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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어떻게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 ㅣ 너머학교 고전교실 9
권용선 지음, 김고은 그림, 루쉰 원작 / 너머학교 / 2015년 5월
평점 :
아Q는 누구일까?
아Q는 대단한 정신승리법을 가지고 있다. 루쉰은 정신승리법이 잠깐의 위안을 줄 수 있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우리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데 기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의 능력은 과소평가하고 흠을 꼬집는 남에게 엄격한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물론 그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당시 아Q의 신분으로는 현실을 자각하고 노력한다는 것으로 쉽게 현실을 바꾸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바꾸려는 태도가 모여 큰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가짐의 시작이 중요하긴 하지만 내게는 아Q가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위안을 삼는 방법을 터득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가 자기 자신과 닮은 꼴인 소D에게 유난히 더 화가 나는 모습에 특히 공감하면서 보았다. 마치 내가 저질렀던 실수를 여동생이 하고 있을 때 더 화가 났던 모습이랄까.
아Q는 또한 전형적인 강약약걍의 노예근성을 가진 자였다. 노예근성을 지닌 사람이 패거리를 이루면 자신의 문제를 깨닫기 더욱 힘들어진다. 난 스스로 강강약약의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사회생활을 할 수록 현실과 타협해 어쩔 수 없이 강자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나의 모습을 보곤 한다. 루쉰이 일본 의대생 유학시절 러시아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무참히 총살당하는 동족을 멍하니 구경하는 환등기 속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의 마음을 고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처럼 나 역시 강자에게 대응하기 위해 큰 결심을 할 마음가짐이 있을까? 일제시대였다고 가정해보면 이완용처럼 대놓고 친일을 할 마음은 없지만 무서워서 조용히 순응하며 살 것 같다. 나 역시 아Q인 것이다.
혁명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혁명이라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도 자본가나 권력가를 대변하는 후보를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이 지지하는 경우가 다수 있고 반대로 노동자나 농민, 혹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정당을 '빨갱이'라고 일컫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우리는 우리의 이해관계를 지배하는 권력과 일치시킬까. 우리는 권위있는 사람들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결국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쉽게 권위를 믿어버리는 것이다 루쉰이 기대했던 신해혁명이 실패한 이유도 '혁명'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민중들의 무기력감과 이익을 챙기기에 바빴던 기득권 세력의 막강함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역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더 나은 삶으로 바꾸고 싶다면 지금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Q는 아니었는지 돌아보고 깨닫는 것이 삶을 바꾸기 위한 '혁명'의 시작일 것이다. 곧 제 20대 대통령 선거가 돌아오고 최근에 코로나 사태로 사회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만큼 내 안의 아Q를 파악하고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