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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마구 드로잉 - munge의 스케치북 프로젝트
munge(박상희) 지음 / 예담 / 2014년 9월
평점 :
이 책은 사실 읽는 책이 아니라 '하는' 책이다. 책을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찢거나 낙서하고(이 책을 파괴하라) 색칠공부를 하고(비밀의 정원 컬러링북)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빈칸책) 마구마구 그림을 그리는(마구마구 드로잉) 시대가 된 것 같다. 취미를 '독서'라고 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림 그리는 것이나 악기 연주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유가 뭘까? 독서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림 그리기나 악기 연주는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은 이제 고귀한 예술의 영역을 벗어나서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여가 시간에 취미로 할 수 있는 것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자기치유'나 '힐링'의 도구로 여겨지기도 한다. 컬러링북으로 인기를 끈 '비밀의 정원'이 그런 현상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 그리기가 직업이 된 사례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이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꼭 배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즐겁게 즐기며 할 수 있는 것, 충분히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고 그렇게 인식되어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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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마구 드로잉은 '드로잉'이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말하지 않는다. 드로잉을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페이지와 피사체의 사진을 담아 놓은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워밍업을 할 수 있는 연습 페이지도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법을 배우고 싶어하는 이들도 많고, 그림을 잘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책들도 많다. 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법이란 사실 없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그것이 재능을 타고 나야 하는 예술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미에 대한 평가로 잘 그린 그림, 못 그린 그림을 명확히 나눌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려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 그리고 그리다 보면 점점 나아진다. 그림을 잘 그리는 법은 결국 계속 그려보는 일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도 삽화가로 잘 알려져 있는 화가 '요시토모 나라'의 사진이 담긴 브로마이드가 그가 낸 책에 실려 있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 페이지를 찢어서 다이어리에 붙여둔 적이 있다.
한 장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 주변에 널려 있는 무수한 파지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또 찢고, 다시 그리고 또 그리고 찢고 다시 그렸던 것이다.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과 노력이 그렇게 사랑 받는 악동 이미지의 그림들을 생산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본다. 얼핏 보면 그의 그림은 매우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단순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느낌을 연출하는 것은 몇 백장의 파지가 있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그가 작업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 들었다.
결국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세계를 눈앞에 그려내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머리 속에만 있었던 세계이기도 할 것이고, 또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에 감동을 받은 화가의 마음이 담긴 마음 속 풍경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없었던 것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창조의 영역에 속하고, 또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 역시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사람들처럼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생산자'라고 할 수 있다.
학창 시절에 사생대회에 나가면 그림은 그리고 싶지만, 막상 무엇을 그려야 할지 도화지를 눈앞에 두고 막막해 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던 기억이 난다. 몇몇 친구는 나에게 가져와 대신 그려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림 그리는 것에 자신이 없었던 탓일 것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사물을 관찰한다는 것이다. 애정을 갖고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잡생각이 사라지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마구마구 드로잉 속에 있는 100개의 오브젝트를 하나 하나 그려나가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역시 관찰력의 싸움이로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사실 저자는 '눈에 띄지 않는 디테일은 무시하세요'라고 이 책에서 당부하기도 했는데 단순하게 그린다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세세하게 하나 하나 세밀하게 그리려다 보니 재미도 없고 힘도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생각을 바꿨다. 약간 건성건성 그렸다. 그러니까 그림 그리는 것도 재미있고 빨리 다음 오브젝트를 그리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어렵게 느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고, 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을 통해 그야말로 '마구마구' 드로잉을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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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잘 그리려고'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그림을 보고 잘 그린 그림, 못 그린 그림 나누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을까? '나만의 그림책'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마구마구 드로잉.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만나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