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이현아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평점 :
품절


굉장히 독특한 위치에 서있는 책 "여름의 피부"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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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있는 피에르 본콤팽의 1984년 그림 femme foetale, "태아처럼 웅크린 여인"이 그냥 딱 <여름의 피부>라는 책 제목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것이라는 느낌이라 여름 끝자락에 읽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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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여름밤에 아무 생각없이 아름다운 푸른 그림과 함께 넘겨보고 싶었는데 지금처럼 자주 비가 내리고 흐린 날에는 유독 이 눅눅함과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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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현아 님은 잡지사 에디터로 일한 분인데 이 책은 작가로서 첫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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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해외의 유명 그림에 자기만의 해석을 더한 미술 서적인가하고 읽었는데 큰 틀에서는 에세이지만 좀 더 범위를 좁혀보면 저자의 경험과 느낌을 유명 화가들의 그림과 함께 풀어주는 예술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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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자신의 글과 함께 미술 작가들의 숨은 일화나 작품 해설, 역사적인 사실 등도 써있어서 좀 더 풍성한 지적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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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띠지에 적혀있는 한 줄 카피가 이 책에 대해 좀 더 적확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다. "내 안의 고독과 불안에 위로를 건내는 푸른 그림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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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고 글을 쓴 그림일기를 만들다보니 저자가 끌린 그림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푸른 기운을 가진 그림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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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피부>는 저자의 그림일기를 바탕으로 탄생했고 총 4장으로 이뤄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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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유년: 새파랗게 어렸던 덜 익은 사람, 2장 여름: 모든 것이 푸르게 물들어가는 계절, 3장 우울: 사람의 몸이 파랗게 변하는 순간 죽음, 병, 멍, 그리고 우울, 4장 고독: 비밀과 은둔과 침잠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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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이 책에 소재로 쓰인 그림만 쭉 모아서 훌렁훌렁 넘겨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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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꼭 푸른색이 많이 쓰이지 않았더라도 여름 느낌이 났고 녹색이나 갈색, 라벤더 색상이 주를 이뤄도 그 점은 변함이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작가가 각각 다른 모든 그림에는 여름과 푸른 기운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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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된 작가와 작품수가 많았지만 유독 내 눈을 끈 것은 바로 발튀스(Balthus)의 불편하고도 기묘한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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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1937년작 <산>,  <여름철> 모두 어둑한 산자락에 웬 여자아이가 누워서 죽은 듯이 잠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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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물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과 포즈, 지팡이까지 뭐 하나 평범한 구석이 없다. 그가 살아있을 때 일부 비평가들이 병적이라고 비난했다는데 어찌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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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평가들이 뭐라 하건 그림 속 여자의 표정과 배경, 포즈가 기괴하면서도 아름답다. 어떻게 말로 설명이 안 된다. 문제작인 <기타 레슨>도 그 의미를 떠나 그냥 봐도 이상하지만 다른 그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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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튀스의 아버지는 젊은 미술사학자이자 무대 디자이너였고 그의 어머니(발라딘)는 화가였으니 아들이 유명 작가가 되는 것은 오히려 평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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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발튀스의 어머니가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만나 연인으로 지냈으며 그 유명한 릴케가 발튀스 13살 때에 <미쭈: 발튀스의 40가지 이미지>를 출간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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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쭈는 발튀스가 키운 고양이 이름인데 이 책의 작가 이현아 님이 키우는 고양이 이름도 미쭈라고 한다. 남산 아래서 남편과 두 고양이 말테, 미쭈와 살고 있다고 책 맨앞 날개에 써있다. 나는 이런 공통점을 찾는 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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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발튀스는 애지중지하던 미쭈를 크리스마스 밤에 잃어버린다. 날짜가 너무 극적이라 조금 믿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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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고양이가 집을 나간 것인데 아마도 이 사건은 그가 경험한 첫번째 상실이었을 것이라고. 이 정도 사건이면 미쭈 그림을 안 찾아볼 수가 없어서 검색해보니 발튀스 <자화상, 고양이 국왕폐하>에 그가 그린 거만한 표정의 발튀스와 그의 애묘 미쭈가 정말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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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cocky란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는 역시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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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튀스는 고립을 즐기는 사람이라 소수의 사람과 교류하고 집도 성 같은 곳에서 살았는데 그가 말년에 선택한 낡고 거대한 목조 건물 그랑 샬레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워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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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에 초대받은 손님 중에는 데이비드 보위, 리처드 기어,틸타 스윈튼, 달라이 라마 등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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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소개된 작품과 작가수는 꽤 많았지만 다 읽고 나니 발튀스가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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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향을 좋아하는 작가, 어쩌면 낮보다 밤이, 밝음보다 어둠이 익숙한 사람이 담담하게 써내려간 차분한 기록과 푸른 그림들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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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어떤 위로를 받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 배경을 읽어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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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하면 다리 위에서 소리지르며 달려가는 "절규" 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는데 "창가의 소녀" 같은 정적인 작품도 있었구나 싶고 던컨 한나, 피에르 보나르 같이 다소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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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간간히 들어간 작가의 내밀한 경험, 이를 테면 복실이라는 어머니가 시집올 때 데려온 개의 죽음 같은 것이 오히려 내가 알 수 없는 유명 작가의 작품보다 더 깊은 슬픔과 울림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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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이 길고 주둥이가 긴 누가봐도 식용이 아닌 애완견이었던 복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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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르던 개를 아무렇지도 않게 식용으로 잡아먹는 동네 사람들과 굳이 엄마가 사랑하는 결혼 전부터 기르던 복실이를 데려간 무심한 아버지. 복실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죽음을 상징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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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실린 어떤 푸른색 그림보다 더 묵직했고 대놓고 원망하지 않아도 당시 작가가 아버지에 대한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이 갔다. 잠이 오지 않는 여름밤에 어울리는 차분한 그림 에세이였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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