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되게 해결해 드립니다, 백조 세탁소 안전가옥 오리지널 9
이재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전가옥은 조금 독특한 출판사이다. PD의 개념이 있어서 프로듀서와 소설가가 협업해서 스토리를 개발한다고 하는데 처음부터 향후 다양한 매체로 확장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컨셉이 마음에 들었다. 원작이 훌륭하면 얼마든지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시대인데 기획 단계부터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니 도대체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해졌다.


<세련되게 해결해 드립니다, 백조 세탁소>는 코지 미스터리라는 장르소설이다. 정확히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라는 게 무슨 뜻인지 찾아보니 가볍고 편안한 범죄 추리물로 배경이 작은 소도시나 마을이고 사건 해결도 아마추어가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럼 진짜 이 소설이 딱이네.

배경은 전남 여수의 작은 마을, 그나마도 재개발 소리가 있어서 어수선하고 아파트 단지 역시 재개발에 성공한 스타힐(옛날 주공1단지)과 실패해서 올드한 채 그냥 남아있는 주공 2단지가 마주보고 있다. 주인공은 대학졸업장을 따기도 전에 다니던 대학이 부실 대학으로 선정되어 폐교되고, 편입과 취직에도 실패해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님이 하시던 작은 세탁소를 물려받게 된다.




아마추어 탐정처럼 자기 고향 마을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을 이정도 형사(경찰대 출신 엘리트지만 서울에서 밀려나 이 시골 동네까지 오게된) 한 명과 힘을 합쳐 해결한다는 내용인데 예전에 재밌게 봤던 최강희 주연의 드라마 '추리의 여왕'이 생각나 즐거워졌다.

물론 이 소설과 드라마는 배경과 이야기가 전혀 다르지만 코믹한 요소가 많고 사건을 나서서 해결하는 아마추어 여자주인공과 조력자 역할을 하는 남자 형사라는 조합이 그렇다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 역시 소설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만화가게를 운영하는 캔디 사장님, 아파트 경리부장인 미숙 언니, 미용실 세라 원장님, 현실적이고 얄미운 유튜버 커피홀릭, 마지막으로 후반부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폐지 할머니 팔용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여수의 아주 작은 동네에서 지지고 볶는다.

처음에는 일어나는 사건이 너무 소소하거나 갑자기 확 끝나버리는 느낌이 있어 집중하기 힘들었는데 읽다보니 백은조라는 캐릭터에 점점 정이 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사건을 깊이 파는 게 아니라 단편소설집처럼 여러가지 사건이 순차적으로 발생하고 해결되는 과정이 그려져있다.

은조는 스펙도 별 볼일 없고 서울로 대학을 갔지만 결국 디자이너로서 직업을 잡는데 실패해서 도로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케이스이다. 은조의 친구들 역시 대학을 졸업 못한 건 마찬가지라 나중에 이 친구들도 대거 여수로 내려와 같은 사업을 하게 되는데 직업이 없으면 직업을 만들고, 문제가 생기면 동네 사람들끼리 같이 합심해서 해결하는 그 긍정의 힘이 좋았다.

현실이 이렇지 않나? 취직이 안 된다고 10년이고 20년이고 마냥 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튜브라는 말이 생소할 때부터 그 세계에 뛰어들어 유튜버라는 신종 직업을 만들어낸 사람들도 그렇고, 은조처럼 디자이너로 취직을 못하면 창업으로 길을 돌릴 수도 있다. 이제 누군가 고용해주기만을 기다리던 시대는 지나가버렸다.

혹시 본격 미스터리 장르를 원한다는 독자라면 이 책 말고 좀 더 깊이있는 추리소설이 맞겠지만 코믹하면서도 사람 냄새나는 가벼운 추리물을 원한다면 이 쪽이 더 취향일 것이다. 감탄한 내용은 주로 은조의 명품 감별력이었는데 실이라든가, 스카프 탈부착 여부, 시즌 신상품에 대한 굉장히 해박한 지식이 읽는 재미를 더해줬다.

사실 패션 취향이라는 것은 지문 같은 것으로 본인은 눈치 못채도 주변 사람들이 더 잘 아는 경우가 많다. 은조처럼 그 쪽 세계에 빠삭한 사람이 작은 동네의 유일하게 하나 있는 세탁소를 운영한다는 설정 자체가 아마추어 탐정으로서 꽤 메리트있는 포지션을 갖춘 셈이다. 이야기가 아주 정교하고 추리가 기가 막힌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지만 종종 등장하는 작가의 반짝 빛나는 위트가 이야기를 읽는 내내 빙긋 웃을 수 있는 즐거움을 줬다.

출판사로부터 지원을 받아 직접 읽고 솔직히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