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된 의사 이야기 - 정신과 의사 이시형의 마음을 씻는 치유의 글과 그림!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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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 박사님이 유명한 분인 줄은 알았지만 이번 책이 100번째라고 한다. 책을 이렇게나 많이 내셨을 줄이야... 막상 '이번 농부가 된 의사 이야기'라는 문인화+에세이를 읽어보니 책을 많이 낸 분은 오히려 힘을 빼고 쓰시는 구나 싶었다. 여백이 넘치는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글은 흙을 닮았고 다소 간략한 그림과 그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알기 어려운데 곁들인 글이 짧게라도 설명 역할을 해줘서 이해하기가 쉬웠다. 문인화라는 것이 전문화가가 아니라 문인들이 그리는 그림이라 아마추어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문외한의 눈으로 봐도 박사님의 그림이 대가들처럼 작품적으로 잘 그린 것 같지는 않지만 그 풍류와 멋만은 수준급이다. 책의 앞편은 농부가 된 의사 이야기로 주로 산골에서 살면서 겪은 소회, 과거에 대한 회상, 인생 이야기가 담겼고 뒷편은 사계-봄, 여름, 가을, 겨울을 주제로 글과 그림을 실었다.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진지한 인생 이야기, 산골살이, 계절이 지나가는 것에 대한 감상이 나오지만 '온동네 이야기 다 알고 있는 놈 믿지 마라'처럼 위트와 해학이 넘치는 글도 있어서 무슨 명언처럼 붓글씨로 쓴 이 말에 빵 터진다. 마치 박사님 스스로가 모 프로그램처럼 자연인이 되어서 깊은 산 속에서 소박하게 사시는 것 같고 그 마음의 여유가 고스란히 책에서도 전해진다.

 

 

 '농부가 된 의사 이야기'라는 책 제목은 애초에 저자가 연 문인화 전시회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문인화가 갖는 특징이 풍부한 여백인지라 책 편집에서도 그 여백의 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래 '남산에 올라 비에 젖은 서울을 내려다보니'를 봐도 알 수 있지만 글과 그림이 균형이 잘 잡혀 있고 비오는 날, 저자로 보이는 모자를 쓴 사람이 저 꼭대기 남산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고즈넉한 풍경이 아름답게 실렸다. 많은 선을 쓰지 않아도, 그저 먹 한가지 단색으로 그려도 그림을 감상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게다가 높은 산에서 수많은 빌딩을 보며 저자가 젊은 시절 느꼈던 '나는 내 한 몸 누일 방 한 칸이 없어 애가 타는데, 저들은 어떻게 저 높은 빌딩을 지을 수 있을까?'하는 장면에서는 저런 생각을 한 사람이 나말고도 많겠구나 싶어서 울컥했다. 나도 저렇게 똑같이 산아래 끝도 없이 펼쳐진 집들을 보며 저렇게 많은 집이 있는데 왜 우리집 한 칸이 없을까 우울해했던 적이 있었다.

 

이 책은 언제 보아도 좋지만 굳이 계절과 시간을 꼽으라면 겨울밤이 딱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 차 한 잔 마시면서 한 장 한 장 펼쳐보면 은근한 재미가 있다. 김홍도 전시회에서 본 신선과 닮은 풍류를 여기서도 간간히 만날 수 있다. '겨울밤이 깊어야 깊은 차 맛이 제대로 납니다'를 보면 아랫목에 앉아 생각에 잠긴 채 그윽한 차 한 잔 마시는 사람 그림과 그에 대한 글이 함께 실려있다. 차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겨울이어야 하고, 온 세상이 조용한 밤이어야 한다는데 이 책을 읽는데도 겨울밤, 그만한 때는 또 없는 것 같다. 힐링이라는 게 굳이 장소가 중요할까? 이렇게 책 한 권 마주하고 차 마시면 힐링이고 나는 자연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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