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쓸모 - 그리움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신동호 지음 / 책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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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었을 때 문득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뒤돌아 서면서 자꾸 뒤를 돌아봤던 기억이 있다. 왜 자꾸 뒤돌아 보게 되었을까? 알지 못했다.

 

그러다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그건 '마음'을 어딘가 두고 왔기 때문이라는 걸. 내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지 진심이 오롯이 전달될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낡고 오래된 기억. 구슬치기를 하던 기억도 떠올랐고, 이 책의 저자처럼 구슬치기보다는 구슬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던 기억도 났다. 어린시절에 구슬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작은 우주가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르면서 내가 느꼈던 것을 똑같이 느낀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세대는 다르지만 시인이 느꼈던 어린시절의 기억에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추억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이 책의 표지는 그러고보니 빨간 우체통을 닮았다. 우체통은 기다린다. 빨간 입을 벌리고. 다만 기다린다.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편지 한 통을. 또 그 마음이 닿아 내보내는 누군가의 답장을.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게 만들어주던 우체통은 이제 그 기능을 잃은지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우체통은 서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인지 우체통 자신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기다리는 것.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절의 기억들은 아닐까?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향수는 아닐까?

 

우체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별안간 편지가 쓰고 싶어지는 것도 그래서일지 모르겠다. 오래된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 세월의 쓸모 있음에 대해 이야기한 책 같다. 낡은 것들은 낡을 수록 빛난다. 이 책의 문장들은 아름다웠고 눈부시게 빛났다. 처음 몇 페이지를 넘겼을 때 그런 인상을 받았고 책을 덮을 때까지도 그 첫인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가 무엇을 잃은 채로 살아가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를 기다리는 우체통처럼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누군가 그리워지는 기분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리움도 쌓이고, 그리워지는 것들도 많아지지만 떠나보낸 것들과 시간 속에서 나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인다.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으니까. 오래될 수록 깊은 맛을 내는 장 맛처럼. 어쩌면 사람도 그럴 것이기에. 세월의 쓸모를 확인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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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방시혁의 말놀이 동요집 최승호.방시혁의 말놀이 동요집 1
최승호.방시혁 지음, 윤정주 그림 / 비룡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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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놀이 동시집 내용이 아주 좋더군요. 동요집도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창의적이고 언어발달에도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는 책 같아요. 어른도 읽어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투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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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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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인물인 '리모노프'라는 남자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다. 소설가 정이현과 평론가 허희의 낭만 서점이라는 책 팟캐스트를 낄낄거리면서 듣다가 흥미가 생겨 읽고 싶은 도서 목록에 올려두었다가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쓴 서평도 읽어 보았는데 좀 부정적인 내용을 읽었지만, 내가 읽어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빨리 이 책을 읽고 싶어졌던 기억이 난다.


개인의 기록은 그 자체로 역사라고 생각하는데 집안의 가계부 같은 것도 오래된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대의 물가를 알 수 있고 가정경제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듯이 개인이 살아온 발자취, 삶 그 자체는 시대와 함께 하는 것이라서 먼 훗날 뒤돌아 보면 개인의 사소한 기록도 (가령 일기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史料)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시간을 들여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인가?라는 생각을 했다'라는 서평을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그 생각에 부분적으로 동의하긴 했지만, 누구의 삶이든 어떤 사람에게든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을 평소 갖고 있는지라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주변에 있다면 그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시행착오 속에서 그와는 다르게 삶을 사는 법을 배울 것이고, 또 존경할만한 인물이 주변에 있다면 그의 삶의 방식을 들여다보면서 이를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내용도 좋지만 전체적으로 리모노프라는 인물을 잘 표현한 책 표지인 것 같다. 리모노프라는 말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표지. 책 표지 디자인이 잘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들었다. 읽기 전에는 궁금증이 이는 (호기심이 생기는) 표지고, 다 읽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디자인인 듯.


나는 개인적으로 괴짜들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아버지가 괴짜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사람에게 괴짜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지만. 특이한 사람이라고. 뭐가 특이하다는 것인지? 사실 모친으로부터 "내가 낳았지만 넌 참 이상하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 괴짜들을 좋아한다. 얼마 전에 심리테스트해봤는데 '당신은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괴짜 기질이 다분한 사람입니다.'라는 결과가 나와서 약간 놀라기도 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괴짜를 '세상을 보는 눈이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틀에 자신을 집어넣기 보다는 스스로 자신이 틀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 남이 세워놓은 기준이 아닌 자신이 세운 기준대로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


리모노프는 괴짜 같은 인물이다. 아니, 괴짜다. 그래서 나는 이 인물이 마음에 들었다. 여러모로 좀 특이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도 리모노프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을 집필하려 했던 것 같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이 작품 속에서 리모노프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며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내가 현관에 나와서야 드디어 그가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굳이 나에 대한 책을 쓰고 싶은 이유가 뭡니까? 」


당혹스러웠지만 나는 진심을 얘기했다. 당신이 흥미진진한 인생을 살고 있기, 또는 살았기 때문이라고. 어떤 시제(時制)를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설 같은 아슬아슬한 인생. 역사 속으로 몸을 던지는 위험을 택한 인생. 그러자 그의 입에서 나를 경악케 만든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그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피식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개떡 같은 인생이지, 한마디로.」(515쪽)

스스로의 삶에 대해 '개떡 같다'고 평가할 정도로 (리모노프는 과시욕이 강하고 명성에 매달리는 야망이 큰 인물이었지만) 객관적으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놀랍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에티엔 리갈의 '자기 자리를 아는 사람'이라는 리모노프에 대한 평가는 적확한듯 하다. 물론 그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작가에게는 모욕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이 평소 내 생각과 닿아 있는 부분도 있어서 (공산주의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늘 했는데 이념 자체는 좋은데 실현하기 어려워서 (너무 이상적이라) 그렇지...공산주의 이념 자체는 순수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 그러나 인간의 욕심 때문에 파이를 균등하게 나눈다는 것은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파이를 모든 사람들이 균등하게 나눠 먹을 수 있다고 믿는 공산주의자들은 지극히 순진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산주의에 대해 표현되어 있는 부분을 읽으면서 공감했다.


공산주의가 끔찍한 짓도 했다. 동의한다. 하지만 나치즘과는 달랐다. 서방 지식인들이 이제 아주 당연하게 두 가지를 동일시하는 것은 모욕이다. 공산주의는 위대하고 영웅적이며 아름다운 어떤 것, 인간을 신뢰하고 인간에게 신뢰를 준 어떤 것이었다. 그 속에는 순결함이 있었다.

리모노프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는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인물이었다. 리모노프라는 인물을 통해 러시아의 시대 변화, 러시아 민중의 내면의 혼란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낭만 서점이라는 책 팟캐스트를 들으며 리모노프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것은 정이현 작가가 읽은 엠마뉘엘 카레르의 리모노프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묘사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나는 리모노프가 여러 번 바닥으로 추락했다고 생각한다. 여러 번 넘어지고 의지가지 없이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그토록 망가지고, 처절하게 외롭고 곤궁해도, 역정의 삶을 선택한 사람이 필연적으로 치러야 하는 대가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언제나 힘을 얻고, 언제나 털고 일어서고, 언제나 다시 전진한 것은 내가 리모노프를 존경스럽게 생각하는 점이다. (214쪽)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질투를 숨기지 않으며, 가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내적으로는 외롭고 불안해하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도 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멈추지 않고 희망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 리모노프인 것 같다. 위의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작가가 은근히 리모노프를 비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서는 순수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함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리모노프라는 인물에 대해 묘사할 때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은 독특한 점인 것 같기도 하지만 리모노프와 작가가 그런 점에서는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통하는 데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사람은 자신과 좀 닮은 구석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무의식중에 끌린다고 함. 작가는 리모노프를 있는 그대로 그리려 노력한 것 같다. 원래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가장 어려운 법이니까. 편견없이 보는 것이. 그런 점에서 높게 평가해주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리모노프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하다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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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사람인가
발타자르 그라시안 &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 & 장 드 라 브뤼예르 지음, 한상복 엮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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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위즈덤하우스 도서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다.

 

책은 가급적 깨끗하게 보려고 하는 편이지만, 어떤 책은 밑줄을 긋게 된다. 내 책이라는 표식 같은 거라고 할까? 읽다보면 흔적을 남기고 싶어지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들에 주로 여백에 메모도 하고  형광펜이나 펜, 연필로 줄을 긋게도 되는 것 같다. 주로 배움을 위해 읽는 책들에 그런 흔적이 남게 된다. 이 책도 밑줄을 그어가며 읽은 책이다.


읽으면서 자아성찰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약간 처세술에 관련된 내용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좀 들었다. 읽으면서 이렇게 좋은 책을 공짜로 읽어도 되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물론 서평을 남겨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긴 했지만.


책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다. 예쁘게 디자인을 잘한 것 같다. 과일도 예쁜 접시에 담아 내놓으면 눈도 즐겁고 그 즐거운 기분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책도 그런 것 같다. 물론 안에 담긴 것이 더 중요하지만.   


이 책은 발타자르 그라시안, 라 로슈푸코, 라 브뤼예르의 사상을 따라가며 실제 사례(저자의 경험담)에 그들의 지혜를 담아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를 가르쳐주고 있는 책이다.


목차를 펼치는 순간부터 무척 흥미로운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빨리 읽고 싶어졌었다. 그래서 굉장히 빨리 읽게 된 책이기도 하다. 사실 요즘 틈날 때마다 독서를 하다보니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진 탓도 있는 것 같지만, 술술 잘 읽히는 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좋은 습관을 늘려가는 것이 곧 '자기관리'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했는데 자기관리라는 것은 곧 꾸준히 자신을 돌아보고 가꾸며 관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 터. 이 책을 읽으면서 내면을 어떻게 가꿔가면 좋을지 그 지혜를 현인들로부터 배운 느낌이 들었다. 또 어떤 이야기들은 살면서 경험을 통해 체득한 깨달음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읽으면서 공감 가는 내용도 많았다. 곁에 두고 틈 날 때마다 펼쳐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또 간만에 남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책이기도 했다. 궁금하다면 한 번 만나보길 권한다.


밑줄긋기


겸손은 때로는 거짓 복종을 의미한다. 일단 밑으로 들어갔다가 훗날 상대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겠다는 계략을 품고 있다. 자존심은 천태만상 자유자재로 변화가 가능한데, 겸손이라는 탈을 쓸 때만큼 멋지게 사람을 속일 때가 없다. - 라 로슈푸코


겸손은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취해야 할 태도이자 전략이기도 하다. (263쪽)


전문가들에 따르면 스트레스는 사건- 인식- 반응- 증상의 순으로 전개된다. (268쪽)


내가 굴리지 않는 이상, 좌절과 분노와 남 탓의 눈덩이는 불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눈덩이를 뭉치고 굴릴 시간에 아주 작은 성취의 구슬을 챙겨 만족이라는 실에 꿰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271쪽)


행복 속에 불행이, 불행 속에 행복이 있다. 세상 또한 그렇다. 봉우리와 등성이가 높은 만큼 골짜기는 깊고 음침하며 길다. 골짜기가 깊으면 많은 양의 물을 머금기 마련이다. 사랑을 받으면 그만큼 다른 누군가에게는 미움을 받아야 한다. 모든 이의 사랑을 한몸에 받을 수는 없다. (274쪽)


삶은 때로는 포기를 진정한 시작으로 삼을 때가 있다. 포기하고 수용해 다른 길을 모색함으로써 비로소 출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의 출발 말이다. (276쪽)


여유와 융통성은 창조로 이어진다. 낯선 것을 창조해낸다는 의미는, 남들이 안 하려는 것을 시도하고, 남들의 질서를 뛰어넘어 감행하며, 마침내 남들이 생각하는 경계를 허물었음을 의미한다. (278쪽)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인생 1막은 죽은 사람들과 대화를 즐겨라. 고전에 힘입어 우리는 더 깊이 있고 참다운 인간이 된다. 인생 2막은 살아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세상의 좋은 것들을 즐겨라. 조물주는 우리 모두에게 재능을 골고루 나누어주었고, 때로는 탁월한 재능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들에게서 다양한 지식을 얻어라. 인생 3막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보내라. 행복한 철학자가 되는 것만큼 좋은 인생은 없다. -그라시안 (278~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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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마구 드로잉 - munge의 스케치북 프로젝트
munge(박상희) 지음 / 예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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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실 읽는 책이 아니라 '하는' 책이다. 책을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찢거나 낙서하고(이 책을 파괴하라) 색칠공부를 하고(비밀의 정원 컬러링북)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빈칸책) 마구마구 그림을 그리는(마구마구 드로잉) 시대가 된 것 같다. 취미를 '독서'라고 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림 그리는 것이나 악기 연주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유가 뭘까? 독서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림 그리기나 악기 연주는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은 이제 고귀한 예술의 영역을 벗어나서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여가 시간에 취미로 할 수 있는 것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자기치유'나 '힐링'의 도구로 여겨지기도 한다. 컬러링북으로 인기를 끈 '비밀의 정원'이 그런 현상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 그리기가 직업이 된 사례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이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꼭 배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즐겁게 즐기며 할 수 있는 것, 충분히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고 그렇게 인식되어지고 있는 것 같다.

 

 

마구마구 드로잉은 '드로잉'이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말하지 않는다. 드로잉을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페이지와 피사체의 사진을 담아 놓은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워밍업을 할 수 있는 연습 페이지도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법을 배우고 싶어하는 이들도 많고, 그림을 잘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책들도 많다. 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법이란 사실 없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그것이 재능을 타고 나야 하는 예술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미에 대한 평가로 잘 그린 그림, 못 그린 그림을 명확히 나눌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려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 그리고 그리다 보면 점점 나아진다. 그림을 잘 그리는 법은 결국 계속 그려보는 일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도 삽화가로 잘 알려져 있는 화가 '요시토모 나라'의 사진이 담긴 브로마이드가 그가 낸 책에 실려 있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 페이지를 찢어서 다이어리에 붙여둔 적이 있다.

 

한 장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 주변에 널려 있는 무수한 파지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또 찢고, 다시 그리고 또 그리고 찢고 다시 그렸던 것이다.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과 노력이 그렇게 사랑 받는 악동 이미지의 그림들을 생산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본다. 얼핏 보면 그의 그림은 매우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단순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느낌을 연출하는 것은 몇 백장의 파지가 있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그가 작업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 들었다.

 

결국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세계를 눈앞에 그려내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머리 속에만 있었던 세계이기도 할 것이고, 또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에 감동을 받은 화가의 마음이 담긴 마음 속 풍경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없었던 것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창조의 영역에 속하고, 또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 역시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사람들처럼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생산자'라고 할 수 있다.

 

학창 시절에 사생대회에 나가면 그림은 그리고 싶지만, 막상 무엇을 그려야 할지 도화지를 눈앞에 두고 막막해 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던 기억이 난다. 몇몇 친구는 나에게 가져와 대신 그려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림 그리는 것에 자신이 없었던 탓일 것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사물을 관찰한다는 것이다. 애정을 갖고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잡생각이 사라지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마구마구 드로잉 속에 있는 100개의 오브젝트를 하나 하나 그려나가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역시 관찰력의 싸움이로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사실 저자는 '눈에 띄지 않는 디테일은 무시하세요'라고 이 책에서 당부하기도 했는데 단순하게 그린다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세세하게 하나 하나 세밀하게 그리려다 보니 재미도 없고 힘도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생각을 바꿨다. 약간 건성건성 그렸다. 그러니까 그림 그리는 것도 재미있고 빨리 다음 오브젝트를 그리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어렵게 느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고, 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을 통해 그야말로 '마구마구' 드로잉을 해야 하는 이유다.

 

 

 

그림 그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잘 그리려고'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그림을 보고 잘 그린 그림, 못 그린 그림 나누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을까? '나만의 그림책'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마구마구 드로잉.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만나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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