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안 죽어 - 오늘 하루도 기꺼이 버텨낸 나와 당신의 소생 기록
김시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10년을 근무한 현직의사가 쓴 에세이를 읽었다. 제목부터 시크한 "괜찮아, 안 죽어" 그렇지.. 사람 왠만해서 안 죽지 하면서 책장을 펼친다.

 

 

 

책을 읽기 전에는 뭔가 좌충우돌 응급실 상황이 펼쳐지려나 의학드라마 속 주인공의 독백과 같은 내용을 기대했는데 아뿔사, 이 의사 선생님은 응급실 생활을 접고 시골동네 의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저자 역시 너무나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 것 같다.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들이 보통 중한 상태는 아니지 않나. 아드레날린 터지던 응급실 생활과 5일장이 열리는 시골동네의 의원. 주인공도 노인으로 바뀐다. 왜 동네의원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책 중반부에 나온다. 그러나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의사선생이 시골 의원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여기도 병원인지라 대학병원 응급실처럼 급박하게 생사가 오가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생과 사는 스쳐지나간다. 매달 당뇨약, 혈압약 타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갑자기 안 오신다? 돌아가셨거나, 거동을 못 하게 된 사정이 생긴 것이다. 응급실보다 속도가 느릴 뿐 기어코 오고야 마는 죽음.

 

 

책 속에서 할머니 한 분이 팔다리 쑤시고 아프다고 하자, 주인공인 의사선생은 "괜찮아, 안 죽어요." 농담으로 대꾸한다. 그러자 할머니는 "다 죽어, 사람은."하고 말씀하시는데 농담을 했던 의사는 숨이 턱 막히고야 만다. 선생은 팔다리 아프고 쑤시는게 당장 죽을 일이 아니라는 뜻으로 한 말이고, 할머니는 그걸로는 안 죽지만 결국 인간은 다 죽는다는 진리를 얘기한 것이다. 이제 이 의사선생에게 죽음은 응급실에서 목격하던 즉각적이고 충격적인 일이 아니라, 직접 목격하지 못하지만 결국 오고야마는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환자가 70~80대의 할매, 할배이니 안 그러겠는가. 환자들 귀가 어두우니 문진도 목청 터지게 질러야 겨우 끝나고, 한말 또 하고 또 하고, 병원문 9시에 여는데 8시 반이나 그 전부터 와서 기다리시고, 젊은 의사 홧병나게 하기 딱 좋은 환자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이 분들은 소위 츤데레 매력이 넘친다. 겉으로는 무뚝뚝한 모습을 해도 일부러 던져주고 가는 무거운 감 한봉지, 따뜻한 붕어빵, 떡 속에 그 정이 듬뿍 담겨있다. 겨우 2층인 병원 계단을 오르려고 사투를 벌이는 할매, 할배의 모습도 짠하고 그 고생을 하느니 딴 병원 가면 되는데 기어코 이 선생이 있는 곳에 오시는 게 고집스럽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있는 딴 병원 가시지 했던 건 의사선생 생각일 뿐이다. 책 속 에피소드 중에 자주 내원하던 학생환자가 의사선생에게 스승의 날 꽃을 주자 "내가 니 선생님도 아닌데 왜 나한테?"라고 이유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학생은 "선생님 맞아요, 내 의사 선생님."이라고 당당히 이유를 밝힌다. 그렇다, 병원에 자주 오는 사람에겐 마음속 주치의가 있다. 부자만 주치의가 있는 게 아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아무에게나 내 몸 맡기기 싫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왜 엘리베이터도 없는데 힘들게 계단을 올라오고, 왕복 3시간 거리를 고등학생이 일부러 찾아오겠는가. 저자인 의사선생은 그렇게 동네사람들의 주치의가 되어가는 과정을 직접 찍은 흑백사진과 곁들여서 담담히 담았다. 소박하고 촌스럽고, 그래서 더 정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그런 사람들과의 일상. 이 에세이는 요즘 tv에 나오는 세련된 의학 드라마가 아니라 옛날 시골 진료실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포근함이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