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 관계, 그 잘 지내기 어려움에 대하여
정지음 지음 / 빅피시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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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내내 지겨워하다가 아껴둔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바로 요새 아주 핫하다는 젊은 작가 정지음 님의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라는 에세이인데 실은 나는 이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너무 바빠서 앞부분만 살짝 '간만 봐야지'하고 훑어보다가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 '지은 책으로는 <젊은 ADHD의 슬픔>이 있고, 소설 <언러키 스타트업>을 출간 준비중이다'라는 말에서 바로 그 제목 '젊은 ADHD의 슬픔'에 꽂혀버렸다. 크하.. 멋있다. 꼭 읽고 말 테다.

책 제목이 인상적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인공 이름짓기만큼이나 공을 들이는 작업일 거라 짐작한다.

'젊은 ADHD의 슬픔'에서 나는 ADHD를 베르테르로 나도 모르게 치환해버렸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거기서 또 '젊은'을 '늙은'으로 치환하자 그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것이다. 늙은 베르테르의 슬픔 혹은 ...... 차마 죄송스러워 말을 잇지 못하겠다.

아무튼 작가님 본인이 ADHD를 앓고 있으니 분명 심각한 일이긴 한데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인생의 쓴맛과 힘든 점을 상당부분 유머로 승화시켜버렸다. 극복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늘로 날아가버린 듯해서 속이 후련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뜬금없이 걷기 운동을 하며 1/3 즈음 읽어버린 이 책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전작의 제목에 감탄해 마지않았고 그런 말장난 같은 단어 치환에 남몰래 빠져들었던 것이다.


전작을 읽어보지 않아서 제목 말고는 유추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어쩐지 느낌으로는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역시 '관계, 그 잘 지내기 어려움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걸로 봐서 그 평행선상에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봤다.

정지음 작가는 이 책에서 성급한 연애의 실패담, 직장생활의 어려움, 친구 관계, 부모님, 편의점에서 만난 알바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 솔직하고 재밌게 털어놨다.

ADHD라는 말이 하도 많이 나와서 도대체 정확히 이 병이 어떤 것인가 검색해보니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라고 한다. 끝까지 다 읽어봐도 주로 아동에 해당되는 것 같은데 작가는 성인이었다. 아, 그래서 "젊은"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거구나.


이 병에 대해 이해하려고 애를 쓰다가 문득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숙취나 소화불량에 대해 이해하려고 애를 썼던 에세이 내용이 떠올라버렸다. 대충 짐작은 가지만 숙취나 소화불량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그 고통을 온전히 알 수 없듯이 ADHD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며 넘어갔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이 질환이 있어도 이렇게 훌륭한 작가가 되는 것을 보니 학습이나 지적능력과는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또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분량의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단 책상에 앉아있어야 한다. 그 역시 주의력과 집중력이 고도로 요구되는 작업인데 왜 아직 완치라는 소리가 없는 걸까 이 두 가지에 의문을 갖고 읽게 되었다.

그만큼 이 책은 재밌고 훌륭하다. 그리고 엿같은 직장생활과 사장의 횡포 등에 대해 읽을 때는 똑같이 분노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억울하거나 기분 나쁜 일을 당해도 종국에는 유머로 승화시키는 정신력에 감탄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형만큼 멋진 사람이 또 있을까?

이제 그녀는 작가가 되었으니 출퇴근에 3~4시간씩 쓰던 과거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돌아가지 못할 것이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곁에는 반려묘 맷돌이도 있다. 후반부에야 길고양이 출신인 맷돌이 얘기가 나오는데 나중에 궁금해서 찾아보니 삽화가가 그린 흰고양이가 아니었다. 고양이 모양을 한 돼지라는 밥 잘먹고 귀여운 맷돌이, 한창 때의 내 반려묘를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그렇게 크고 우람한 고양이들도 나이를 먹으면 체중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어딘가 낭만이 있지만 늙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낭만은 사라지고 어딘가 비참하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 슬픔은 젊을 때 끝내고 늙어서는 기쁨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사람 사이의 관계, 그 어려움은 나도 겪어본 터라 가장 많이 맞장구를 치다가 이내 곧 심드렁해졌지만 맷돌이 얘기는 끝도 없이 재미만 있었다. 이래서 고양이 키우는 사람은 안 되나보다. 종국에는 인간보다 고양이에게 더 관심이 가고 만다. 다음에 작가님이 책을 낼 때는 어딘가 비슷하고 지루한 인간관계 말고 반려묘와의 단짠 생활에 관해 써줬으면 좋겠다.



"피곤에 찌들어 낮잠을 자는데 고양이 맷돌이가 계속 울었다. 야오옹, 우우웅, 우앙, 오왱... 참 아무렇게나 들리는 소리였다. 나는 돼지 고양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는 대신 1톤 같은 몸을 일으켰다. (중략) 눈이 오고 있었다. 그해의 첫눈이었다. -P.233

전염병이 창궐하는 세상에도 낭만은 있다. 이를테면 첫눈 보라고 주인을 깨우는 손발이 통통한 돼지 고양이 같은 존재 말이다. 이런 존재가 곁에 있으면 가끔만 미칠 뿐, 대부분은 정상으로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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