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같은 사건을 아이가 전혀 다르게 기억하고 있어서 놀랄 때가 많다. 내가 아이를 위해 큰맘 먹고 한일을 아이는 전혀 기억 못 하기도 하고, 반대로 나에겐 흔적조차 남지 않은 기억인데 아이에겐 뼈아픈 사건으로 각인되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 노릇이 어렵다. 내가 준다고 해서 아 이가 받는 게 아니고, 내가 주지 않은 걸 아이가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모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으면서도 부모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는 정작 알지 못한다. 빙산의 일각처럼겉으로 드러난 부모의 모습만을 바라볼 뿐, 숨겨진 빙하는 탐험하지도 못한 채 이별하고 만다. 그러나 부모의 삶을 알지 못하면 내 삶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즉 내 삶을 잘살고 싶다면 그 실마리를 부모의 삶으로부터 찾아야 한다. 한인간으로서 부모의 숨은 사정을 이해해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내 모습도 긍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고통의 세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슬픈 이야기. 그건 마흔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나를 은유하는 것 같았다. 지난 십 년간, 나는 어떤 대답을 구하기 위해 쉬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왜 이 세계는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지, 이렇게 나쁜 세계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오직 고통만이 남았을 때조차 왜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지……… 하지만 어떤 대답도 나는 들을 수 없었다.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드 는가를 탐구했다. 내 경험으로만 보자면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둘 다 안 느낄 수는 없겠지만, 과도해서 좋을게 없다. 아무리 후회한들 바꿀 수 없는 과거이고, 아무리 걱정한들 피해 갈 수 없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더 나쁜 점은 이 두가지가 지금, 여기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삶의 기쁨들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이다.
인생을 낙천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삶은 때로 엉망진창이라는 게 사실이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건전한 일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부정적인 감정이 더 깊어 지고 오래가며 감정이 장애를 일으키고 만다. 한결같은 긍정은일종의 회피일 뿐, 삶의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다.올바른 가치관과 기준을 확립한다면, 삶의 문제는 오히려 우리 에게 활력과 자극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