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의료인류학자와 나눈 말들
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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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이 항상 100% 맞는 것을 아니지만 과학을 전공한 나에게는 문화인류학자가 본인의 사유에 갇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병에 걸린 불안함이 무엇인지 아는 나로써는 미야노 마키코의 편지가 매우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으나 이소노 마호의 답신이 그것을 방해하는 느낌이었다. 둘 다 어느정도 철학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달까. 전반적으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내게는 조금 아쉬운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하게 그렇지만 결국은 필연으로 만난 그들이 열심히 이어나간 선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가서 닿아있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점점 더 미완결인 것들을 끌어안으며 나아가는 게 바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우연한 병을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또 다른 자신이 되었을 가능성)를 끄집어냅니다.


-'지금과 다를 수 있었다'는 가능성 따위가 아니라 무無속으로 제가 빨려들 것만 같습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자신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점임을 인정하기란 괴롭습니다. 아무리 내가 그린 선이 남을 것이라고 해도요.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지키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바랄 때 나타나는 것이 바로 흐르며 사라지는 시간에 대한 초조함이고, 어떻게는 흘러가는 시간을 내 것으로 관리하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스스로는 어쩔 수 없는 우연에 휘말리면서(무력) 그 우연에 대응하는 와중에 자신이란 무엇인지 발견해내고 우연 속을 살아가는 것(초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역학자가 만든 수식에 대입하여 계산한 ‘일어날지도 모를‘확률은 한 개인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서 미래의 가능성을 봉쇄해버립니다.

-제가 ‘언제 죽어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이라는 말에서 기만을 느끼는 까닭은 죽음이라는 도착지가 확실하다고 해도 그 도착지만 보고 살아간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인생의 가능성을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미래를 전체적으로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잊게 됩니다.

-그럼에도 의사가 지닌 정보 역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만, 병에 걸리는 건 저 혼자여도 그 영향은 저에게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변화가 다시 저를 혼란스럽게 하지요. 병에 걸린 와중에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건 그런 변화 속에서 이뤄집니다.

-전문 영역을 신뢰하지 못한 결과 민속 영역에 틀어박힌 환자들은 가족과 대립하며 민간 영역에서도 분단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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