팬인데 작품을 보는 눈이 남다르고 신인작가 발굴에 앞장서고 있어서인지 항상 읽을 때마다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프로듀서라는 개념이 있어서 이야기를 발굴하고 작가와의 협업으로 작품을 만드는 곳인데 사실 이 방식은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한 중견작가들보다는 당연히 신인들에게 적합한 방식이다.

작품활동을 오래한 분들이 프로듀서라는 개념을 받아들일지도 미지수이다. 편집자보다 한 발 더 앞서 방향을 정해주는 느낌인데 내가 같이 일한 게 아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무튼 좀비즈 어웨이의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열한 번째 책으로 표제작인 좀비즈 어웨이는 안전가옥이 2018년에 진행한 '남들은 한창 좋을 때라는데 정작 나는 뭐가 좋은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일단 쓴 이야기를 내면 되는 공모전(일명 남정일 공모전)에 응모된 약 100여편 중 선정된 유일한 작품이라고 한다.

허걱.. 이런 희한한(?) 공모전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단 하나 뽑히다니? 그런데 읽어보면 뽑힐 만하다. 어디 내놔도 뽑혔을 것 같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는 리뷰, 그럼 가장 먼저 <좀비즈 어웨이>, 이 핵심 작품부터 소개해드리겠다.

<좀비즈 어웨이>

주인공은 여성 두 명이다. 시대는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월하는 지금보다 좀 더 미래인 듯 싶지만 사람들 사고방식은 지금과 비슷하다. 좀비가 창궐하는 시대라서 다들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 백신을 맞는데 이 백신, 완전하지가 않다. 마치 지금의 코로나 백신처럼 감염을 다 막아주지 못한다는 소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차라리 좀비가 다 되어버리면 인간성을 상실하고 이미 사람이 아니니 어쩌면 본인에게는 큰 고통이 없을 수도 있는데 이 백신을 맞고 좀비가 되면 몸은 죽지 않는데 사고방식과 감정, 기억 등 사람일 때의 모든 마음이 그대로 남아있어 살아도 산 게 아닌 기묘한 상태가 되는 부류가 존재했다. 또한 아예 효과가 없어서 그냥 완전한 좀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가 퍼진다. 좀비 고기를 먹으면 좀비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결국 좀비가 된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고기는 정육점에서 팔리고 국가로부터 가산점을 얻기 위해 좀비 사냥을 나서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감염자의 머리를 가져오면 입학이나 취직할 때 유리해진다나.

고어물이긴한데 소설이다보니 잔인함은 활자화된 묘사를 통해 어느 정도 중화되고 마치 요즘 현실을 비판하는 것 같은 저런 무자비한 설정에 나는 킥킥 웃으면서 책장을 넘겼다. 묘한 위트와 쾌감이 있달까?

주인공 김연정은 99년생, 99즈다. 1차 백신 접종 이후 좀비에게 팔뚝을 한 번 물린 적이 있지만 아직 좀비가 되진 않았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에게 정기적으로 좀비화에 대한 체크를 받고 피부가죽, 좀비육 등을 파는 정육점에서 알바를 뛴다.

이런 시대에도 일해야 먹고 산다.

어느날 정육점 사장님의 "괜찮은 머리찾기" 미션이 연정이에게 떨어지고 그녀는 어느 중국집에서 홀로 움직이는 좀비의 팔을 따라 양동이 근처로 가게 된다. 그 안에는 머리만 남은 팔 주인 김성하가 있다.

비참한 것들에게 약한 연정이는 부모님을 보고 죽고 싶다는 머리만 남은 좀비 성하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 두 여성의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여성(아마도?) 둘이서 길을 떠나는 것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성하는 머리통과 팔만 남았으니 사람이 아닌 것 같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예의바르다.

성하의 머리통을 들고 좀비 사냥꾼에게 쫓기며 둘이 나누는 대화는 걸작이다. 상황이 웃겨서 참을 수가 없는데 또 생각해보면 너무 비참해서 종종 혼란스럽다.

이야기를 다 스포하면 소설을 읽는 재미가 없으니 기승전결의 승까지만 알려드린다.

사람들이 다 죽어나가는 좀비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백신의 효과를 100% 누리며 좀비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계층 피라미드의 상위에 올라선다.

그 아래에 위치하는 좀비화가 늦게 진행되는 집단군 안에는 연정이가 있고, 그보다 더 아래에는 몸은 좀비들에게 먹히고 남은 건 머리통과 팔 뿐인데도 인간일 때의 기억과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영원히 죽지 않는 성하 같은 좀비들이 있다.

둘은 벽에 자화상을 그리며 희망없는 세상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든다. 우정은 고생 끝에 피어나고 인간성에 가치를 두지 않는 세상에서도 끝까지 사람으로 남는 의미를 되짚어본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기존의 내가 아는 모든 관계가 사라지고 이 세상에 가치있는 존재가 거의 남지 않았을 때조차 "내일 봐"라고 인사를 나눌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행인 걸까?

"내일 봐"라는 인사를 잠도 자지 않는 성하가 늘 연정이에게 건네는데 그 단순한 한 마디에는 연정에 대한 깊은 감사와 애정이 들어있다.

머리통만 남아도 사람은 사람이다. 말을 하는 한, 감정이 있는 한, 좀비가 될래야 될 수가 없는 거다. 나는 마지막장을 덮으며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과연 "내일 봐"라고 인사하는 머리통만 남은 좀비를 버릴 수 있을까? 이미 내 친구인데? 내일도 봐야할 것 같다.


<피구왕 재인>

피구왕 재인은 봉덕여고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좀비 집단감염이 발생하며 벌어지는 일대 혼란을 담았다. 두 이야기는 짧게 소개하겠다.

피구왕 재인의 주인공은 피구에 전혀 소질이 없는 재인이와 피구를 엄청 잘하는 그녀의 친구 혜나의 이야기이다. 아마 여고를 다닌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그런 내용이 많이 나온다.

같은 반 친구가 아닌데도 왠지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다. 하지만 내성적인 재인이는 혜나에 대한 호감만 있었을 뿐 먼저 다가가진 않았는데 재인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급식 메뉴 중 생선가스를 대신 먹어주겠다며 혜나가 나선다.

그렇게 혜나는 재인이의 생선가스를 대신 먹어주고, 그 보답으로 우유나 기타 간식을 재인이에게 준다. 둘은 급속도로 친해지고 같이 밥도 먹고 얘기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러다가 혜나는 몸치에 가까운 재인이에게 피구과외를 해주고 학생들이 좀비에게 물려서 감염되는 그 날, 재인이는 피구왕이 되어 혜인이를 구하러 가는 내용이다.



줄거리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다. 피와 살이 튀는 고어 좀비물인데 한겹을 벗겨내면 그 안에는 봄바람 같은 달콤함이 느껴진다. 어떻게 접점이 전혀 없는 두 사람이 친해지는지, 누군가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아주 사소한 계기들이 피구와 좀비라는 소재 속에 잘 녹아있다. 기묘한 로맨스물이라고 해야 하나?

반드시 구해야 하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모습은 주인공들이 여성이 아니라 남녀였다면 굉장히 식상했을 텐데 기운도 없고 운동도 못하는 젬병이 상대를 구하러 가는 거라 비장함이 남다르고 소위 웃프다.

어쩌면 그런 것, 좀비즈 어웨이에서도 약자가 약자를 구하러 가는 설정이 마음을 울렸나보다. 이야기는 한번 비틀어야 제맛이다.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 누군가를 구원하러 가는 것.


<참살이404>

참살이404도 그런 의미에서는 비슷하다. 이 사회의 루저들을 모아 취직시켜주는 회사가 있다. 손 하나 까닥하기 싫은 무기력증,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사원이 된다. 그 회사에서는 참살이404라는 힘이 나는 드링크제를 실험중인데 이걸 먹으면 모두 파워풀해져서 일을 열심히 한다. 너무 웃겼다. 이런 드링크제 있으면 누구라도 사먹겠지?

그래서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좀비 시리즈이니 좀비가 되어버린다. 부작용이 심각한 게 단 하나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그런데 참살이404에서는 좀비가 된 후에 사람일 때의 강렬한 욕망이 발현되는 묘한 특징이 있다. 주인공 소영은 자기 덕분에 나중에 입사한 일잘러 보영을 질투한다. 그래서 그녀를 일부러 감염시킨다.

그런데 막상 좀비가 된 보영의 욕망이 허를 찔렀다. 누군가의 욕망은 남이 쉽게 알 수가 없는 거였네. 이토록 소박한 욕망을 갖고 있을 줄 소영은 전혀 몰랐던 거다. 그래서 그녀는 보영이의 욕망을 보호해준다.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리뷰를 마무리하며>

이 세 편의 단편소설을 다 읽고 나면 각각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는다. 주인공이 다 다른데도 그렇다. 힘없는 여성과 약자가 서로를 돕는다. 좀비가 되어 버리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주인공들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만다.

어쩌면 작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삶의 태도만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생각했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도 사랑과 우정, 배려 이런 따뜻한 마음은 우리를 사람으로 살게 하고 사람으로 죽게 한다는 단순한 진리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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