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죽음을 안전가옥 쇼-트 21
유재영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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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죽음을>은 주인공 설희가 집에서 운동을 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거실 한가운데 운동 기구를 가져다 놓은 설희는 단순히 건강을 생각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설희는 죽기 전에 꼭 이뤄야 할 '과업'이 있고 그 '다가올 날'을 위하여 강인한 체력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설희의 목표가 무엇이길래 집에서까지 운동에 매진하며 체력을 단련하고 있는 걸까? 의문을 가지며 책장을 넘기는데, 소설은 뜻밖에도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흐른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설희는 도서관에 강연을 하러 온 이수혁과 사랑에 빠진다. 평범한 연인처럼 사랑을 시작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과연 관계가 어떻게 바뀔까 두근두근했다. 역시나 이수혁의 의뭉스러운 점이 하나씩 드러나고, 작품은 전환점을 맞는다. 두 번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오은수가 등장하며 이 소설의 진가가 드러난다. 초반부는 빌드업이고 중후반부에 몰아치는데 처음부터 계속 복선이 깔리기 때문에 줄곧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남성 가해자로부터 폭력을 경험한 여성 피해자들의 복수와 연대의 이야기이다. 슬프게도 그들이 작중에서 경험하는 폭력의 형태는 새롭지 않다. 적어도 며칠에 한 번씩, 어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끔찍한 현실의 반영일 뿐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사법 제도와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는 범죄자와 본인이 피해자인 줄도 모르는 피해자. 특히 오은수 어머니의 과거가 안타까웠는데, 정말로, '고통을 자초하고 죽음을 불사하는 일이 어째서 사랑인가'?


너무나 당연하게도 폭력과 사랑은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다. 세상이 끝나는 순간까지 함께 할 수 없는 단어일 것이다. 그런데 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피해자들은 폭력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는 걸까. 무엇이 그들에게 왜곡된 믿음을 심어주었을까. 뚜렷하게 나뉘어진 가해자-피해자 구도를 교묘히 지우고 가해자 편에 힘을 실어주는 무수한 제2의 가해자들은 우리 도처에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법 체계는 물론이고 일상에서 지나가듯 가볍게 얹는 말 한마디조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배적이지만 그릇된 사회의 가치관이 어느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 이도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은 것과 별개로.. <당신에게 죽음을>을 읽는 동안에는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장르에 충실한 글이라 내내 뒤의 전개를 궁금해하며 흠뻑 빠져 읽었다.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만 작품 자체는 전혀 무겁지 않아 좋았다.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길이가 짧아 후루룩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특히 깔끔한 결말이 마음에 든다. 장르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더 이상 피해자라는 위치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인물들의 미래를 응원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설 #당신에게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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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 북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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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모두 흥미로웠고, 대상 작가 인터뷰가 실려 있어 작품 이해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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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 북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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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독서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딱 한 권의 책을 권한다면, 역시 그해 나온 문학상 수상 작품집이다. 호불호야 당연히 있겠지만 일단 문단에서 좋은 안목으로 고른 글들이니 질이 보장되어 있고 현재 우리 문학계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여러 작가의 작품이 수록돼 있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가를 발굴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은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아직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이번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에서는 시의성 있는 글들이 유독 많이 보였다. 코로나가 우리 일상에 정말 지대한 영향을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ㅎㅎ 시의성과 관련해 안보윤 작가의 자선작 「너머의 세계」 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아무래도 요새 교권 문제로 떠들썩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 담담하고 건조하게 서술되어 있지만 수록된 글 중 가장 먹먹한 작품이었다. 신주희 작가의 「작은 방주들」 에서는 암호 화폐와 AI 기술이 주요한 소재로 사용되었다. 정말이지 생생하게 그려진 인물 '허니쿠키'와 더불어 글이 현실에 꼭 맞닿아 있는 느낌이 들어, 읽는 내내 여러 모로 씁쓸했다. 그래도 절망적인 끝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강보라 작가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은 화자의 복잡한 심리 상태가 굉장히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나열되는 상황 속에서 계속 변화하는 '나'의 마음이 무척이나 적나라하게 나타나 오히려 심리적 거리감이 생길 정도였다. 이렇게 미화 없이 속속들이 묘사된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건 다소 불편하면서도(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이기적인 민낯까지 가감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겠지?) 늘 재밌는 것 같다ㅎㅎ 김인숙 작가의 「자작나무 숲」 은 색다른 소재를 색다른 전개로 풀어내고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결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 읽고 난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곱씹게 만드는 독특한 소설이었다.


지혜 작가의 「북명 너머에서」 는 작품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매우 묘하면서도 강렬했다. 매력적이고 미스터리한 인물 '조옥'과 띄엄띄엄 상기되는 이무기의 전설이 얽혀, 꼭 옛날 홍콩 영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알 듯 말 듯 어렴풋한 이야기라 감상을 정리하기 어렵지만 글 자체는 술술 읽혔다. 김병운 작가의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는 퀴어 소재의 글로 멋진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이랑 문장이 진짜.. 취향이었다ㅋㅋㅋ 아무리 고전적이어도 늘 이런 연출에 혹하고 만다...





수록된 글들 모두 좋았지만, 확실히 대상작인 「애도의 방식」 이 정말 정말 좋았다. 압도적으로.. 문장이 마음에 든 것 같다. 특히 미도파라는 공간을 묘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는데, 정감 가는 공간을 작품 속에서 그려내어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좋았다. 읽는 동안 뭐랄까.. 따뜻함과 서늘함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래서 신기했다. 즐겁게 읽은 것과 별개로 다 읽은 다음에는 의문이 많이 남았다. '나'와 승규 엄마가 서로에게 보이는 묘한 태도라든지, 왜 제목에 '애도'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지 같은 것들... 여전히 생각해 볼 거리로 남은 궁금증도 있지만, 어느 정도 해소된 부분도 있다. 함께 수록된 작품론과 작가 인터뷰 덕분이다 ㅎㅎ




작품론과 심사평이 어렵지 않게 쓰여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다른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는 보지 못했던 당선 작가 인터뷰가 실려 있어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글을 쓴 작가가 직접 대답한 내용이다보니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알쏭달쏭한 부분이 조금쯤 또렷해졌다. 그리고 인터뷰에 언급된 안보윤 작가의 다른 글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차근차근 다른 작품들에 손을 대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문학 #이효석문학상수상작품집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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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 리노블 1
마태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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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잠식하여 숨통을 조이는 미스터리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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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 리노블 1
마태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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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나눠 읽으려고 했는데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그만큼 흡입력 있는 소설이었다. 읽기 전부터 '습기'라는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책을 읽는 도중에는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고 마지막 장까지 다 읽은 뒤에야 비로소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이야기에 참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문에서 '습기'라는 단어는 물론이고 관련된 장면조차 나오지 않는데 작가가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는지 완벽히 이해된다. <습기>는 제목처럼 흔적 없이 서서히 스며들어 축축한 자국을 남기는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습기>는 외동아들을 둔 부부가 신도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이사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부부 중 아내인 미연이 주인공으로, 이야기는 미연의 시각에서 전개된다. 미연은 새로운 보금자리에 잔뜩 들떠있다. 이사 당일 기이한 경비원과 여자를 만나 꺼림칙한 기분에 휩싸이지만, 남편인 정우의 다독임에 애써 불안감을 잠재운다. 다행히 미연과 정우의 어린 아들 지호도 전학 온 학교에 금세 적응한다. 그러다 미연은 이사 온 동네가 아동 연쇄 실종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곳임을 알게 되고 불안해한다. 설상가상으로 지호가 새로 사귄 윗집 친구 영희와 영희엄마와 얽히게 되며, 이야기는 점입가경이 된다.




읽는 내내 하이퍼리얼리즘에 놀랐다.. 정말로 눈앞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사나 장면이 굉장히 현실감 있고, 무엇보다 주인공인 미연의 심리 묘사가 무척 자세하고 설득력 있다. 그래서 미연에게 완벽히 몰입하여 글을 읽었던 것 같다. 미연에게 일어나는 불쾌하고 꺼림칙한 일들의 윤곽은 생각보다 빠르게 잡힌다. 그런데 마지막 장까지 사건이 쉴 새 없이 빵빵 터져 계속해서 집중해 읽을 수 있었다. 스토리에 쉬어가는 부분이 없었다.


꼭 영화의 쿠키 영상 같은 결말을 읽고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완성도 있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마지막 장 바로 전 페이지를 읽으면서 살짝 아쉬움이 있었는데 마지막 장을 읽고 사라졌다ㅋㅋ 제목다운 결말이라 딱 마음에 든다. 작가의 말까지 읽고 나면 작품 내에서 불분명하게 처리된 부분들과 제목의 의미에 대해 아, 하는 깨달음이 오는데 그 쾌감이 좋았다. 동시에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더 곱씹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허투루 쓰인 대사나 지문이 하나도 없다.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을 수 있는 몰입감 좋은 장르 소설을 찾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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