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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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라는 한계로 겪는 좌절과 불행이라 여겨지는 순간들을 냉소와 다정함으로 버텨내며 결국 자기만의 단단한 '축제'를 만들어가는 저자의 태도가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극복‘이라는 말처럼 오만한 단어가 있을까? 장애를 극복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불합리한 사회를 극복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영원히 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할 거라고. 나는 단지 자주 내 장애를 잊고 산다. 잊어야지만 살수가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체념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 P38

장애는 이런 것이다.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와 등짝을 걷어차버린다. - P39

글에 남기지 않았지만 더 많은 거절과 더 많은 모욕과 조롱이 우리를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나는 다음 여행을 준비한다. 행복은 바라는 대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노력과 의지로 맺는 열매 같은 것이라는 걸 나는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P52

외조부가 없는 고향은 낯선 언어로 듣는 익숙한 노래처럼 어색하고 괴기스러웠다. 외조부가 지키지 않는 고향은 더는 본향이라 할 수 없었다. 순간 깨달았다. 인간의 귀소본능이란 태어난 장소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어하는 그리움이라는 것을. - P60

진정한 복수는 모욕을 주는 것도 용서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상대를 동정하는 것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 P77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방식은 내 상처를 드러내 보이며 함께 아파하는 것이었다. - P100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처지가 비관스러워지자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엄마도 그중 하나였다. - P105

가을밤이면 나는 그날 밤을 떠올린다. 창으로 쏟아져드는 가을바람의 냄새를, 엄마와의 늦은 밤 드라이브를. 그것은 오래된 영화처럼 멈춰선 시간의 그리움이다. - P115

부모가 평생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면 얼마나 숨이 막힐까? 나는 엄마한테 미안해서 울었다. - P131

어느 날 수미씨가 내게 언제 가장 행복한지를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불행을 잊고 있을 때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수미씨는 장애가 불행의 원인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눈이 먼 게 불행한 게 아니라 이 상태로 영원히 살아가야 한다는 게 진짜 불행이라고 말했다.
곧 바이러스는 진정될 것이다. 세상은 예전의 일상으로차츰 복귀해나갈 거다. 내 기준으로 펜데믹은 진짜 불행이 아니다. 그것에는 끝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층에서 결국 싸움이 났다. 참다못한 아래층 사람이 뛰어올라온 모양이었다. 겨우 몇 달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한다고 답답해 미치겠다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평생을 그리 살기도 한다고. 방구석에서 자유를 상상하며 자기위로 안에 빠져 평생을 사는 이들이 있다고. - P159

10분 거리를 3시간에 걸쳐 가야 하는 것, 그것이 앞 못 보는 장애인의 삶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빨리 체념한다. 그것이야말로 불행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빠른 길이다. - P185

나는 내가 겪은 고통을, 희생을, 인내를, 모두가 겪길 바라는 졸렬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 P193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없는 일이 돼버릴 때, 나는 장애를 가장 실감한다. - P201

나는 그동안 실패가 두려워 장애를 핑계삼아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해왔다. 잃어버린 것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다르게 살려 노력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기 위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낸다. 탱고 수업은 내게 첫 도전의 시작이었고 내 가슴에 열정을 심어주었다. - P203

"장애아를 낳으면 죄인이 돼어야 하나요? 그게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사실인가요? 그럼 저는요, 저는 죄의 근원인가요?" - P207

친구들은 원하는 고등학교로 진학할 것이다. 흥분과 기대, 아쉬움이 교차하는 현장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새 학기에 나는 장애인학교로 입학하기로 결정되었다. 어제까지 같은 방향을 보고 달렸던 친구들 틈에서 나만 빠져나와 이제까지 상상해본 적 없는 길을 홀로 걸어가야 했다. 소외감과 외로움이 옷깃 안을 파고들어왔다. 뼛속까지 시리게 추웠다. - P229

나의 새로운 장래희망은 한 떨기의 꽃이다. 비극을 양분으로 가장 단단한 뿌리를 뻗고, 비바람에도 결코 휘어지지 않는 단단한 줄기를 하늘로 향해야지.그리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송이가 되어 기뻐하는 이의 품에, 슬퍼하는 이의 가슴에 안겨 함께 흔들려야지.
그 혹은 그녀가 내 향기를 맡고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내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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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리커버, 양장)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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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쉽게 읽히는 단편 속에 생각할 사회 문제가 잘 담겨 있었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던 주인공. 그러나 결국 그 문제가 인정이 되고 내면의 죄책감이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야기.

도의적으로 문제에 가까운 행동을 한 감독을 좋아하다 감독이 스스로 그 사건을 시인하고 마음이 불편해진 주인공의 허무가 그 모습을 잘 보여준다. 또한 학대에 가깝게 맹수의 모습을 잃어버린 호랑이를 신혼여행의 체험 일부로 소비하며 겪는 불편한 모럴까지.


스무드


한국계 미국인 3세 듀이가 광화문 태극기 집회의 노인들(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로 여겨지지 않는) 속에서 난생처음 강렬한 환대와 소속감을 느끼는 모습이 매우 아이러니하다. 오히려 매끄럽게 가공된 작품 스무드 같은 아파트에서 그는 불편함을 느낀다. 역사적 맥락이 소거된 채로 가공된 이미지로만 서로를 소비하려는 현대사회를 빗대는 듯 하였다. 


혼모노

젊은 시절 누렸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옆집 신애기를 질투하던 신력이 떠나간 박수무당. 진짜를 증명해야하는 사회적 시선에 갇혀있다 결국 놓여나 가벼워지는 이야기. (하지만 난 그 집착이 결국 광기가 된 것처럼 보였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이 떠오르던 이야기. 악이 권력이 된 사회 속에서, 그것에 편승하지 않기란 더 어려운 것이 아닐까.


우호적 감정

타인과 맺는 관계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이야기.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행동을 오해 없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잉태기

가족의 아이에 대한 일그러진 욕망도 사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자식의 성공을 위해 교육에 목을 매고 사회적으로 성공이라 일컬어지는 가치에만 매달리는 부모들...분명 자식을 가장 사랑하는 건 그들일텐데. 사랑이지만 잘못된 사랑이다.


메탈

어린 시절의 순수한 꿈과 우정이 현실의 무게 앞에 퇴색해 가며, 결국 우리는 꿈의 일부를 포기하는 어른이 되어간다. 하지만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은 관계 속에서도, 역설적으로 그 시절의 추억을 버팀목 삼아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 결국 인생아닐까.

그런데 왜 생각할수록 더 ...... 허무해질까. ...중략... 왜 지독히 헛헛한가. - P58

떨쳐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중략... 이미 일어난 일은 없던 일이 될 수 없으니까. - P65

구 안쪽에 뭔가 숨겨진 것 같기도 해요. - P71

아버지는 내게 한국 얘기를 한번도 해준 적이 없어요.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도 잘 몰라요. 그래서 아버지와 나 사이에 갈등이 없는 거겠죠. 서로를 전혀 모르니까요. 알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 P104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복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가 가짜가 된 듯. - P153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 P201

직원들이 진을 화두로 삼을 때마다 나는 말을 아꼈다. 사람을 판단하기에 넉달은 짧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진이 안쓰러워서였다. - P206

알렉스,너무 애쓰지 마요. 애쓰면 더 멀어져. - P240

의지할 것이라곤 희미한 전조등과 친구들의 웃음뿐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달리면 우림은 더 나아질 것도 망할 것도 없는 현실에 가능성이 부여되는 것만 같았다. 녹슬지도 썩지도 않는 꿈을 영원히 꿀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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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우리는 가족이었을까?
프란츠 카프카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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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과 노동이라는 효용가치로 인간의 존엄이 저울질되는 비참한 실존... 바퀴벌레가 되어 외면 받는 그레고르의 비극은, 오늘날 장애인과 은둔형 외톨이 등 소외계층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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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 오래된미래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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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날을 맞아 다시 꺼내본 시집. 아무리 세대가 지나도 누구에게나 위로가 될 것이다. 마음의 평안이 필요할 때마다 두고두고 꺼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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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5만 부 기념 전면 개정판) -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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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의 추천을 보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미술관 경비원의 에세이라 생각하고 읽어나갔다. 다 읽고 나니 패트릭 브링리와 함께 애도기간을 겪어낸 느낌이었다. 그는 형을 읽고 무기력함 속에서 메트로폴리탄 경비원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형을 잃기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작품과 세상을 감상하였으며, 가족을 이루고서부터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되었다. 슬픔이 과장되게 표현되어있진 않았지만 그의 상실이 가깝게 느껴졌고 그가 경비원을 그만두고 여행가이드를 지원하였을 때는 진심으로 응원하였다. 앞으로도 그가 겪어나갈 삶을 응원한다.


책을 읽으며 그와 함께 작품들을 감상해나가니 나도 직접 메트로폴리탄을 방문하고 싶어졌다.

그 그림의 아름다움은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물감과도 같이 과묵하고 직접적이며 물질적이어서 생각으로 번역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나의 반응은 새 한 마리가 가슴속에서 퍼덕이듯 내 안에 갇혀 있었다. - P36

그런데 이제 내가 할 일은 오직 고개를 들고 있는 것뿐이다. 망을 보는 것.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 - P39

포착된 그 모든 순간과 수많은 기억은 낡은 사진처럼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릴 듯 위태롭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더한 총합은 그보다 훨씬 큰 것, 바로 톰에 관한 기억을 만들어내서 눈을 감으면 언제라도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된다. 그 기억은 티션의 초상화와 매우 비슷하다. 밝고,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고, 퇴색하지 않는 이미지 말이다. - P53

거리는.. 중략..누군가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세상이 멈추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로 넘쳐났다. - P70

이런 테마의 장면을 ‘경배‘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 아름다운 단어를 마음에 품었다. ..중략..뒤이어 강렬하고 명백하지만 일상생활의 소란 속에서는 약하게만 느껴지는 무엇인가가 우리 안으로 침투한다. 경배하는 대상에 대한 설명은 필요 없다. 맥락을 더하는 것은 이 수수께끼 같지 않은 수수께끼의 명백한 의미를 흐릴 뿐이다. - P72

니콜로 디 피에트로 제라니의 통곡 혹은 피에타.그 그림이 어머니 안의 사랑을 일깨워 위안과 고통 둘 다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 P73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 P75

말로 형용하기에는 너무나 미묘하고 너무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들이다. 이런 순간에 얼마나 많은 감각적 경험이 언어의 틈 사이로 빠져나가버리는지 깨닫는다. - P117

하루가 끝난 후 86번가에서 지하철을 탄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 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한다는 사실을. - P159

이 정보를 조셉에게 전한 나는 아메리카 전시관에 관해 너무 뻔해서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곳에 전시된 아름다운 물건들은 특정 버전의 미국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지키는 미국인 경비원들은 또 다른 이야기를 상징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 P183

"정말 괜찮아요, 살아 있고, 가족이 있고, 양심을 잃지 않았으니까." ..중략.. 이야기를 마친 조셉은 일과를 끝내고 그레이트 홀에 모인 동료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이 푸른색 근무복 아래에는 정말 갖가지 사연이 있을 거에요." - P185

소위 비숙련직의 큰 장점은 엄청나게 다양한 기술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화이트칼라 직종은 비슷한 교육을 받고 관심도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료가 어느 정도 비슷한 재능과 정신세계를 지니고 있다. 경비원 세계에는 이런 문제가 없다. - P189

"있잖아 정말 나쁘지 않은 직업이야. 발은 좀 아프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잖아." - P193

비탄은 다른 무엇보다 그 리듬을 상실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여기서 일하면서 나는 메트라는 웅장한 대성당과 내 구멍을 하나로 융합시켜 일상의 리듬과는 거리가 먼 곳에 머물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일상의 리듬은 다시 찾아왔고 그것은 꽤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생겨나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지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내가 삶에서 마주할 커다란 도전은 대부분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 P197

‘종교 religion‘는 ‘ligio‘라는 어근에서 비롯되었다. 기본형일 때 ligio는 연결 혹은 어떠한 공동체가 인식하는 근본적 진실에 다시 집중하고 교감함을 뜻한다. 나는 특정한 종교적 전통을 섬기지는 않지만 종종 어딘가에 소속되어 사소한 걱정 대신 더 근본적인 것과 교감할 필요를 으낀다. 독실한 숭배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찬미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미흐라브를 응시한다. - P220

나일강을 따라 수천 마일에 걸쳐 펼쳐진 땅에 존재했던 무한히 복잡했을 수천 년의 역사를 나는 고작 ‘이집트‘같은 작은 단어로 일컫는다. ..중략.. 더 많이 탐구할수록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테고, 그럴수록 내가 본 것이 얼마나 적은지 깨닫게 될 것이다. 세상은 서로 섞이기를 거부하는 세밀한 부분으로 가득한 것이리라. - P223

그렇다면 나는 왜 내게 영혼을 준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바로 그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는 슬픔의 원천을 하늘이 내 안에 만들었는데도. - P224

우리 네 사람의 삶이 정확히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확인을 없다. 지금 바로 이 모습, 이것이 삶이라는 사실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음에도.
밤이 깊어가고 취기가 오르면서 우리는 덜 어리석고, 더 진지해지며, 덜 조심스럽고, 더 연약해진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우리끼리는 훌륭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략..프라이버시라고는 없는 이 왁자지껄한 바에서 우리는 진짜 인생을 논하고 있다. - P237

달리 말하면 나는 이제 베테랑이 됐고 이 일이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나에게 맞는 리듬에 따라 움직이며 그것을 유지하는 데는 큰 노력이 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날에 내가 맡은 일은 그저...여느 직장의 일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이 상태가 나를 그리움과 후회로 가득 채운다. - P257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를 더 많이 생각한다. - P262

자연은 단순함보다 대담하고 강한 것을 선호한다. 그런 것들은 아름답긴 하지만 항상 예술적이거나 명료하지는 않다. - P266

매트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첫 몇 달을 돌이켜 보면 내가 한 때 날이면 날마다 말없이 뭔가를 지켜보기만 하는 상태를 그토록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아마 그것은 커다란 슬픔이 지닌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날마다 수많은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하는 요즘 같아서는 그렇게 뭔가에 집중해서 사는 삶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이제는 더 이상 처음 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했을 떄처럼 단순한 목표만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살아나가야 할 삶이 있다. - P275

자기 자신이 무언가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궁리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보는 데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사실 평생 처음으로 나도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엄청나게 무질서하고 즉흥적인 과정을 밟으면서 두 명의 작은 인간과 그들이 살아갔으면 하는 작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코 완벽하지도, 완성할 수도 없는 프로젝트겠지만 말이다. - P281

프사 안젤리코 <깁자겡 못박힌 예수>
‘끔찍한 순교‘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창문을 열고, 별생각 없이 그 옆을 걸어간다.‘ 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부분이 혼란스러운 일상생활을 제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 P326

메트에 오는 관람객들에게 해줄 조언 중.
당신은 지금 세상의 축소판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중략..
먼저 그 광대함 속에서 길을 잃어보십시오. 인색하고 못난 생각은 문밖에 두고 아름다움을 모아둔 저장고 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작고 하찮은 먼지 조각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즐기십시오. - P328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 일깨워준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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