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병에 대해 이해하려고 애를 쓰다가 문득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숙취나 소화불량에 대해 이해하려고 애를 썼던 에세이 내용이 떠올라버렸다. 대충 짐작은 가지만 숙취나 소화불량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그 고통을 온전히 알 수 없듯이 ADHD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며 넘어갔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이 질환이 있어도 이렇게 훌륭한 작가가 되는 것을 보니 학습이나 지적능력과는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또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분량의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단 책상에 앉아있어야 한다. 그 역시 주의력과 집중력이 고도로 요구되는 작업인데 왜 아직 완치라는 소리가 없는 걸까 이 두 가지에 의문을 갖고 읽게 되었다.
그만큼 이 책은 재밌고 훌륭하다. 그리고 엿같은 직장생활과 사장의 횡포 등에 대해 읽을 때는 똑같이 분노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억울하거나 기분 나쁜 일을 당해도 종국에는 유머로 승화시키는 정신력에 감탄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형만큼 멋진 사람이 또 있을까?
이제 그녀는 작가가 되었으니 출퇴근에 3~4시간씩 쓰던 과거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돌아가지 못할 것이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곁에는 반려묘 맷돌이도 있다. 후반부에야 길고양이 출신인 맷돌이 얘기가 나오는데 나중에 궁금해서 찾아보니 삽화가가 그린 흰고양이가 아니었다. 고양이 모양을 한 돼지라는 밥 잘먹고 귀여운 맷돌이, 한창 때의 내 반려묘를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그렇게 크고 우람한 고양이들도 나이를 먹으면 체중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어딘가 낭만이 있지만 늙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낭만은 사라지고 어딘가 비참하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 슬픔은 젊을 때 끝내고 늙어서는 기쁨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사람 사이의 관계, 그 어려움은 나도 겪어본 터라 가장 많이 맞장구를 치다가 이내 곧 심드렁해졌지만 맷돌이 얘기는 끝도 없이 재미만 있었다. 이래서 고양이 키우는 사람은 안 되나보다. 종국에는 인간보다 고양이에게 더 관심이 가고 만다. 다음에 작가님이 책을 낼 때는 어딘가 비슷하고 지루한 인간관계 말고 반려묘와의 단짠 생활에 관해 써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