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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고치며 마음도 고칩니다 - 우울을 벗어나 온전히 나를 만난 시간
정재은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2월
평점 :
저자는 어릴 때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데 마흔이 넘어 이 책을 내고 작가가 되었다. 어찌보면 작가가 별 거냐 싶다. 어느 유명한 노배우는 배우가 별 거냐고 했다. 글을 읽을 줄 알면 누구나 연습을 거쳐 연기자가 될 수 있다고.. 작가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데 짜임새있게 글을 쓸 줄 알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책을 낸 이후로도 남들이 인정하는 작가가 되는 지는 다음 문제다. 배우가 데뷔만 했다고 배우가 아니듯이.

저자는 결혼을 하고 빚을 갚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부부 모두 프리랜서가 된다. 빚 갚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다닌 직장을 정리한 셈인데 다행히 프리랜서의 생활은 두 사람에게 잘 맞는 듯하다. 그리고 살던 집도 빌라를 거쳐 10평 남짓 지금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게 된다.
세상에 진정한 우연이라는 게 있을까 싶다. 부부는 어쩌면 자신들도 모르는 새 이런 삶으로 방향을 튼 것만 같다. 해외여행지에서 만나 몇 년에 걸쳐 서로를 알아가고, 그러다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되었듯이, 반쯤 강제로 빚을 갚기 위해 쉽사리 그만둘 수 없었던 회사 생활을 하다가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선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물 흐르는 과정같이 느껴졌다. 회사생활이 맞지 않는 성향이 있다. 정시에 출근하지만 정시에 퇴근할 수 없고, 내향적인 사람인데 억지로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서 타인과 맞춰가는 삶.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그리고 프리랜서란 따로 작업실을 얻을 환경이 아니면 집에서 생활도 하고 일도 하게 마련이다. 이 협소주택이랄까 작디작은 집을 얻은 후로 계속 가꾸고 고치게 되는 것도 정해진 수순처럼 느껴졌다. 아파트도 살다보면 불편한 데가 자꾸 생긴다. 몇 년마다 리모델링 혹은 인테리어를 안 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주택은 오죽할까. 게다가 수십년 동안 세만 주면서 방치하다시피 한 곳이 아닌가. 용적율이니 건폐율이니 나는 잘 모르지만 집을 아예 부수고 새로 짓고 싶어도 제약이 많다는 것은 안다.

저자가 구입한 집은 워낙 좁아서 다 부수고 새로 지었다고 해도 높이를 더 올릴 수 없기 때문에 한계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면적 수리를 통해 고쳐 사는 것이겠지만 다행히 두 사람은 무척 감각적이고 센스가 뛰어나다. 책 속의 사진으로는 집의 전체적인 모양이나 자세한 내부 구조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부분적인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예전보다 멋지고 아름답게 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울했던 10대, 20대를 지나 자신과 맞는 사람을 찾아 결혼을 하고 안정을 찾아가는 저자를 보며 훌륭한 성장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도 계속 변하듯이 집도 주인을 만나 계속 변한다. 휑하던 마당에 벽돌을 얻어 기어코 화단을 만들고 나무를 심는 모습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초록을 만들고 나니 아무리 좁은 마당이어도 훨씬 멋있어졌다. 아마 저자가 가꿔고 고쳐놨으니 집값도 꽤 올랐을 것 같다. 재테크란 게 이런 것이다. 가치가 없던 곳을 찾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
또 개 키우는 집에서 길고양이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며 저자가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아마 저자는 아기자기 예뻐진 저 집에도 영원히 살지는 않을 것이다. 돈을 벌면 진짜 원하던 마당이 넓은 새집으로 이사가겠지. 그리고 더욱 잘 꾸밀 것이다. 하지만 그 전이라도 이 집을 방치하지 않고 좁은 집 나름대로 더욱 편안하게, 좀 더 예쁘게 꾸밀 사람이다. 나는 이 점을 높이 산다. 우리는 모두 비슷비슷한 하루를 살고, 외모도 어제랑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매일이 같고, 매일이 똑같은 사람은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서도 어떻게 하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질지 궁리를 해야 한다. 맨 처음 가진 꿈을 잊지 않고 마흔이 넘어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저자, 계속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마당 넓은 집을 꿈꾸고 있으니 언제고 꼭 마당 넓은 집을 가질 것이다. 매일 꾸준히 나아가는 아름다움을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