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가 퍼진다. 좀비 고기를 먹으면 좀비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결국 좀비가 된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고기는 정육점에서 팔리고 국가로부터 가산점을 얻기 위해 좀비 사냥을 나서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감염자의 머리를 가져오면 입학이나 취직할 때 유리해진다나.
고어물이긴한데 소설이다보니 잔인함은 활자화된 묘사를 통해 어느 정도 중화되고 마치 요즘 현실을 비판하는 것 같은 저런 무자비한 설정에 나는 킥킥 웃으면서 책장을 넘겼다. 묘한 위트와 쾌감이 있달까?
주인공 김연정은 99년생, 99즈다. 1차 백신 접종 이후 좀비에게 팔뚝을 한 번 물린 적이 있지만 아직 좀비가 되진 않았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에게 정기적으로 좀비화에 대한 체크를 받고 피부가죽, 좀비육 등을 파는 정육점에서 알바를 뛴다.
이런 시대에도 일해야 먹고 산다.
어느날 정육점 사장님의 "괜찮은 머리찾기" 미션이 연정이에게 떨어지고 그녀는 어느 중국집에서 홀로 움직이는 좀비의 팔을 따라 양동이 근처로 가게 된다. 그 안에는 머리만 남은 팔 주인 김성하가 있다.
비참한 것들에게 약한 연정이는 부모님을 보고 죽고 싶다는 머리만 남은 좀비 성하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 두 여성의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여성(아마도?) 둘이서 길을 떠나는 것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성하는 머리통과 팔만 남았으니 사람이 아닌 것 같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예의바르다.
성하의 머리통을 들고 좀비 사냥꾼에게 쫓기며 둘이 나누는 대화는 걸작이다. 상황이 웃겨서 참을 수가 없는데 또 생각해보면 너무 비참해서 종종 혼란스럽다.
이야기를 다 스포하면 소설을 읽는 재미가 없으니 기승전결의 승까지만 알려드린다.
사람들이 다 죽어나가는 좀비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백신의 효과를 100% 누리며 좀비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계층 피라미드의 상위에 올라선다.
그 아래에 위치하는 좀비화가 늦게 진행되는 집단군 안에는 연정이가 있고, 그보다 더 아래에는 몸은 좀비들에게 먹히고 남은 건 머리통과 팔 뿐인데도 인간일 때의 기억과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영원히 죽지 않는 성하 같은 좀비들이 있다.
둘은 벽에 자화상을 그리며 희망없는 세상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든다. 우정은 고생 끝에 피어나고 인간성에 가치를 두지 않는 세상에서도 끝까지 사람으로 남는 의미를 되짚어본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기존의 내가 아는 모든 관계가 사라지고 이 세상에 가치있는 존재가 거의 남지 않았을 때조차 "내일 봐"라고 인사를 나눌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행인 걸까?
"내일 봐"라는 인사를 잠도 자지 않는 성하가 늘 연정이에게 건네는데 그 단순한 한 마디에는 연정에 대한 깊은 감사와 애정이 들어있다.
머리통만 남아도 사람은 사람이다. 말을 하는 한, 감정이 있는 한, 좀비가 될래야 될 수가 없는 거다. 나는 마지막장을 덮으며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과연 "내일 봐"라고 인사하는 머리통만 남은 좀비를 버릴 수 있을까? 이미 내 친구인데? 내일도 봐야할 것 같다.
<피구왕 재인>
피구왕 재인은 봉덕여고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좀비 집단감염이 발생하며 벌어지는 일대 혼란을 담았다. 두 이야기는 짧게 소개하겠다.
피구왕 재인의 주인공은 피구에 전혀 소질이 없는 재인이와 피구를 엄청 잘하는 그녀의 친구 혜나의 이야기이다. 아마 여고를 다닌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그런 내용이 많이 나온다.
같은 반 친구가 아닌데도 왠지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다. 하지만 내성적인 재인이는 혜나에 대한 호감만 있었을 뿐 먼저 다가가진 않았는데 재인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급식 메뉴 중 생선가스를 대신 먹어주겠다며 혜나가 나선다.
그렇게 혜나는 재인이의 생선가스를 대신 먹어주고, 그 보답으로 우유나 기타 간식을 재인이에게 준다. 둘은 급속도로 친해지고 같이 밥도 먹고 얘기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러다가 혜나는 몸치에 가까운 재인이에게 피구과외를 해주고 학생들이 좀비에게 물려서 감염되는 그 날, 재인이는 피구왕이 되어 혜인이를 구하러 가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