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도쿄행 - 조선 지식인들의 세계 유람기
이상 외 지음, 구선아 엮음 / 알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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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도쿄행'은 총 6명의 구한말 지식인들의 세계 여행 기행문 모음집이다. 제목은 시인 그 '이상'을 뜻하기도 하고 이상적인 삶을 의미하는 理想의 중의어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 이상의 도쿄행 여행기라고 소개하기에는 이상의 분량이 너무나 적다. 겨우 6페이지이다. 가장 기대했는데 분량이 적어서 아쉽지만 내용은 또 발군이다.

 

 

이상은 잠시 뒤에 다시 이야기하고 여행기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30년대는 다들 알다시피 일제 강점기이다. 그나마 1920년대는 소위 일제의 문화통치라는 민족분열정책 시기(1919∼1931)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문으로 이런 제한적인 글이나마 잡지와 신문 등에 실렸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 6명 중에는 독립운동가도 있고 친일파도 있다. 희한한 게 독립운동가인 허헌의 기행문을 읽어보면 에둘러서 아주 참으면서 전체 기행문 중 몇 줄만 썼어도 국권이 피탈된 수모와 울분, 민감한 정치 얘기를 할 수 없는 아쉬움 등이 행간에 많이 묻어나는 반면, 친일파인 노정일의 기행문에는 그 옛날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여기 저기 대학에서 공부하는 호사를 누렸음에도 순 자기 얘기 뿐이다. 미국 부인의 집에서 스쿨보이로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힘들었단 얘기, 장학금 탄 이야기, 미국에 대한 찬사 등으로 고국에 대한 안타까움은 전혀 없다. 분량을 다 읽자 화가 날 지경이었다. 별난 인간이 친일파가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지극히 평범한 이기주의자가 친일파가 되는 것이다. 자기 공부, 자기 고생, 자기에게 잘해준 사람 등 온통 관심이 자기뿐인 사람들이 어떻게 일제시대에 친일을 안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이역만리 타국에 가서 멋진 구경을 하면 뭐할 것이며 거창한 공부를 하면 무슨 쓸모가 있을까? 결국 공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배운 것을 남을 위해 이롭게 쓸 수 있느냐는 고민이 필요하다. 똑같이 미국에 가고 세계 여행을 해도 허헌, 노정일 이 두 사람의 향후 발자취는 굉장히 다르다. 노정일의 여행은 마치 요즘 사람들 여행 같다.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대학 학위를 따고 간간히 기차여행을 하는 등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다. 일제 강점기에 미국까지 가서 그 많은 교육을 받고 돌아와 기껏 한 게 친일. 차라리 못 배우고 무식해서 먹고살기 위해 친일을 했다면 모를까 유학파 지식인의 친일은 더욱 한심하게 느껴진다.

돌아와서 다시 찐빵 속 단팥인 '이상의 도쿄행'을 아껴가며 읽었다. 독자들이 이 글만 곶감처럼 빼먹고 책 안 살까봐 가운데 콕 박아둔 거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난다. 이상은 1936년에 결혼하고 1937년에 폐결핵 악화로 죽었다. 원래 폐가 안 좋은 지병이 있었지만 1937년 사상범으로 옥살이를 한 게 결정타였을 것이다. 폐결핵 악화로 출감했다지만 감옥에서 병이 그냥 악화되었겠는가. 일제가 거의 죽을 때 다 되었으니 놔준 것일텐데 씁쓸한 마음으로 약력을 읽었다. 다른 사람들 중에는 거의 70페이지의 기행문도 있었는데 이상은 겨우 5페이지 남짓한 짧은 글이다. 그러나 시인 이상의 동경 여행기가 다른 이의 70페이지보다 훨씬 강렬함은 왜일까? 시인답게 이상의 글은 다른 이들과 결이 다르다. 어디가서 뭐하고 뭐 보고 같은 일정 나열식의 여행기가 아니고 또 할 말을 억지로 숨기느라 고민한 흔적도 없다. 함축적이고 자유분방하고 도쿄의 주요 거리에 대한 감상이 거의 전부이다. 일기에 가깝지만 요즘 읽어도 무척 세련되었다.

마지막 말은 낭만이란 것이 폭발한다. "이태백이 놀던 달아! 너도 차라리 십구 세기와 함께 운명하여 버렸었던들 작히나 좋았을까." 마치 탄식같기도 한 이 대사 한 줄에 SF소설의 아포칼립스 장르처럼 세계의 멸망, 대재앙을 바라는 마음이 여실히 느껴진다. 이상이 이런 심정으로 돌아본 도쿄의 거리는 거의 90년이 흐른 지금과도 별 차이가 없어서 놀랍다. 가솔린 냄새, 도쿄에 오고 나서 이튿날 지진, 자동차, 우유에 탄 커피, 후지산을 보고 싶다, 긴자, 택시, 기노쿠니야 서점, 지하철까지. 어떻게 이상이 본 동경과 내가 가 본 도쿄가 이리도 똑같을까? 나는 드라마 '시그널'처럼 이상과 마치 동시대에 살고 있는 심정을 느끼며 그 아까운 달랑 6페이지를 넘겨버렸지만 그동안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귀한 글이었기에 그만한 가치를 느낀다.

편집상 아쉬운 부분은 이상은 곶감이니까 가운데 박았다고 해도 글자 폰트가 너무 작고 상대적으로 여백은 광활하다. 책 판형이 작아도 폰트를 좀 더 키워주면 주석도 없는 쓸데없는 여백도 줄이고 40대 이상의 독자들도 읽기 편할 텐데 갖고 있는 소설 등과 비교해봐도 글자가 다소 작아서 초반에는 눈이 불편했다. 책 표지는 1916년 김용조 작가의 해경이라는 작품이다. 근대 서양화가의 풍경화인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화가라 놀랐고 또 멋지다. 확 망해버렸으면 싶은 그 시대의 세계 기행문과 어울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표지이다. 그저 철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하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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