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가의 철학 - 휴대전화 컬렉터가 세계 유일의 폰박물관을 만들기까지
이병철 지음 / 천년의상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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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 온통 핸드폰과 전화 이야기이다. 책을 받자 두께에 놀라고 저자의 집요함, 끈기, 열정에 놀랐다. 사실 나는 책 표지의 카피대로 '뭘 그까짓 것을 모으나'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구형폰을 천원에 팔아먹기도 했거니와 자고 일어나면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핸드폰에 무슨 수집의 가치가 있을까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100페이지, 200페이지를 읽어가며 점점 바뀌었다. 저자가 수집한 옛날 전화기 사진을 보니 참 신기했고 못 보던 것이었다. 나같이 전화의 역사에 문외한인 사람도 재밌게 볼 정도의 엄청난 컬렉션이다. 시간이 흐르자 옛날에 나온 가치있는 폰들은 더이상 구할 수도 없고 그 당시에는 이게 미래에 기념비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 될지 안 될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오랜 세월 갖은 애를 써서 모은 유선전화, 휴대전화, 각종 전화 관련 기계를 나라에 기증했다. 수집가의 안목으로 선별한 물건을 후세에 전하므로써 우수한 문화유산을 남겨야한다는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용단이다. 누가 그 오래된 휴대전화 한 대에 몇 백만원씩 주고 사고, 또 날밤을 새가면서 몇 년씩 이베이를 찾아헤맬까 싶고 그렇게 애써서 모은 엄청난 갯수의 물건이라면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지 나라에 선뜻 기증할 사람은 거의 없을 듯 싶다. 하지만 우리 산업 문화 유산 중 거의 절반은 이미 사라져서 없다니 이런 컬렉터 분들이 없다면 후대에는 나중에 중요한 물건임을 알았다고 해도 상당수는 벌써 없어진 후겠구나 싶다. 

저자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일단 수집에 일가견이 있다. 그의 관심사는 나비, 탐험사, 우리말 문법 등으로 바뀌다가 휴대전화에 이르렀다. 책을 보면 깜짝 놀랄 정도다. 얼마나 개인이 많이 모았으면 세계 유일의 폰 박물관을 냈겠나? 우리나라 핸드폰도 내수용만이 아니라 수출용까지, 각종 카달로그와 자료도 같이 수집해서 모았고 휴대전화 외에도 유선전화, 교환기, 삐삐까지 전화라는 큰 카테고리에 속하는 물건은 가리지 않고 다 모았다.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많이 있었는데 몇 가지 소개하자면 미국 경매시장에서 찾은 100kg가 넘는 교환기를 시애틀에 사는 저자의 누이부부를 동원하여 판매자 집 지하까지 찾아가서 그 무거운 것을 들고 계단을 오르고, 픽업트럭에 싣고, 공항가서 부쳐온 이야기도 놀랍고 삼성전자 휴대전화 SCH-800 기판에 새겨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찍은 사진을 보고도 깜짝 놀랐다. 또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휴대폰 출고 당시의 IMF를 이겨내자는 뜻이 아니라 기술의 삼성 그 밑바탕이 된 엔지니어들의 땀과 노력을 나타낸 말이라는 것, 스타택보다 더 잘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실현했다는 뜻이라니 것도 저자의 해석을 읽고나서야 알았다. 저자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해석하는 과정도 단순하지 않았는데 책을 읽어보면 이 분의 끈기와 열정이 너무나 집요해서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제로부터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전재산을 털어서 도자기, 화첩, 고서화를 수집했듯이 저자는 그 열정을 휴대전화에 쏟아서 기념비적인 유물이 될만한 물건은 각종 방법과 인맥을 총동원하여 모았다.

 

또한 저자의 전화에 관한 지식도 상당해서 이동전화의 역사는 과학기술의 발달사는 물론 핸드폰의 변천사, 각국의 이동통신 기술 경쟁과 그 발달, 삼성이나 엘지는 물론 이제는 없어진 맥슨전자나 세원텔레콤, 큐리텔까지 40대 이상의 일반인이라면 대충 알만한 과거 브랜드의 흥망성쇠까지 다 꿰고 있었다. 삼성직원보다 삼성폰을 더 많이 알고 있고 모델도 더 다양하게 갖고 있는 분이다. 이런 분이 관장이 안 된다면 도대체 누가 폰박물관을 운영해야 하나 싶을 정도다. 나 역시도 책을 읽다보니 이미 세계적인 휴대폰 강자인 삼성전자가 왜 자사가 생산한 주요모델조차 보유를 안 하고 있나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가서 찾으면 없다. 그렇다고 다 모을 수도 없을 거 같다. 물건의 가치를 선별해서 알아보는 안목이 중요한 이유이다.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 문화 유산도 이렇게 수집해서 후대에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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