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양형 이유 - 책망과 옹호, 유죄와 무죄 사이에 서 있는 한 판사의 기록
박주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그것이 알고 싶다'를 매주 챙겨보다 보면 항상 마지막까지 혼란스러움에 갇힌다. 분명 A의 입장을 들었을 때는 그리고 정황상 분명 B가 범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막상 B의 입장을 들으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B가 여전히 범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B가 그럴 수 밖에 없었을 사정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과한 이해심을 가지게 될 때도 있다. 하물며 생생한 변명의 장인 재판은 오죽할까. 피해자, 피고인 가릴 것 없이 서로의 가장 불쌍한 처지를 내세우고 상대의 잘못을 과하게 표현하는 등 사연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판사는 그 가운데 법에 의거해 가장 정의로운 판단에 가까운 판결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정의로운 판단을 가리는 명확한 잣대는 없다. 비슷한 듯 보이지만 조금씩은 다른 수많은 사건을 법전에 기록된 몇가지 조항만으로 유사하게 잘잘못의 정도를 구분 짓는 것은 오히려 정의롭지 않아 보인다. 또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촉법소년 및 미성년자 범죄와 관련해서도 무조건 강하게 처벌하는 것만이 정의롭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불우한 가정과 그것을 돌보지 못한 사회가 아이들을 불안정한 삶으로 이끈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아이들만의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사회와 가정의 책임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사연을 모두 고려해주기에는 판사마다 그 사연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고 따라서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아무리 안타까운 사연이라도 법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판사는 잔인한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주영 판사와 같이 재판장에 와 하소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떻게 하면 그들 개개인의 삶과 더 나아가 사회를 위해 나은 판결을 내릴 수 있을 지 고뇌하는 자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따뜻함을 느꼈다.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세상을 보니 온 세상이 울고 있었다. - P162

어떤 법관은 법적 안정성이 정의의 영역이라면 구체적 타당성은 사랑의 영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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