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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침묵보다는 불편한 외침을 - 신학자 칼 바르트와 1906-1968의 정치
프랑크 옐레 지음, 이용주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3월
평점 :
시원했다. 책을 받아보고는 산뜻하면서 어딘가 진중한 앞표지의 물결 또는 나뭇결 같은 무늬와 깔끔한 제목이 와 닿는다. 찬찬히 돌려본다. 뒤표지 노란색이 눈에 확 띈다. 글귀를 읽어본다. 시원했다. “그리스도인은 그 어떤 정부나 권력을 가진 다수 또는 소수, 단체 혹은 개인들이 다루기 편한 국가시민이 될 수가 없다”라는 문장은 가렵던 내 마음의 등을 긁어 준다. 나 혼자 “돌+아이”가 아닌가 싶던 날들에 대한 위로가 몰려온다.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힐 줄 알았다. 역시나 효자손이다. 시원시원한 문장들이 속속들이 등장한다. 이토록 얇은 책에서 이렇게 수많은 문장들을 만날 줄은 몰랐다. 물론 내가 과문한 탓에 칼 바르트란 이름만 들었지, 칼 바르트의 문장들을, 그의 삶을 읽은 것은 처음이기에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구호 같다고 할지 모를 바르트의 문장들이 지금 우리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또 다시 힘을 주고, 한 편으로는 채찍질 한다. 나치가 득세하고, 교회는 이에 적극 찬동하며, 고백교회는 사력을 다해 반대했던 2차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과 현재 우리나라와는 너무나도 닮았다. 권력으로 억압하고, 공포를 형성해서 소수의 피로 권력을 유지하고, 그 권력에 동조하여 기득권을 얻고, 지속하는 교회의 모습들, 그리고 그 지도자를 찬양하는 모습이 똑같다. 그 틈바구니 한 쪽에 우직하게 진리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도 매한가지이다.
나는 선거를 치르기 전에, 그리고 치른 직후와 4•16참사 2주기 사이에 책을 다 읽었다. 참말로 참말로 매우 적절한 시기에 나는 이 책을 읽은 듯하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오기 싫었던 강남으로 이사 와서 첫 선거인데, 전현희 후보가 당선되었다. 선거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그 소식을 확인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질렀다.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또 다른 눈물을 흘린다. 730일, 730번의 4•16. 밝힌 건 아무것도 없이 속절없이 벌써 2년의 시간이 흘러간다. 이 책에 저자가 초반부에, 마지막에 다시 인용하는 “시대적 사건에 대해 방관하면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공동체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아니다.” 명제가 이 땅의 교회에게 경종이 되기를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 목표는 선거에서의 승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주의적 인격을 도야하는 것이다.”라는 이 문장은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끝나지 않았다. 또 하나의 출발점에 섰다. 나의 칼 바르트 읽기도 출발점에 섰다. 호기심은 있지만, 딱딱한 조직신학자의 모습으로만 어설프게 알고 있는 바르트는 효자손으로, 청량음료로 다가왔다. 이런 착한 만남으로 시작했으니, 좋은 만남이 될 터이다. 누군가가 덧씌워준 딱딱한 조직신학자, 자유주의자, 공산당 등의 선입견들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책이다. 진리를 토대로 한 사랑의 힘을 믿었던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난다. 그 제자를 만나는 일이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예수의 제자들에게 꽤 유의미한 일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어떤 정부나 권력을 가진 다수 또는 소수, 단체 혹은 개인들이 다루기 편한 국가시민"이 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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