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주 여행, 사계절 빛나는 전라도 430 - 179의 스팟・매주 1개의 추천 코스・월별 2박 3일 코스와 스페셜 여행지 소개 52주 여행 시리즈
김경기 지음 / 책밥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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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전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었는데 계속 코로나가 극성이라 쉽사리 출발할 마음을 먹지 못했다. 





그래서 가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져가고 날씨도 선선해지던차 "52주 여행, 사계절 빛나는 전라도 430"이 최신개정판으로 나왔기에 휴가 때 찬찬히 읽어보았다. 43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책 두께가 상당하지만 그만큼 내용도 알차고 방대하다. 



심지어 책 맨 뒤에는 별책부록으로 여행지도도 딸려있어서 대략 어디쯤 여행하면 좋겠다라고 지도에 표시해보고 감을 잡기도 좋았다. 



전라도는 서울에서 거리가 상당하기 때문에 어릴 때 할아버지가 계시던 해남 땅끝마을을 몇 번 가보고 커서는 한번도 가보질 못했는데 당시 가서 먹었던 떡갈비 정식을 잊을 수가 없다. 




남도하면 진미이고 어느 식당에 가도 밥이 맛있고 기본이 10첩 반상이라 상다리 휘어지게 받아본 좋은 기억만 있기에 조만간 전라도로 뜨리라 마음을 먹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이 책은 구성이 거의 사전급이다. 179개의 스팟이 나와있고 매주 1개의 추천코스는 물론 월별로 2박 3일 코스와 스페셜 여행지까지 소개하고 있어서 너무 많은 장소를 어떻게 어디서부터 가면 좋을지 망설이는 여행자들이 선택하기 좋게 되어있다. 





특히 나는 글보다 사진이 좋았는데 설경별로 모아놓고, 미술관이나 예술촌, 테마파크처럼 실내로 들어갈 수 있는 장소, 수목원 같이 숲과 계곡만 따로 모아놓는 등 그야말로 여행자의 입맛대로 골라갈 수 있어서 이런 세세한 기획의도가 마음에 들었다. 





사람마다 취향도 제각각이고 계절마다 더 멋진 여행지도 있을 터인데 그런 점을 잘 캐치한 것 같다. 




이것이 전부 목차 앞쪽에 썸네일 사진으로 구획이 되어 있어서 갑자기 시간이 나서 주말에 바로 떠나야 할 때도 여행지를 고르기 쉽게 되어있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이 많은 내용 중 단연 나의 넘버원 관심사는 전라도 맛집!! 현지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음식점이 30군데 이상, 카페와 강추 맛집까지 식도락 여행을 즐기는 나같은 여행자에게 잘 맞는 정보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우 전문점 반햇소를 간다고 치면 여기 주소는 물론, 버스로 가는 법, 운영시간, 브레이크 타임, 전화번호, 대표메뉴와 각각의 가격, 사진까지 나와있어서 일일히 블로그 뒤지고 맛집 정보 찾아 손품을 또 팔 필요가 없는 게 제일 편했다. 





아마 이 책 한 권 들고 있으면 전라도 여행 가느라고 귀찮은 정보조사를 두 번 세 번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제일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중장년으로 넘어가면 어머니, 아버지들은 인터넷 뒤지는 걸 싫어하시는데 이렇게 책 한권 드리면 전라도 여행에 관한 바이블이라 할 만하기 때문에 손품을 팔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나는 내가 먼저 보고 부모님께 드릴 생각이다. 



저자가 추천하는 핫스팟 소개를 읽어보면 여행을 다녀온 사람만 쓸 수 있는 감성적인 글귀도 상당히 많다. 



정보가 워낙 많은 책이라 그 방대한 양에 읽다가 지칠 수도 있는데 하나의 장소를 소개하는 글도 허투로 쓴 것이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150년 전통을 가진 천주교 교우촌 천호성지를 소개하는 글을 읽어보면 마을의 유래, 역사적 의미, 뜻까지 차분하게 설명이 잘 되어 있어 나름의 읽는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푸른 하늘과 땅이 하나되는 곳 상하농원 



고창 상하농원에 가면 웰빙과 힐링을 제대로 만낄할 수 있다. '짓다','놀다','먹다'를 모토로 내걸고 자연과 동물, 사람이 교감할 수 있는 체험형 농촌 테마파크를 조성한 것이다. 동물농장과 유기농목장에서는 송아지와 양에게 건초나 우유를 먹이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새끼 동물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낼 수도 있다." p.344~345 



전라도의 숙소는 쌍산재를 찍어놓았는데 tvN의 윤스테이에 소개된 것을 내가 봤기 때문에 관심이 있던 차, 이 책에서 딱 다시 마주치니 한번 방문해보고 싶은 생각이 더욱 굴뚝같았다. 숙박을 하고 싶으면 홈피나 대표번호로 문의하라는 것을 봐서 숙박도 가능한 모양이다. 



"쌍산재는 운조루, 곡전재와 더불어 구례의 3대 전통 가옥이라 불린다. 2018년 전남 민간 정원 5호로 지정되어 역사와 전통 뿐만 아니라 정원의 가치가 더해졌다. 쌍산재는 현재 집주인의 고주부의 호(쌍산)을 빌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P.176



처음에는 여수 밤바다를 보러가려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전라도에서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진 게 단 하나의 흠일 정도다. 



맛집도 그저 식당만 소개된 것이 아니라 체험형 농원이나 이색적인 카페, 빵집까지 다 나와있어서 식후 디저트까지 골라보는 게 즐거웠다. 이제 떠나는 것만 남은 건가? 숙제를 해야 하는데 시기만 가늠하고 있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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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이현아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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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독특한 위치에 서있는 책 "여름의 피부"를 읽었다. 




책 표지에 있는 피에르 본콤팽의 1984년 그림 femme foetale, "태아처럼 웅크린 여인"이 그냥 딱 <여름의 피부>라는 책 제목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것이라는 느낌이라 여름 끝자락에 읽기 좋았다. 



비오는 여름밤에 아무 생각없이 아름다운 푸른 그림과 함께 넘겨보고 싶었는데 지금처럼 자주 비가 내리고 흐린 날에는 유독 이 눅눅함과 잘 어울렸다. 



저자 이현아 님은 잡지사 에디터로 일한 분인데 이 책은 작가로서 첫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해외의 유명 그림에 자기만의 해석을 더한 미술 서적인가하고 읽었는데 큰 틀에서는 에세이지만 좀 더 범위를 좁혀보면 저자의 경험과 느낌을 유명 화가들의 그림과 함께 풀어주는 예술서이기도 했다. 



저자 자신의 글과 함께 미술 작가들의 숨은 일화나 작품 해설, 역사적인 사실 등도 써있어서 좀 더 풍성한 지적 재미를 준다. 



그러고보니 띠지에 적혀있는 한 줄 카피가 이 책에 대해 좀 더 적확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다. "내 안의 고독과 불안에 위로를 건내는 푸른 그림에 관한 이야기". 



그림을 보고 글을 쓴 그림일기를 만들다보니 저자가 끌린 그림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푸른 기운을 가진 그림이었다고 한다. 



<여름의 피부>는 저자의 그림일기를 바탕으로 탄생했고 총 4장으로 이뤄져있다. 



1장 유년: 새파랗게 어렸던 덜 익은 사람, 2장 여름: 모든 것이 푸르게 물들어가는 계절, 3장 우울: 사람의 몸이 파랗게 변하는 순간 죽음, 병, 멍, 그리고 우울, 4장 고독: 비밀과 은둔과 침잠의 색 


다 읽고 이 책에 소재로 쓰인 그림만 쭉 모아서 훌렁훌렁 넘겨본 적이 있다. 



정말로 꼭 푸른색이 많이 쓰이지 않았더라도 여름 느낌이 났고 녹색이나 갈색, 라벤더 색상이 주를 이뤄도 그 점은 변함이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작가가 각각 다른 모든 그림에는 여름과 푸른 기운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소개된 작가와 작품수가 많았지만 유독 내 눈을 끈 것은 바로 발튀스(Balthus)의 불편하고도 기묘한 그림이었다. 



1936~1937년작 <산>,  <여름철> 모두 어둑한 산자락에 웬 여자아이가 누워서 죽은 듯이 잠들어있다. 






주변인물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과 포즈, 지팡이까지 뭐 하나 평범한 구석이 없다. 그가 살아있을 때 일부 비평가들이 병적이라고 비난했다는데 어찌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비평가들이 뭐라 하건 그림 속 여자의 표정과 배경, 포즈가 기괴하면서도 아름답다. 어떻게 말로 설명이 안 된다. 문제작인 <기타 레슨>도 그 의미를 떠나 그냥 봐도 이상하지만 다른 그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발튀스의 아버지는 젊은 미술사학자이자 무대 디자이너였고 그의 어머니(발라딘)는 화가였으니 아들이 유명 작가가 되는 것은 오히려 평범한 일이다. 



그런데 발튀스의 어머니가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만나 연인으로 지냈으며 그 유명한 릴케가 발튀스 13살 때에 <미쭈: 발튀스의 40가지 이미지>를 출간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한다. 



미쭈는 발튀스가 키운 고양이 이름인데 이 책의 작가 이현아 님이 키우는 고양이 이름도 미쭈라고 한다. 남산 아래서 남편과 두 고양이 말테, 미쭈와 살고 있다고 책 맨앞 날개에 써있다. 나는 이런 공통점을 찾는 게 즐거웠다. 



어린 발튀스는 애지중지하던 미쭈를 크리스마스 밤에 잃어버린다. 날짜가 너무 극적이라 조금 믿을 수가 없다. 



어쨌든 고양이가 집을 나간 것인데 아마도 이 사건은 그가 경험한 첫번째 상실이었을 것이라고. 이 정도 사건이면 미쭈 그림을 안 찾아볼 수가 없어서 검색해보니 발튀스 <자화상, 고양이 국왕폐하>에 그가 그린 거만한 표정의 발튀스와 그의 애묘 미쭈가 정말로 있었다. 



영어로 cocky란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는 역시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발튀스는 고립을 즐기는 사람이라 소수의 사람과 교류하고 집도 성 같은 곳에서 살았는데 그가 말년에 선택한 낡고 거대한 목조 건물 그랑 샬레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워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성에 초대받은 손님 중에는 데이비드 보위, 리처드 기어,틸타 스윈튼, 달라이 라마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작품과 작가수는 꽤 많았지만 다 읽고 나니 발튀스가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이다. 



북향을 좋아하는 작가, 어쩌면 낮보다 밤이, 밝음보다 어둠이 익숙한 사람이 담담하게 써내려간 차분한 기록과 푸른 그림들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 책을 읽고 어떤 위로를 받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 배경을 읽어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에드바르 뭉크하면 다리 위에서 소리지르며 달려가는 "절규" 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는데 "창가의 소녀" 같은 정적인 작품도 있었구나 싶고 던컨 한나, 피에르 보나르 같이 다소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간간히 들어간 작가의 내밀한 경험, 이를 테면 복실이라는 어머니가 시집올 때 데려온 개의 죽음 같은 것이 오히려 내가 알 수 없는 유명 작가의 작품보다 더 깊은 슬픔과 울림을 줬다. 



털이 길고 주둥이가 긴 누가봐도 식용이 아닌 애완견이었던 복실이. 



기르던 개를 아무렇지도 않게 식용으로 잡아먹는 동네 사람들과 굳이 엄마가 사랑하는 결혼 전부터 기르던 복실이를 데려간 무심한 아버지. 복실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죽음을 상징하는 이야기였다. 



여기 실린 어떤 푸른색 그림보다 더 묵직했고 대놓고 원망하지 않아도 당시 작가가 아버지에 대한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이 갔다. 잠이 오지 않는 여름밤에 어울리는 차분한 그림 에세이였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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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이현아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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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해외 작가들의 작품과 해설, 뒷이야기, 이현아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까지 곁들여져 독특한 즐거움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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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에디터스 컬렉션 1
조지 오웰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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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작품 중 하나만 읽어야 한다면 단연 1984다. 




1984를 아직 한번도 안 읽어본 분들도 빅브라더를 모르는 분들은 없을 듯. 그만큼 전체주의의 통제를 상징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성인이 된 이후 각종 에세이, 잡지, 실용서, 자기계발서는 쉽게 읽으면서 소설 특히나 영미소설은 좀처럼 손이 안가는 분야였다. 



마의 100p는커녕 아예 손에 들지를 않았는데 학창시절보다 집중력이 떨어진 것도 문제지만 소설에 대한 흥미가 많이 없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냥 단순히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불길한 현상들을 지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체주의가 한층 더 가까워지는데 도움이 되는 행동일 뿐입니다-조지 오웰(1944년 노엘 윌멧에게 보내는 편지 중)



그저 그런 내용, 사랑타령에 싫증난 나 같은 독자들이라면 부디 다른 책은 제쳐두고라도 조지 오웰의 1984는 한 번쯤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만큼 소설계에서 저멀리 떠나간 냉담자들도 붙잡을만큼 충분히 자극적이고 재미있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보고 있다" p.16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p.19



"음악국의 한 부서에서 프롤레들을 위해 비슷비슷하게 내놓은 수많은 노래 중 하나로 가사는 인간의 개입이 전혀 없이 작사기라는 기계가 만든 것이었다" p.212



1949년에 1984년의 미래를 내다보며 그린 디스토피아(유토피아의 반대말, 나쁜 곳)는 지금도 유효하다. 아직도 전세계에서 전쟁이 끊인 날이 없고 공산주의 국가에서 반체제 인사를 잡아다가 고문, 세뇌하는 기술도 잘 알려져있다.  




내용이 잔인하고 찬란할수록 어른 독자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나에게만 있는 마의 100p 장벽이 전혀 없이 초반 30p도 안 되어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에게 푹 빠져들었다. 




매력적인 39살의 중년 남자, 그 자신은 정맥류궤양과 나이 때문에 그닥 자신감이 없는 듯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멋진 주인공이다. "사랑해요"라는 위험한 쪽지를 26~27살의 줄리아에게 받은 것도 이해가 간다. 




이 책에는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최첨단 기계가 등장하는데 이른바 텔레스크린이다. 




조지 오웰이 1984를 출간한 때가 1949년인데 그 때 이미 텔레비전+스크린의 준말(이겠지?)인 현대판 cctv 텔레스크린의 개념을 쓰다니 놀라웠다. 천재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1984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배경은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만 존재하는 세계이고 이 세 나라는 늘 전쟁중이며 주인공은 오세아니아의 런던에 살고 있다. 


 



윈스턴 스미스는 진리부의 기록국에서 일하는 외부당원으로 국가 기관에서 다른 당원들과 함께 기록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빅브라더의 눈을 피해 몰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사고의 시작인 셈이다. 걸리면 사형이나 최소 강제노동수용소에서 25년형을 선고받을 만한 큰 죄다. 



친구인 사임은 신어전문 언어학자인데 단어의 파괴, 사고의 폭을 줄이는 게 신어의 목적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매년 단어가 계속 줄어들고 의식의 폭도 조금씩 작아지면 생각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임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나중에 증발한다. 당이 그를 숙청한 것이다. 



그들 모두는 맡은 바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그 댓가로 싸구려 물건과 맛없는 음식을 주기적으로 배급받는다. 



그나마도 부족해서 면도날 같은 것도 몇 달씩 기다리기 일쑤인데 겨우 구두끈 따위가 초과 생산되었다고 기뻐하는 뉴스를 보자면 북한 생각이 절로 나서 쓴웃음을 짓게 된다. 




이 이야기가 그냥 허무맹랑한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란 말씀이다.  



​당의 선전, 구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그런 유인물을 만들고 일반인들을 세뇌하는 게 그들 당원의 일이지만 점차 그런 전체주의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환멸을 느끼고 들키지 않으려고 죽을 힘을 쓰는 윈스턴!




그들은 빅브라더를 숭배하면서 가상의 적 이매뉴얼 골드스틴을 만들어 증오한다. 사실 그 누구도 빅 브라더의 실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대마왕 같은 주적으로 등장하는 골드스틴 역시 당이 만든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당은 뭐든지 할 수 있다. 과거를 조작하고 있던 일을 없게 하고, 사람도 증발시키며 숙청을 할 때 아예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다. 




당에서는 과거를 조작해 현재를 통제하여 미래까지 손에 넣는다. 그런 일련의 모든 작업은 굉장히 주도면밀하고 직장동료, 이웃, 가족까지 서로를 고발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계급은 맨 아래 하층민인 프롤레인데 프롤레타리아의 준말이겠지. 여기서는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사회의 가장 힘든 밑바닥 노동을 평생하고 생계를 이어가는 부류를 말한다. 




하지만 윈스턴은 프롤레에게만 희망이 있다고 봤다. 가장 무시받는 그들이야말로 당이 지배하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주인공은 필연적으로 당에 사상범으로 체포된다. 그 자신도 언젠가 자신과 비밀 연인 줄리아가 당에 붙들릴 것을 알고 있었다. 




채링턴과 오브라이언을 믿은 윈스턴을 조심성이 없다고 타박하기엔 그가 체포되기 7년전부터 현미경 감시를 당해왔다는 게 밝혀지며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나중에 보면 윈스턴은 처음 붙잡힌 것도 아니었다.. 




그 누구도 1984의 빅브라더를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그를 사랑하면서 죽을 때까지 지옥은 계속 된다. 




체포된 후 감방에서 그는 아는 동료를 만난다. 땀냄새 폭발하는 뚱보 파슨스. 그를 고발한 사람은 어이없게도 7살난 자신의 딸인데 파슨스는 오히려 딸을 자랑스러워한다. 배운대로 했으니 잘했다는 뜻이었다. 






이 소설은 블랙코미디이다. 어딘가 쓴웃음일지언정 웃음의 포인트를 잘 집는다. 



"두 사람의 근육질 엉덩이 사이에 끼고 나니 순간적으로 내장이 모두 곤죽이 된 것 같았다" p.177 



바지를 내려 좁은 감방 안에서 푸짐한 볼일을 보는 파슨스를 보지 않기 위해 윈스턴이 얼굴을 가리자 텔레스크린이 고함을 친다. "6079 스미스 W! 얼굴 가리지 마라!" 




당, 텔레스크린, 오브라이언에게 자비란 없다. 그들은 각종 고문으로 인간성을 파괴하고 생각을 없애며 건강한 성과 성욕을 말살한다. 당원들에겐 개인시간이 거의 없다. 쓸데없는 일을 끝도 없이 하고 각종 행군, 이벤트, 단체 활동으로 쉴 틈없이 돌아간다. 




사람을 물질화해서 결혼과 가족제도조차 해체하고 당에 예속시키며 남녀간의 사랑을 빅브라더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고, 남의 잠자리, 꿈속까지 파고드는 것이다. 


 



오랫동안 갇혀서 오브라이언으로 대표되는 당지도부에게 윈스턴은 결국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긴다. 




그는 가장 소중했던 줄리아와의 사랑도 살기 위해 팔아먹었다. 1984에서는 그 방식이 참 교묘했는데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식이었다. 







​텔레스크린으로 사람을 감시하면서 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윈스턴의 경우 쥐) 고문의 한 방법으로 활용하면 결국 연인이든 부모든, 자식이든 팔지 않고는 못 배기는 식이다. 




사랑부 청사 지하감옥 101실에서 죽음은 사치이고 총알은 늘 기다려오던 꿈 같은 수단일 뿐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윈스턴을 계획적으로 살려두면서 학대하고 얼마인지도 모를 시간동안 결박, 전기고문, 구타, 굶김, 최악의 위생상태를 초래해 30대의 윈스턴을 수십년 병든 노인같은 몸으로 만들어놓는다. 




나는 거울을 보고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윈스턴에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자비로운 당에서 이빨이 다 빠진 윈스턴에게 새틀니를 제공하는 것을 보며 경악하기도 했다. 




39살의 매력적인 윈스턴 스미스, 여자에게 사랑한다는 쪽지도 받던 그가 못생긴 오브라이언 따위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는 대목에서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윈스턴은 결국 그들에게 생각하는 모든 힘을 빼앗긴다. 당이 2+2=5라고 하면 5라고 순순히 대답한다. 당이 원하는 것은 2+2=4라고 말하는 윈스턴이 당이 5라고 우기면 5라는 것을 사실로 믿는 단계였다. 그저 당이 원하는대로 말해주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윈스턴이 줄리아를 팔아먹고 간신히 풀려난 후 가장 크게 빅브라더에 대한 사랑을 느낀 순간(세뇌의 마지막 단계) 자비로운 당의 총알이 윈스턴의 뒤에서 머리쪽으로 날아온다. 1984의 결말은 그래서 충격적이다. 




그들은 일부러 윈스턴을 살려둔 것이다. 윈스턴에게 생각하는 힘 자체가 없어지고 2+2가 5라는 것을 믿을 때, 이중사고를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윈스턴에게 올 때까지 끈덕지게 기다린 거지. 그는 오브라이언에게 선택받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4+4=5라고 순순히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2+2=4라고 말한 윈스턴에게 집착했다. 



자살도 허락되지 않는 저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끈질긴 감시와 폭력 아래 하나의 육체를 가진 인간이 사람으로 견디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걸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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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에디터스 컬렉션 1
조지 오웰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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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가장 사실적으로 강력하게 그려낸 역작. 빅브라더는 현대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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