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서 멈추다 - 초록빛 힐링의 섬
이현구 지음 / 모요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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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잡지사 기자, 기업 사보에 글을 쓰는 일을 하던 사람인데 우연히 아일랜드 여행을 갔다가 현지인 남자을 만나 결혼하고 그 곳에 정착하게 된다. 지금은 아일랜드에 산 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남편 존과 브레이라는 소도시에 살면서 이 책을 냈다. 여행기와 에세이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이 책은 저자의 방대한 자료조사와 수 년간에 걸친 여행 경험 등 현지인의 이점을 살려 총367페이지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두께로 아일랜드 여행의 끝판왕 같은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음악과 예술, 역사 등 다방면에 관심이 있는 저자 덕분에 아일랜드라는 나라를 잘 알지 못했던 나까지 그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분단국가이고 그 이유가 정치가 아닌 종교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아일랜드는 8백년 넘게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가톨릭(아일랜드)과 영국신교(북아일랜드)라는 종교 갈등 때문에 지금도 북아일랜드는 영국연방 소속이라고 한다. 자의에 의해 남의 나라 지배를 받다니 이해가 안 가지만 남, 북한도 열강의 의해 쪼개진 채 굳어져버린 상태이니 원인은 달라도 비슷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런 역사적 유사성 외에 이 책이 재밌었던 것은 아일랜드에서 생활인으로 살면서 느낀 소소한 감상이 오히려 화려한 관광 위주의 여행기보다 와닿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는 감자가 주식이고 그만큼 감자가 많이 나는 나라라고 한다. 그녀가 설명한 분이 많이 나는 아일랜드 감자의 폭신폭신한 맛을 아이리시 조리법으로 먹어보고 싶다. 마치 눈이 많이 오는 나라는 눈에 대한 단어가 많듯이 아일랜드는 커스핑크, 루스터 등 감자의 종류도 다양했다. 저자가 채소만 먹는 비건인지라 고기맛에 대한 소개는 없지만 비건을 위한 페스티벌도 있고 식당이나 음식도 상당히 발달한 나라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채식주의자들이 아일랜드 여행을 다녀도 음식 때문에 크게 불편한 점은 없을 것 같다. 특히 펍이 발달해서 어디를 가도 맛있는 맥주를 판다고 하니 술 좋아하는 분들은 환영할 만한 곳이지 않나 생각한다.

 

남편 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와서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데 부모가 아닌 릴리 이모 밑에서 외롭게 자란 소년 존의 이야기, 파란 눈의 사위와 장모가 친해지는 과정, 마운트조이 교도소에서 요리와 음악을 가르치는 현재 직업까지 마치 소설처럼 흥미로웠다. 저자는 남편과 함께 교도소 수용자들을 위해 음악콘서트를 열어주는 자원봉사 경험도 적었는데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살인이나 강간 등을 저지른 성인 남성 수감자들을 처음 만나면 아무래도 섬뜩한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런 그들도 음악을 좋아하고 친절한 사람이 많다니 솔직히 좀 의외였지만 이춘재조차 자기 대신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윤씨에게 미안하다고 한 것을 보면 아무리 짐승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마음 속 어딘가에는 인간다움이 남아있는 것인가 잠시 생각해봤다.

아무튼 잉꼬 부부인 그들은 둘이서 여행도 많이 하고 존이 바쁠 때는 저자 혼자 여행도 많이 했는데 어째 나는 수도인 더블린보다도 소도시 여행기가 훨씬 재밌게 읽혔다. 한국에 살 때는 심심하다고 느끼던 순간들이 아일랜드에서는 행복하다로 바뀌고, 한국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아일랜드에서 여유를 찾은 저자의 마음 때문일까 낡은 시골 호텔에 묵으며 밤에 애플사이다 한캔을 따서 넷플릭스 영화를 보는 여유를 이야기하는데 너무나 부러웠다. 꼭 좋은 호텔, 대도시, 관광객이 많은 유명 스팟에 가지 않아도 이제 내게 진정한 힐링 여행이란 이렇게 혼자만의 소확행을 즐기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 여행 고수가 되려면 유명 관광지도 대도시도 한번쯤 거쳐봐야 하는 것이겠지만 부부가 핼로윈을 즐기기 위해 찾아간 튬이라는 시골마을 여행기를 읽으며 저자처럼 비수기에, 다소 외진 곳으로 떠나면 저렇게 저렴한 가격에 현지인 기분을 잔뜩 느낄 수 있겠구나 기대에 부풀기도 한다.

비록 일년 중 300일은 비가 온다는 아일랜드의 날씨와 해가 금방 떨어지는 우중충한 겨울에도 불구하고 그 또한 낯선 나라에서는 새로운 경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터였다. 저자의 말대로 우산보다 방풍, 방수 기능이 좋은 겉옷을 준비하면 그만이고 비가 오다가 해가 뜨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니 이 책을 다 읽고나자 더블린 근교의 바닷가 마을이라는 브레이에서 아일랜드의 진수를 맛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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