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일어나는 사건이 너무 소소하거나 갑자기 확 끝나버리는 느낌이 있어 집중하기 힘들었는데 읽다보니 백은조라는 캐릭터에 점점 정이 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사건을 깊이 파는 게 아니라 단편소설집처럼 여러가지 사건이 순차적으로 발생하고 해결되는 과정이 그려져있다.
은조는 스펙도 별 볼일 없고 서울로 대학을 갔지만 결국 디자이너로서 직업을 잡는데 실패해서 도로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케이스이다. 은조의 친구들 역시 대학을 졸업 못한 건 마찬가지라 나중에 이 친구들도 대거 여수로 내려와 같은 사업을 하게 되는데 직업이 없으면 직업을 만들고, 문제가 생기면 동네 사람들끼리 같이 합심해서 해결하는 그 긍정의 힘이 좋았다.
현실이 이렇지 않나? 취직이 안 된다고 10년이고 20년이고 마냥 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튜브라는 말이 생소할 때부터 그 세계에 뛰어들어 유튜버라는 신종 직업을 만들어낸 사람들도 그렇고, 은조처럼 디자이너로 취직을 못하면 창업으로 길을 돌릴 수도 있다. 이제 누군가 고용해주기만을 기다리던 시대는 지나가버렸다.
혹시 본격 미스터리 장르를 원한다는 독자라면 이 책 말고 좀 더 깊이있는 추리소설이 맞겠지만 코믹하면서도 사람 냄새나는 가벼운 추리물을 원한다면 이 쪽이 더 취향일 것이다. 감탄한 내용은 주로 은조의 명품 감별력이었는데 실이라든가, 스카프 탈부착 여부, 시즌 신상품에 대한 굉장히 해박한 지식이 읽는 재미를 더해줬다.
사실 패션 취향이라는 것은 지문 같은 것으로 본인은 눈치 못채도 주변 사람들이 더 잘 아는 경우가 많다. 은조처럼 그 쪽 세계에 빠삭한 사람이 작은 동네의 유일하게 하나 있는 세탁소를 운영한다는 설정 자체가 아마추어 탐정으로서 꽤 메리트있는 포지션을 갖춘 셈이다. 이야기가 아주 정교하고 추리가 기가 막힌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지만 종종 등장하는 작가의 반짝 빛나는 위트가 이야기를 읽는 내내 빙긋 웃을 수 있는 즐거움을 줬다.
출판사로부터 지원을 받아 직접 읽고 솔직히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