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 지친 마음에 힘이 되어주는 그림 이야기 자기탐구 인문학 5
태지원 지음 / 가나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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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에서 10년이나 교사생활을 하다가 남편을 따라 중동의 어느 작은 나라로 가게 된 작가, 그녀는 거기서 코로나를 겪고 언어부터 생활까지 모든 게 낯선 곳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미술사 관련 서적을 뒤적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을 보며 깊이 공감한 작가는 명화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해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이라는 새로운 컨셉의 인문교양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다 읽고나면 심리상담서 같기도 하고 명화 해설서 같기도 한데 이처럼 찰떡같이 명화를 알기 쉽게 설명해 준 책은 여태 보질 못했다.


명화에 대한 해석에 앞서 항상 앞부분은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 당시 느낀 좌절과 실망, 분노, 질투, 혹은 외로움 같은 감정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처음에는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구나, 이런 일 나도 겪었는데 하고 공감하면서 읽었고 후반으로 갈수록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에는 조금씩 관심이 없어지고 작품 해석 위주로 보는 나를 발견하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지, 나는 애초에 그렇게 감정적인 인간은 아니었던 것이고 심지어 이런 책을 읽을 때조차 남의 고민과 개인사에 크게 관심이 없어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중간에 작가가 언급한 고민을 얘기하다보면 상대와 불행 배틀을 하게 되는 이야기나, 기타 불쾌한 상황도 이미 다 겪어봤기에 그게 어떤 뜻인지도 안다. 그럼에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상처받을 때 받더라도 토로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과, 결국 상황이 바뀌는 것은 없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그 모든 일에 조금씩 무뎌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명화 삽화가 진짜 많이 나오는데 그 명화를 보는 재미가 가장 쏠쏠했다. 화가들의 개인사와 작가 개인의 고민과 있었던 일이 절묘하게 맞물며 작가의 해석을 듣다보면 오래된 작품이 마치 현실의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이렇게 위대한 대작가들도 일반 사람과 크게 다를 게 없구나 싶고 또 렘브란트나 화가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작풍이 변하는 것을 볼 때면 안쓰럽기도 하고 그 자체로 위로가 되기도 했다.

밤에 보다가 깜짝 놀란 작품이 2점 있었는데 사실 너무 재밌게 읽기도 했다.

위의 작품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인데 위, 아래 그림을 그린 화가가 각각 다르다. 유디트는 구약성서 외전에 등장하는 여성으로 적장인 홀로페르네스가 조국을 점령하자 그에게 사절로 위장한 채 접근해서 술을 마시게 한 후 목을 베어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누가 봐도 강인한 여성 둘이 주인공이고 엄청 센 힘으로 적극적으로 적적장의 목을 베고 있는 반면, 아래에 소개된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의 유디트는 한참 뒤로 물러서서 목을 따는 건지 마는 건지 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내 눈에는 그 옆에 끈을 들고 서있는 시녀 할멈의 의지가 더 결연해보여서 웃고 말았다.






어쨌든 위의 결연한 유디트 그림을 그린 작가는 여성으로 아버지 친구인 화가 타시에게 성폭행을 당한 불행한 과거가 있었지만 그 후에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고 나중에는 한 때 스승이었던 카라바조와 같은 소재로 이런 작품을 남기기까지 하다니 훌륭하다.

자세한 내용을 모른채 그림만 봤을 때도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에 눈이 먼저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표정과 근육, 중년 여성들의 강인한 근육까지 마치 살아움직이는 것 같고 적장의 머리를 한손으로 움켜쥐고 칼이 적장의 목 중간까지 들어간 표현력까지 세상에 명화란 이렇게 힘이 있구나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깜짝 놀란 작품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정말 강렬했던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이 작품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징그러웠고 왜 이런 얼굴인지 한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고야는 말년에 귀머거리 집이라 불린 별장을 구해 옻칠을 해서 번쩍이는 벽에 검은 그림 연작을 그렸다는데 이 작품이 그 중 하나라고 한다. 이 그림의 주인공인 사투르누스는 아버지 우라누스를 처지할 때 "너도 네 자식 손에 죽을 것이다"라는 예언을 듣고 그 말이 불안해 자식을 낳을 때마다 잡아먹었다고 하는데 바로 그 이야기를 화폭에 옮긴 게 이 무시무시한 작품이다.

아, 정말이지 프린트에 불과하지만 압도적인 명화의 느낌에 밤에 책장을 넘기다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바로 빠져들었다. 내가 알던 고야는 낭만주의 화가로 이런 풍이 전혀 아니었는데 그건 말년의 고야를 전혀 몰랐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어둠에 끌리기 마련인가, 파라솔 펴고 젊은 남녀가 웃고 있는 그림보다 악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이 괴괴한 작품에 빨려드는 것은 왜일까?

작가의 설명처럼 사투르누스는 자신의 아이를 잡아먹을 때 악마의 표정이 아니라 불안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얼굴이다. 왜 태지원 작가의 해설 전에는 이렇게 주인공 표정까지 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제 자식을 잡아먹는 아비의 불안이라니!

이렇게 이 책은 명화의 숨겨진 이야기는 물론, 작가의 개인사와 작품의 그려진 배경까지 마치 옆에서 친절한 선생님이 설명해주듯 작품을 보며 동시에 읽어가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명화를 좋아하지만 멀고 어렵게 느꼈던 독자들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분량이 좀 되기에 한번에 읽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작품을 보는 시선도 넓혀지고 무엇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다.


-출판사의 지원받아 도서를 제공받아 읽었고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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